2012년 9월 16일 일요일

각하를 향해서는 무조건 받들어~ 총?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9-17일자 제928호 기사 '각하를 향해서는 무조건 받들어~ 총?'을 퍼왔습니다.
[초점] 트위터에서 대통령 비판한 이 대위, 상관모욕죄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 선고 변호인 “대통령은 군형법상 상관에 해당하지 않고, 기무사가 월권 행위로 기소 증거 찾아” 항소

대통령을 비판한 군인은 형법 처벌 대상일까? 그렇다면 군인에게 허용된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일까?
최근 이러한 질문과 관련해 논란을 지핀 판결이 나왔다. 지난 8월31일 육군 7군단 보통군사법원이 인터넷상에서 상관인 대통령을 모욕했다며 군검찰이 기소한 이아무개(27·육사 64기) 대위에게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앞서 이 대위는 지난해 12월20일 “가카 이×× 기어코 인천공항 팔아먹을라고 발악을 하는구나” 등 모두 10차례 넘게 인천공항 매각 추진, BBK 의혹, KTX 민영화 추진, 서울 내곡동 땅 문제 등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한 내용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혐의로 군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모범을 보여야 할 군 장교로서 수차례에 걸쳐 상관을 모욕하는 글을 게재해 지휘권을 혼란스럽게 했고 반성의 기미가 없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 이 대위의 군사고등법원 항소심에서는 유권자이기도 한 군인이 대통령을 비판할 수 있는지와 기무사의 수사 범위가 쟁점으로 떠오를 듯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2010년 9월28일 서울 경복궁 홍례문 앞에서 열린 ‘6·25 전쟁 60년 서울 수복 기념 국군의 날 행사’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김명진

“유권자 이 대위가 비판한 건 행정부 수반”

현역 군인이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을 비판한 이 사건은, 언뜻 보면 나라의 부름을 따르는 한 장교의 부적절한 행위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러나 선고가 내려진 날, 이 대위 쪽 변호인은 고등군사법원에 곧바로 항소했다. 재판 과정에서 어떻게 이 대위를 수사했는지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고, 대통령에 대한 상관모욕죄를 들어 군인을 형법으로 처벌하는 것이 과도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 대위 쪽 변론을 맡은 이재정 변호사(법무법인 동화)는 재판 과정에서 “대통령은 군형법의 취지와 연혁에 미뤄볼 때 상관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해왔다. 따라서 군형법의 상관모욕죄를 들어 이 대위를 처벌하는 게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군기 문란이나 각종 반란 등을 처벌하려고 만든 군형법에서는 상관의 정의를 이렇게 내리고 있다. “명령복종 관계에서 명령권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명령복종 관계가 없는 경우의 상위 계급자와 상위 서열자는 상관에 준한다.”(제2조 1항) 이 변호사는 “대통령은 군형법에 나온 ‘준상관’(명령복종 관계가 없는 경우의 상위 계급자와 상위 서열자)이 아니기 때문에 ‘순정상관’(명령복종 관계에서 명령권을 가진 사람)인지 여부를 따져야 하는데, 군인이 아닌 대통령을 현역 군인 사이에 적용하는 군형법의 상관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또 “설령 군형법에서도 대통령을 상관으로 본다고 해도,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유권자인 이 대위가 트위터에서 언급한 대통령은 군 최고통수권자가 아니라 행정부 수반이니 정당한 비판의 대상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헌법과 국군조직법에서 대통령이 국군통수권자임을 규정하고 있고, 상관모욕죄는 군인 상호 간의 관계가 아닌 군인과 군인 이외의 공무원과의 관계도 포함해야 한다”며 변호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대위를 기소한 군검찰 쪽에서도 대통령령인 ‘군인복무규율’을 근거로 대통령도 상관에 포함된다고 했다. 군인복무규율 제2조 4항에는 상관을 “명령복종 관계에 있는 사람 사이에서 명령권을 가진 사람으로서 국군통수권자부터 바로 위 상급자”라고 명시하고 있다. 원래 이 조항엔 국군통수권자라는 표현이 없었다. 2009년 9월29일 개정 때 이 조항에 국군통수권자가 포함됐다. 2008년 촛불집회 때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거세자, 국방부가 ‘이명박 대통령 등 상관을 비방하지 말라’는 공문을 각 군에 내려보낸 뒤다.

기무사 민간인 사찰 과정에서 찾았나?

군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 대위를 수사했는지를 이번 재판 과정에서 자세히 밝히지 않은 것은 또 다른 쟁점이다. 군검찰은 재판 과정에서 이 대위가 익명으로 활동한 트위터의 내용을 갈무리한 자료를 기무사령부에서 넘겨받아 조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명이 아닌 익명으로 사용하던 트위터의 실제 사용자가 이 대위라는 사실을 기무사가 어떻게 확인했는지는 자세히 드러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변호인 쪽에서는 기무사가 권한을 넘어서는 행위로 이 대위를 기소한 증거를 찾아냈으며, 이는 합법적인 절차로 확보된 증거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기무사가 이 대위의 기소 증거를 확보한 것과 관련해, 기무사가 군인뿐만 아니라 민간인까지 광범위하게 사찰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형법에서는 기무사의 활동 범위를 내란·외환의 죄, 군형법상의 반란·이적의 죄, 국가보안법, 군사기밀보호법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앞서 재판 과정에서 기무사는 인터넷상에 군과 관련한 검색어를 넣는 식으로 방첩 활동을 하던 중 이 대위의 트위터를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평소 이 대위가 익명으로 트위터를 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기무사가 군인과 일반인의 트위터를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대통령 비방글을 수집해온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에서는 2009년 8월 기무사의 한 대위가 민주노총 주최 쌍용자동차 파업집회 현장을 캠코더로 촬영하다가 시위대에 붙잡힌 사건이 있었다. 이와 관련해 당시 민주노동당 당직자 등 15명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지난 1월 서울중앙지법은 국가가 1억26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현재 항소심을 준비하고 있는 이 변호사는 “앞으로 수사 과정의 적법성과 이 대위를 형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법리를 다투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일반 형사죄에서는 인터넷 공간에서의 공인인 정치인에 대한 모욕죄가 성립하지 않고, 표현 자체가 모욕에 해당하기 어렵다는 판례가 대다수”라며 “일반적인 정치 현안에 대해 선출된 대통령에게 ‘가카, 이새끼’ 등의 표현을 하는 것이 모욕에 해당하는지가 항소심에서 다퉈야 할 쟁점”이라고 덧붙였다.

‘국가원수모독죄’ 부활 비판

이번 판결을 두고 시민단체에서는 1988년에 없어진 ‘국가원수모독죄’가 사실상 부활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군인권센터는 8월31일 “군인의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를 박탈하고 있는 평시 군사법원의 폐지 청원 운동(ka.do/oJ)을 전개하겠다”고 반발했다. 군인권센터는 이날 성명을 내고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과 판사와 법률가의 독립(사법권 독립)에 대한 특별보고관에게 이번 사건에 대한 개인 청원을 제출해 국제적 공론화를 도모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위와 관련한 이번 판결에 따르면, 군인은 대통령을 뽑을 권리는 있지만 비판할 권리는 없는 셈이다. 이 대위에게 군사고등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지켜볼 일이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