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9일 일요일

당국·은행·트레이더 모두 공모자였나?


이글은 이코노미 인사이트(Economy Insight) 2012-09-01일자 제29호 기사 '당국·은행·트레이더 모두 공모자였나?'를 퍼왔습니다.
Special Report Ⅰ ● 리보 사태 전말 파헤치기- ① 조작은 어떻게 이뤄졌나


유럽 거대 은행들이 지난 수년간 리보를 조작해왔다. 처음엔 트레이더들의 카르텔이었지만 금융위기 이후 은행들이 개입한 정황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이른바 '금리 카르텔'이다. 은행 스캔들은 과거에도 많았지만 이번처럼 엄청난 규모의 스캔들은 처음이다. 정치권과 감독기관은 이번 사태를 은행들의 조직적인 소비자 기만 행위로 보고 있다. 그러나 감독기관들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감독당국·은행·트레이더가 서로 합작 또는 묵인한 한 편의 금융 사기극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 사건에 연루된 금융회사들은 민·형사 소송과 함께 수백억달러의 벌금을 물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_편집자

소규모 카르텔이 발단… 금융위기 뒤 은행 경영진도 금리 낮춰 보고하라 압박

영국 바클레이스은행이 리보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나 세계 금융시장에 파문을 일으켰다. 리보 사태는 바클레이스가 2005~2009년 차입금리를 고의로 낮춰 보고한 사실이 들통난 것을 의미한다. 바클레이스의 리보 조작 파문은 글로벌 대형 금융회사들의 탐욕을 보여주는 신호탄에 불과하다. 영국 3위 은행인 바클레이스가 리보 조작에 가담했다면 다른 글로벌 금융기관들도 공모했을 개연성이 높다. (슈피겔)이 밀착 취재를 통해 리보 조작의 전말을 파헤쳤다.
에두아르트 포메란츠와 롤프 마센은 사실 국제 금융시장이라는 거대한 상어 수족관 속에서 한 마리의 작은 물고기에 불과하다. 오스트리아 빈의 한적한 마을에 근거지를 둔 이들의 헤지펀드 FTC캐피털은 겨우 1억5천만유로를 운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지금 FTC캐피털의 창립자 포메란츠와 법률 담당 부서 책임자 마센은 커다란 상어들을 두렵게 만들 수 있는 존재가 됐다.
가지런히 자른 앞머리가 살짝 흐트러진 마센이 "리보(Libor·런던 은행 간 금리) 조작은 아마 역사상 가장 큰 금융 스캔들일 것"이라며 빈 사람 특유의 뼈 있는 유머를 섞어 말했다. 몇몇 국제 은행들이 수년간 리보를 조작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그는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마센은 이같은 일을 그냥 넘기는 인물이 아니다. 그 또한 금융업계에서 잔뼈가 굵었고, 이제 사기를 당한 금액을 돌려받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지난 6월 말 영국과 미국의 금융감독 기관이 영국의 거대 은행 바클레이스에 5억달러의 벌금을 부과하고, 바클레이스의 최고경영자(CEO) 밥 다이아몬드를 해임시켰다. 이후 금융가는 일종의 전쟁 상황에 돌입했다. 금융기관 조사관들은 혐의를 받고 있는 용의자들을 공격하고, 사건에 연루된 은행들은 처벌이 완화되기를 희망하며 다른 은행이 저지른 범행에 대해 밀고하고 있다. 그리고 마센 같은 소규모 투자자들은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마커스 에이지어스 전 바클레이스은행 회장이 영국 런던의 바클레이스 지점 앞에 서 있다. 에이지어스 전 회장은 리보 조작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뉴시스 REUTERS

