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4일 화요일

내가 어딜봐서 성범죄자처럼 보입니까?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09-03일자 기사 '내가 어딜봐서 성범죄자처럼 보입니까?'를 퍼왔습니다.
[게릴라칼럼] 경찰 불심검문 부활이 우려스러운 이유

▲ 전남 나주의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 등 최근 발생한 강력사건과 관련해 민생치안 점검에 나선 이명박 대통령이 3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김기용 경찰청장에게 나주 사건 등에 대한 보고를 받으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 연합뉴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성범죄가 또다시 발생했다. 바로 나주 초등생 성폭행 사건이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사과를 하고 정치권과 정부는 대책마련에 호들갑을 떤다.

굳이 '호들갑'이란 표현을 쓴 이유는 그 대책이란 게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되풀이되는 레퍼토리이기 때문이다. 

전자발찌, 화학적 거세, 범죄자의 신상공개, 국회의 법 개정, 사법부에 무기징역을 포함한 강력한 처벌 촉구. 이런 게 전부 아닌가. 물론 전혀 효과가 없지는 않겠지만, 한결같이 돈은 별로 들지 않으면서도 대중들의 분노에 편승할 만한 대책뿐이다. 

대통령의 사과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도 정부가 성범죄 예방과 피해자 대책을 진지하게 장기적으로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작정 법정형을 늘리고 성폭력범의 처벌과 감시를 강화한다고 해서 성범죄가 사라질까? 아니면 모 정치인의 말처럼 모든 남성을 결혼시키는 방법으로 성범죄를 없앨 수 있나. 순진한 생각이다. 성범죄자를 양산하지 않는 세상, 피해자를 보호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전문가와 정치권이 진지하게 머리 맞대고 고민을 해보았으면 한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봐줄만 하다. 여론이 무서워서라도 뭔가 일을 한다고 하니 굳이 반대할 까닭은 없다. 문제는 성폭행 사건을 빌미로 사회 전체가 감시사회로 복귀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아니나다를까 새누리당의 이한구 원내대표는 "모든 폭력과의 전면전을 선포해 안전한 법치국가의 모습을 확실히 보여달라"고 정부와 청와대에 촉구했다고 한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정부의 확실한(?) 대책이 등장했다. 경찰의 불심검문 부활이 그것이다(엄밀히 따지면 부활로 보기는 힘들다. 불심검문은 엄연히 현행법에 나와 있는 제도이다. 다만 인권침해 등 부작용 때문에 경찰이 대대적으로 시행하지 않았을 뿐 불심검문이 폐지되지는 않았다).

불심검문 강화를 대책으로 내세운 건 올바른 해법일까. 적어도 내게는 마치 국가가 시민에게 "성범죄자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평범한 사람들 속에 숨어 있습니다. 따라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수시로 감시해야 합니다"라는 말로 들린다. 

불심검문이 성폭행 사건 해결책? 

일단 법부터 살펴보자. 불심검문은 경찰관직무집행법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경찰관은 수상한 거동 기타 주위의 사정을 합리적으로 판단해 어떠한 죄를 범했거나 범하려 하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 또는 이미 행해진 범죄나 행해지려고 하는 범죄행위에 관해 그 사실을 안다고 인정되는 자를 정지시켜 질문할 수 있다." (3조 1항)

▲ 경찰 불심검문 2년만에 부활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시장역 인근에서 경찰관이 불심검문을 하고 있다. 이날 경찰청은 '묻지마' 범죄와 아동 성폭행 등 강력 범죄 예방을 위한 특별방범 활동 차원에서 이달부터 대로상에서 불심검문을 적극적으로 시행하라는 지침을 전국 지방경찰청과 경찰서에 내려 보냈다. ⓒ 연합뉴스

쉽게 말해 불심검문이란 수상한 사람을 정지시켜 질문하는 것을 말한다. 법을 자세히 보면 수상한 거동을 하지 않거나 범죄의심이 상당하지 않은 '선량한' 시민은 불심검문의 대상이 아니다. 설사 대상이 되더라도 경찰이 할 수 있는 일은 "정지시켜 질문"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경찰의 업무관행은 어떤가. 일단 "죄없으면 신분증부터 보여달라"가 된다. 게다가 거부하는 사람에겐 경찰서로 갈 것을 요구하는데 월권이라 할 수밖에 없다.    

물론 경찰이 동행요구를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법에 따르면 동행요구는 "당해인(검문 당하는 사람)에게 불리하거나 교통의 방해가 된다고 인정되는 때"에만 가능하다. 이마저도 "동행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만일 동의를 얻어 동행할 경우에도 6시간을 넘길 수 없고 가족에게 동행장소와 목적 등을 알릴 기회를 주고,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권리도 알려줘야 한다. 

결정적으로 불심검문 중에는 "형사소송에 관한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신체를 구속당하지 아니하며, 그 의사에 반해 답변을 강요당하지 않는다."(경찰관직무집행법 3조 7항).

정리해 보자. 불심검문은 거절할 수 있다. 동행요구도 거절할 수 있다. 경찰은 신분증 제시나 소지품 검사를 강요할 수 없다. 압수, 수색, 체포 등과 같은 강제처분이 아님은 명백하다. 학자들도 불심검문은 수사의 단서에 불과하므로 범죄수사와 엄격히 구별해야 하는 절차로 보고 있다.  

