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4일 월요일

[사설]투표권 보장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2-09-23일자 사설 '[사설]투표권 보장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다'를 퍼왔습니다.

대통령선거 등 공직선거의 투표시간을 2시간 연장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보류됐다. 행안위 법안심사소위에서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직전 새누리당 소속 소위원장이 정회를 선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민주통합당은 새누리당이 여야 합의를 뒤엎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새누리당은 애초에 여야가 합의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중요한 것은 합의 여부가 아니라 투표권 보장이 갖는 중대한 함의이다. 5년에 한 번,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대선·총선의 투표권조차 보장하지 않고서 민주주의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행안위 소위(18일) 회의록을 보면, 고희선 소위원장은 투표 마감시간을 오후 6시에서 8시로 늦추는 데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의견을 청취한 뒤 “이만 의결하겠습니다. 그러면 20시(오후 8시)까지 하자 이 말이지요”라고 말한 것으로 나와 있다. 사달은 다음에 벌어졌다고 한다. 고 소위원장이 새누리당 전문위원과 귓속말을 나누더니 태도를 바꿔 정회를 선언했다는 것이다. 회의는 이후 속개됐지만, 투표시간 연장 법안은 처리되지 못했다.

새누리당은 ‘투표일이 공휴일이니 연장하지 않아도 된다’ ‘관리·운영의 문제가 있고, 사회적 비용이 증가한다’며 투표시간 연장을 반대하고 있다. 일견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 선거일이 공휴일인 만큼, 사업장에서 근무를 강요하는 것은 불법임에 분명하다. 그렇다고 투표권 보장 책임을 모두 개별 기업에 돌릴 수는 없다. 영세 사업장이나 24시간 돌아가야 하는 상시근로 사업장에 공휴일 원칙을 내세운다 하여 실질적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겠는가. 근로기준법은 근로자가 투표에 필요한 시간을 청구할 경우 사용자는 거부하지 못하며, 위반 시 2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투표시간을 보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용자가 처벌받은 사례는 전무하다고 한다. 사회적 비용 증가를 근거로 한 ‘연장 불가론’도 타당성이 미약하기는 마찬가지다. 투표시간을 연장하면 국민들이 밤새 개표를 지켜봐야 하고 개표종사자들의 다음날 근무에 지장을 준다는데, 이로 인한 비용이 주권자들의 참정권보다 중요한 문제인가.

지난해 한국정치학회가 발표한 ‘비정규직 노동자 투표참여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8년 18대 총선에 참여하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 중 64%가 투표 포기 사유로 ‘근무시간 중 외출할 수 없다’ ‘자리를 비울 경우 임금이 깎인다’는 등의 불이익을 들었다. 정치권은 이번 대선에서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소중한 투표권을 포기하도록 방치할 것인가. 투표하고 싶어도 못하는 유권자가 단 한 명이라도 존재한다면 그들을 위한 제도적 대책을 강구해야 마땅하다. 투표시간 연장과 부재자투표소 설치요건 완화, 선거일 근무를 강요하는 사업장에 대한 단속·처벌 강화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임시공휴일인 선거일을 법정공휴일로 전환해 휴일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다시 말하건대 투표권 보장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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