500조달러가 넘는 파생상품 시장

도이체방크를 비롯한 10여 개 이상의 금융회사들이 조직적으로 리보를 조작했다는 혐의로 비판대 위에 올라 있다. 이같은 카르텔은 지금까지 담배 산업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감독기관들은 이를 '조직적인 기만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법무 담당 집행위원인 비비안 레딩은 '은행가'(Banker)가 아니라 '은행 조폭'(Bankster·Banker+Gangster)이라고 불러야 한다며 분개했다. 하지만 이같은 분노의 외침은 여러 담당 관청, 특히 뉴욕과 런던의 감독기관들이 자신의 실책에 쏠리는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한 행동으로 비친다. 감독기관들이 그들의 코앞에서 벌어진 범행을 몇 년 동안이나 모르고 지나쳤기 때문이다.
감독 당국은 정신을 차린 뒤에야 은행 내의 범인들을 매섭게 쫓고 있다. 그들의 조사 범위는 은행의 CEO까지 포함하고 있다. 현재 캐나다에서 일본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적으로 6개 이상의 각국 관청이 이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특수감사 임무를 부여받은 10여 명의 독일 금융감독청(BaFin) 직원들이 몇 달 전부터 도이체방크에 파견돼 있다. 이들은 도이체방크 프랑크푸르트 본사를 감사하고, 머니 트레이더들이 일하는 런던으로 출장가고, 도쿄까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다. 도이체방크의 신임 CEO인 안슈 자인과 위르겐 피트셴도 예외 없이 조사관들의 질문에 답변해야 했다. 리보 조작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되는 기간에 도이체방크의 투자금융 부문과 단기자금 거래 책임자였던 자인에게 이는 특히 불편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리보와 유리보(Euribor·유로존 은행 간 금리)는 전세계적으로 수백조유로에 달하는 자금 거래의 기준으로 쓰인다. 은행이 기업가에게 변동금리로 대출해줄 때 그 계약의 기준이 되는 것이 유리보다. "심지어 콜머니의 조정에도 유리보가 결정적 가이드라인이 되는 사례가 많다"고 프랑크푸르트 금융경영대학 교수 팔코 페히트는 말한다. 특히 스페인은 수만 개의 은행 대출이 유리보를 토대로 이뤄지고 있고, 미국에서는 수백만 개의 저당 계약이 리보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카르텔을 맺은 은행가들의 표적은 당초 전혀 다른 사업 분야였다. 이들은 애초 외환업무 부서의 동료들을 위해 거대한 이자율 파생상품과 통화 파생상품 시장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 이 분야의 거래 규모는 2011년 말 기준으로 567조달러에 달했다. 이는 금리가 0.01%포인트만 변해도 많은 은행가들에게 수억달러의 수익 또는 손실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은행은 물론 감독기관조차 최근 몇 년 동안 감독에 느슨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수밖에 없다.
리보 결정에는 최대 18개 은행이 참여하는데 여기에는 도이체방크도 포함돼 있다. 매일 아침 각 은행은 당일에 담보 없이 자금시장에 대출해줄 수 있는 금리를 보고하고, 금융정보 서비스 업체 톰슨로이터가 이 정보를 바탕으로 금리 평균값을 산출한다. 유리보 산출도 비슷한 방식에 따라 이뤄진다. 다만 유리보 결정에는 43개 금융회사가 참여해 리보보다 훨씬 많은 것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이같은 금리 산출이 신뢰할 만한 것이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데이터에 반영됐어야 할 단기자금 시장은 경제위기 이후 사실상 죽어 있는 상태다. 현재 담보 없이 대출을 해주는 은행은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지금까지 은행 CEO도 감독기관도 주요 금리가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심각한 이익 충돌 상황에 놓인 일반 트레이더들이 금리 보고를 담당하는 사례가 자주 있었고, 이들은 이를 통해 금융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다. 독일 금융감독청장 엘케 쾨니히는 이같은 상황에 대해 "리보 조작을 하라고 대놓고 부추겨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한 남성이 이탈리아 로마의 도이체방크 지점 앞을 지나가고 있다. 뉴시스 REUTERS
파생상품 직원들의 비밀스런 회동