법원(인천지법)도 2010년 판결을 통해 불심검문의 한계를 분명히 짚은 적이 있다. 즉, 불심검문은 시민에게 협조해줄 것을 설득하는 것은 허용되지만 ▲ 수갑을 채우거나 ▲ 신체를 잡거나 ▲ 자전거 자동차 등이 진행할 수 없도록 강제력을 사용해 막거나 ▲ 소지품을 돌려주지 않는 방법으로 그 장소를 떠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사실상 답변강요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던 정부는 2010년 법을 개정하여 불심검문을 강화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인 적이 있었다. 당시 개정안은 ▲ 신분증 제시 요구 명문화 ▲  신원확인이 곤란한 경우 연고자 연락· 지문 확인 가능 ▲ 소지품 조사 가능 ▲ 차량트렁크 ·선박 등을 정지시켜 적재함 조사 가능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당시 시민단체는 물론 국가인권위원회조차 "인권침해 소지가 많다"는 의견을 밝힐 정도여서 불심검문 개정 추진은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불심검문 강화와 함께 법 개정이 또다시 고개를 들지 말란 법이 없다.    

어떤 이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죄가 없고 떳떳하다면 굳이 불심검문을 반대할 이유가 있느냐. 그렇다면 경찰은 범죄자를 어떻게 잡으란 말이냐."

불심검문,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언뜻 들으면 타당한 주장 같지만 위험한 발상이다. 헌법은 영장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사람의 인신을 제약하려면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것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 국가기관이 소리 소문도 없이 사람을 잡아가던 잘못된 관행을 반성하는 차원에서 만든 기본권 보장의 원칙이다. 따라서 구속, 체포, 압수, 수색 등 강제력을 동원하려면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 

예외도 있다. 긴급체포와 현행범체포다. 만일 살인, 강간 등과 같이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도망하거나 증거인멸 우려가 있는데 판사의 영장을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경우 먼저 체포하고 48시간 내에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 이것이 긴급체포이다.

▲ 김기용 경찰청장이 3일 오후 서울 미근동 경찰청 북관 1층에서 '성폭력ㆍ강력 범죄 총력 대응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 권우성

또한 법에는 현행범 체포제도도 있다. 범죄의 실행중이거나 실행 직후인 자는 현행범으로 보아 누구든지 영장없이 체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길거리에서 죄를 저지르고 도망가는 소매치기범이나 성폭행범은 일반인이라도 붙잡아서 경찰에 넘길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 범인으로 불려서 추적되고 있는 때 ▲ 장물이나 범죄에 사용되었다고 인정함에 충분한 흉기 기타의 물건을 소지하고 있는 때 ▲ 신체 또는 의복에 현저한 증적이 있는 때 ▲ 누구임을 물음에 대하여 도망하려 한 때에는 현행범인과 똑같이 체포할 수 있다.  

현행법은 영장주의가 원칙이고 예외적으로 사후에 영장을 청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긴급체포나 현행범체포 제도를 두고 있다. 하지만 불심검문은 차원이 다른 얘기다. 

일반인을 상대로 무차별로 이뤄지는 불심검문은 영장도 없이 이뤄지고 있으며, 또 영장을 발부받지 못할 정도로 긴급성을 요하지도 않는다. 그나마 경찰은 법에 나와있는 내용을 제대로 지키지도 않고 불심검문 과정에서도 마치 대단한 권한이 있는 것처럼 시민들을 대한다. 그런데도 흉악한 성범죄자를 잡기 위한 대책이 불심검문이어야 할까. 전 국민이 잠재적 범죄자로 의심을 받아야 할 정도로 일반인의 인권이 땅에 떨어지는 시대를 살아도 되는 것일까.  

경찰이 범죄 취약 지역에 대한 순찰을 강화하고 범인을 잡는 데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는 일엔 동의한다. 다만 전국민을 상대로 가는 길을 막고 신분증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겠다는 시도에는 반대한다. 

불심검문을 보니 두 가지 일이 떠오른다. 

첫 번째. 직접 경험하지 못했지만 1980년대 대학가의 슬픈 풍경 중 하나는 경찰이 상주했다는 점이리라. 목적은 대학 내 불순분자(?)들을 걸러내고 소요를 막기 위해서였을 테다. 집회나 시위를 모의하거나 주동한 사람, 불온유인물을 제작, 배포한 학생은 여차하면 현행법에 처벌을 받아야 했다. 경찰 상주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지만 대학 교정 안에서조차 국가기관에 의해 감시당하고,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당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당시 학생들에게 분노와 자괴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두 번째. 20년도 더 된 일이다. 학생 때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친구들과 학교 근처 여관이나 여인숙을 찾곤 했다. 그때 가끔씩 새벽녘쯤 갑자기 여관방 문을 쿵쿵쿵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부스스한 얼굴에 속옷 차림으로 문을 열어보면 험상궂은 얼굴을 한 경찰이 "신분증을 내놓으라"고 했다. 

마지못해 친구들의 신분증까지 함께 건네주곤 했다. 이것이 이른바 '임검'이었다. 아마도 경찰들은 수배자를 잡기 위해 '공익적 차원'에서 그런 방식을 사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관 방문을 두드려서 자고 있는 사람을 깨워서 범죄자인지 아닌지 확인할 권리, 누구에게도 없다. 

이 사회에 흉악범이 활개치는 일은 막아야 한다. 하지만 정부나 여당의 대책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어야 한다.   확실한 건 경찰이 길거리에서 신분증을 검사하고 차 트렁크를 뒤지는 방식으로 흉악범죄를 막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더 확실한 점은 대학가에 경찰이 상주하던 시대, 한밤중에 경찰이 여관 방문을 두드리고 신분증을 요구하던 시대로 돌아가는 건 불행하다는 점이다.

김용국(jundor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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