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2일 수요일

[사설] 박근혜, 사실관계 오류와 사법체계에 대한 무지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9-11일자 사설 '[사설] 박근혜, 사실관계 오류와 사법체계에 대한 무지'를 퍼왔습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어제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인혁당 사건을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할 이유를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대법원에서 상반된 판결이 나온 것도 있지만 그 조직에 몸담았던 분들이 최근 여러 증언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박 후보의 이런 말을 접하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는 것은 그가 정확한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인혁당 사건에 대한 재심 판결을 내린 것은 대법원이 아니라 서울중앙지법이다. 검찰이 지법의 무죄 판결에 승복해 항소를 포기해 무죄가 확정된 것이다. 박 후보가 계속 ‘같은 대법원’ 운운하는 것도 실소를 자아내지만 ‘조직에 몸담았던 사람들의 증언’ 발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박 후보가 말한 증언자는 박범진 전 신한국당 국회의원과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등을 지칭하는 듯하다. 박 전 의원은 2010년 “나 자신이 인혁당에 입당해 활동했다. 인혁당 사건은 조작이 아니다”고 증언했고, 안 교수 역시 “인혁당 사건과 통혁당 사건 등은 대부분 실체가 있는 사건”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박 후보는 이들의 주장을 근거로 자신의 발언을 정당화하려 하는 것이다.하지만 박 후보는 이 대목에서 중대한 사실관계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박 전 의원 등이 말한 사건은 1964년에 일어난 ‘1차 인혁당 사건’이다. 1975년 4월 도예종씨 등 8명에게 대법원이 사형을 선고해 18시간 만에 사형을 집행한 ‘2차 인혁당 사건’(인혁당 재건위 사건)과는 다른 것이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사건은 바로 2차 인혁당 사건인데도 박 후보는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관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주장을 앞세우는 것은 지도자로서는 치명적 결함이다. 박 후보는 아버지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집착이 워낙 강하다 보니 기본적인 사실관계마저 무시하며 모든 것을 자기 입맛대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박 후보가 우리 사법체계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것은 더욱 충격적이다. 뒤에 나온 판결이 앞의 판결보다 효력이 우선이며, 재심 제도는 앞선 확정판결에서 중대한 흠이 발견됐을 때 이를 바로잡는 비상구제 절차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도 ‘인혁당 판결이 두 개’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모습을 보면 박 후보가 과연 기본적인 법의식을 갖추고 있는지조차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더욱 한심한 것은 박 후보의 잘못을 바로잡기는커녕 아부성 발언과 눈치 살피기에만 급급한 새누리당 의원들의 태도다. 이한구 원내대표는 “박 후보에게 부친 문제를 묻는 건 연좌제”라고 했고, 판사 출신인 여상규 의원은 “과거 유죄 판결이 내려진 걸 훗날 무죄로 뒤집는 등의 사례는 사법부의 자기부정이 아니냐”고까지 말했다. 이처럼 소신도 줏대도 없는 인사들이 당에 득실거리는 것은 박 후보 용인술의 한계를 보여준다.박 후보는 인혁당 사건과 관련한 자신의 발언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어제 오후에는 “대법원 판결(재심 판결)을 존중한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렇지만 이번 사안은 그런 말로 어물쩍 넘어갈 수도, 넘어가서도 안 되는 문제다. 재심 판결을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두 개의 상반된 판결’을 거론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조직에 몸담았던 사람들의 증언’ 중에 과연 2차 인혁당 사건이 조작이 아니라는 증언이 있는지 등을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사법체계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있는지를 명백히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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