2005년 모로코 출신의 한 젊은 머니 트레이더가 바클레이스은행에 입사했다. 현재 44살인 필리프 모르유세프다. 바클레이스는 그가 거쳐간 많은 직장 가운데 하나다. 그는 소시에테제네랄, 바클레이스, 스코틀랜드 왕립은행, 모건스탠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본 노무라은행에서 일했다. 노무라은행은 모르유세프가 금리 카르텔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밝혀지자 그를 해고했다.
런던의 금융가에서 모르유세프는 쿨한 성격으로 그다지 튀지 않는다는 평을 듣고 있었다. 스쿠버다이빙과 독서를 좋아하는 그는 아내, 두 자녀와 함께 런던의 부촌인 세인트존우드 지역의 250만파운드짜리 빌라에 살았다. 바클레이스에서 일하는 동안 모르유세프는 이자율 파생상품을 거래했다. 그와 동료들은 리보 또는 유리보의 미세한 변화가 그들에게 어떤 손실 혹은 수익을 가져오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금리의 예상치 못한 변동을 피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모르유세프는 거의 매일 금리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위해 은행 내·외부의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전자우편을 보내 연락을 취했다. 또 리보 보고를 담당하고 있던 동료 직원, 즉 머니 트레이더들에게 하루에도 수차례 문의를 했다.
정글 같은 투자신탁 세계에서 머니 트레이더의 서열은 금융위기 전까지 꽤 아래쪽에 있었다. 큰 거래를 담당하지 않는 이들에게 주식이나 채권 딜러들이 받는 어마어마한 상여금은 꿈같은 이야기일 뿐이었다. 한 전직 투자은행 직원은 "머니 트레이더들은 항상 먹이사슬에서 맨 아래쪽에 위치했다"며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이 먹이사슬의 약자들이 소속 은행을 떠나 한 달에 한 번 정도 뉴욕, 런던, 프랑크푸르트에서 맥주를 홀짝이며 모임을 열었다. 은행에 돈이 넘쳐흐르는 것처럼 보였던 2000년대 중반, 이들은 모두 같은 처지에 있었다. 거대 금융기업의 먹이사슬에서 항상 동료들에게 비웃음을 사거나 무시를 당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금리가 시시각각 어떻게 변하는지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트레이더 한두 명이 금리의 상승과 하락을 조작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늦어도 2005년에는 트레이더들이 그들의 작은 모임에서 서로 합의하면 자신들이 얼마나 거대한 힘을 갖게 될지 깨닫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같은 합의를 위해서는 거대 기업의 공식적인 계약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친한 친구들 사이에 간단한 약속이면 충분했다. 이쪽에서 손짓 한 번, 저쪽에서 점심 식사 한 번, 이 정도면 일본에서 유럽을 거쳐 캐나다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적인 카르텔을 형성하기에 충분했다. 리보 조작에 성공한 뒤 한 딜러는 "시간 나면 한번 들러, 볼랭저 샴페인을 터뜨릴 테니"라고 동료에게 전자우편을 보냈다. 영국 금융감독청장 어데어 터너는 이 전자우편을 두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탐욕 문화의 증거"라며 혀를 찼다.
"금리가 변동하지 않으면 난 죽은 목숨"이라고 한 딜러가 2006년 10월 리보를 담당하는 동료에게 전자우편을 보냈다. 2005년부터 2009년 5월 사이 딜러들은 최소 173차례 이같은 요청을 했고 종종 성공을 거두었다. 영국 금융감독청(FSA)의 조사 기록에 '딜러 E'로 칭해지는 모르유세프는 유리보 전문이었다. 그는 30억유로를 특정 방향의 금리 변동에 베팅했다. 그는 "(금리 조작) 비결은 절대로 혼자 하지 않는 것"이라며 HSBC·소시에테제네랄·도이체방크에서 그와 손발을 맞춘 외부 동료에게 자랑스럽게 설명했다고 한다.
처음에 딜러들이 원했던 것이 자신들의 보너스를 올리는 것이었다면 금융위기 동안 금리 조작은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됐다. 2007년 은행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많은 금융회사들의 자금 조달이 더 힘들어졌다. 이런 상황은 일반적으로 리보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되자 바클레이스의 최고 경영진들이 리보 담당 딜러들에게 차입금리를 더 낮춰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2008년 10월께는 금리 조작이 바클레이스의 생존 자체를 좌지우지하기에 이르렀다.
그해 10월29일 현 영국은행 부총재 폴 터커가 바클레이스의 CEO 다이아몬드에게 걱정스레 문의했다. "바클레이스는 왜 요즘 그토록 지속적으로 높게 리보 금리를 보고하느냐." 다이아몬드는 최근 의회 청문회에서 터커가 자신에게 더 낮게 리보 금리를 보고할 것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터커는 이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는 같은 날 터커와 나눈 전화 통화에서 정치적 압력을 엿볼 수 있는 메모를 남겼다. 다이아몬드는 이 사안을 놓고 단기자금 거래 직원들과 논의했다. 먹이사슬의 최하위 그룹이 돌연 최고경영자의 자문 상대가 되고, 은행을 구원할지도 모르는 인물이 된 것이다.

스위스 취리히 시내에 걸린 UBS 로고. UBS는 리보 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영국과 미국의 금융 당국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다. 뉴시스 AP

금융위기 이후 은행 차원 개입 혐의

2008년 가을, 자금난에 허덕이던 은행은 바클레이스뿐만이 아니다. 바클레이스 외에 현재 유력한 '용의자'로 손꼽히고 있는 스위스은행(UBS), 시티그룹 그리고 스코틀랜드 왕립은행이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당시 리보 보고에 참여했던 독일의 서독일지방은행(WestLB) 역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들이 보고해온 리보 금리를 보면 그런 위기 상황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도이체방크는 2011년 가을 당시 리스크 담당 부서 책임자인 휴고 뵈치거가 내부 감사를 했다. 수백만 개의 전자우편을 확인하고 차트를 판독했다. 급기야 뵈치거는 법률회사에 조사를 의뢰했고, 당시 법률회사 담당 팀의 규모는 50명에 달했다. 하지만 조사를 할수록 좌절만 거듭됐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국인 조사관이 혐의가 있는 딜러 두 명의 이름을 제시한 뒤에야 뵈치거는 당시 은행 총재인 요제프 아커만에게 조사 결과를 보고할 수 있었다. 아커만은 매주 조사 결과를 보고받았고,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치게 될지 짐작하고 있었다. 두 명의 딜러는 즉시 해고됐다.
아커만, 뵈치거 그리고 도이체방크의 전 감사팀장 클레멘스 뵈르지히가 도이체방크를 떠난 뒤 새로운 감독이사회 의장 파울 아흐라이트너가 리보 스캔들 처리를 맡고 있다. 그는 은행이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리보를 조작한 적이 없다고 굳게 믿고 있다. 또 아흐라이트너는 총재인 안슈 자인이나 최고 경영진의 일부가 이 스캔들에 연류됐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단 두 명의 정신 나간 딜러가 카르텔을 주도했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이들의 상사나 규정 준수를 감시하는 직원들은 왜 조작 행위를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도이체방크는 통화와 금리 거래 분야에서 세계적 선도 기업임을 자부하고 있다. 리보 결정을 위한 패널에도 언제나 속해 있었다. 그런데도 도이체방크는 이번 리보 스캔들에서 자신들이 그저 들러리에 불과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리보가 조작되던 기간 동안 단기자금 시장을 책임지고 있던 알란 클로에테는 이같은 조작을 감지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는 왜 리보 관련 조사와 내부 감사가 이미 실시되는 상황임에도 지난 3월 안슈 자인에 의해 도이체방크 최고경영진의 한 명으로 임명될 수 있었을까? 일부에서는 이것이야말로 클로에테가 리보 문제에 관해 잘못한 것이 없다는 증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클로에테가 이런 상황에 대해 명쾌한 해명을 내놓지 못한다면 그 역시 리보 스캔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스벤 뵐 Sven Böll / 마르틴 헤세 Martin Hesse / 크리스토프 파울리 Christoph Pauly / 토마스 슐츠Thomas Schulz / 안네 자이트 Anne Seith (슈피겔) 기자

ⓒ Der Spiegel 2012년 31호 Das Kartell 번역 황수경 위원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