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5일 화요일

박근혜의 한국어는 틀렸다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9-24일자 기사 '박근혜의 한국어는 틀렸다'를 퍼왔습니다.

▲ (서울=뉴스1) 박정호 기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후보 박근혜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버지 박정희가 관련된 ‘과거사’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기자회견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한 아버지의 딸이 아니라 새누리당의 대선후보로서, 이번 대선이 대한민국의 미래비전과 민생정책을 놓고 경쟁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과거사 논쟁으로 사회적 논란과 갈등이 지속되니 안타깝다. 건국 이후 반세기만에 산업화와 민주화에 동시에 성공하는 압축적 발전의 과정에서 상처와 아픔, 굴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아버지는 5·16 이후 “다시는 나와 같은 불행한 군인이 없어야 한다”면서 유신시대에 대해서는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고 했다. 나는 아버지가 후일 비난과 비판을 받을 것을 알았지만 국민을 잘 살게 하고야 말겠다는 간절한 목표와 고뇌가 진심이었음을 잘 알고 있다.
정치에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음은 과거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민주주의 가치라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상처와 피해를 입은 분들과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면서 그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문재인 캠프 쪽에서는 “늦었지만 변화된 인식을 보여준 점은 평가할 만하다.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나는 이런 공식 논평은 유권자들을 향한 ‘덕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가 읽은 기자회견문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그가 한국어를 완전히 잘못 쓰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난다. 박근혜는 ‘5·16’과 ‘유신’, 그리고 ‘인혁당 사건’ 등이 ‘헌법 가치를 훼손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과서에 나와 있는 ‘5·16 군사쿠데타’가 아니라 ‘5·16’이라고 기자회견문에 명기했다. 이제까지 ‘구국의 혁명’이라고 찬양하던 것을 막연하게 ‘5월 16일’이라고 부른 것이다.
박근혜가 국어에 무지한지, 아니면 알면서도 용어를 교묘하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따져보자. ‘5·16’이 아닌 5·16 쿠데타 또는 군사반란은 주권자인 국민들이 총선거를 통해 간접으로 세운 민주정부를 뒤엎은 헌법 파괴행위였다. 이른바 ‘10월 유신’은 그에 못지 않은, 아니 어떤 면에서는 훨씬 더 극악한 헌정쿠데타였다. 박정희가 1972년 10월 17일 저녁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발표한 ‘대통령특별선언’은 그 자신의 존립 근거인 ‘제3공화국 헌법’을 유린하면서 ‘10월 유신 헌정쿠데타’를 합리화한 문서에 불과했다. 서울시내 곳곳에 군 병력이 배치되고 광화문 네거리에 탱크가 동원된 가운데 박정희는 국회를 해산하고 정치활동을 금지하며 헌법 일부 조항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남북대화와 통일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치체제 수립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당시 남북 대화는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서 ‘10월 유신’이라는 것은 세 번째 대통령 임기를 마친 박정희가 종신집권을 위해 일으킨 헌정쿠데타였다는 사실이 나중에 명백히 드러났다. 지난 21일 전 대법원장 이용훈은 고려대 로스쿨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헌법과 민주주의’ 강연에서 “5·16 쿠데타세력이 만든 제3공화국 헌법은 대통령 3선 조항만 빼면 굉장히 선진적이었는데 (유신헌법으로) 10년만에 휴지 조각이 됐다”면서 “이런 헌법에 기초해서 긴급조치가 발령됐고 10·26 때까지 긴급조치가 통치수단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폭압적인 권력 앞에서는 헌법도 법치주의도 소용없다는 걸 내 눈으로 본 바 있다”고 덧붙였다.
‘인혁당 사건으로 헌법 가치가 훼손되었다’는 박근혜의 주장을 보고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다. 1974년의 제2차 ‘인혁당 사건’이 중앙정보부를 비롯한 정보기관의 고문과 증거 조작으로 만들어졌다는 것, 그리고 피고인 8명이 무죄라는 사실은 대법원의 재심 판결로 확인되었다. 그것은 정보기관과 재판부가 저지른 ‘사법살인’이었다. 그들은 1975년 4월 8일 대법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지 18시간만에 교수형을 당했는데, 최근 공개된 국가기록원의 사형집행명령서에는 사형 판결 전에 이미 사형이 확정된 것으로 적혀 있었다. 법의 이름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이 ‘헌법 가치를 훼손한 행위’일까? 그것은 공권력이 헌법을 아예 부정하고 국민의 생명을 자의로 빼앗은 무도한 짓이었다.
박근혜는 기자회견문에서 “과거사 논쟁으로 인해 사회적인 논란과 갈등이 지속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많은 고뇌의 시간을 가졌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헌법에 따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공권력의 고문과 사건 조작으로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잇달아 생기던 ‘과거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겪어야 하는 ‘사회적 논란과 갈등’이 박근혜에게는 고통스러울지 몰라도, 독재와 인권 유린으로 얼룩진 과거사를 바로잡아 밝은 미래를 창조하기를 바라는 국민들은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믿을 것이다.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박근혜는 아버지가 ‘유신시대’에 대해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고 한 말을 상기시키면서 “국민들께서 딸인 제가 아버지 무덤에 침을 뱉는 것을 진정 원하시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역사의 발전을 원하는 국민들이라면 ‘아버지의 무덤에 침 뱉기’보다는 그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기간에 5년 동안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한 딸의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를 더 기대할 것이다.
박근혜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질문을 받지도 않은 채 굳은 표정으로 회견장을 떠났다고 한다. 그의 심경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지난 4·11총선 뒤 50%를 넘나들던 지지율이 최근 40% 초반대로 떨어져 ‘박근혜 대세론’이 무너져버렸으니 말이다. 그가 기자회견을 하던 날 아침에 나온 조선일보 1면 머리기사 제목은 ‘양자대결 지지율, 문재인도 박근혜 추월’이었다. 23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미디어리서치에서는 문재인 45.9% 대 박근혜 45.0%, 한국리서치에서는 문재인 47.7% 대 박근혜 45.0%였다. 두 기관의 조사 결과, 안철수 대 박근혜는 각각 49.9% 대 41.2%, 50.6% 대 39.9%였다.
박근혜에게 지금 절실한 일은 추락한 지지율 회복일 것이다. 그가 한국어를 비틀면서까지 잘못된 과거사의 늪에서 벗어나려 하지 말고 차라리 근자에 새누리당 대선 캠프의 핵심적 인물들과 측근들이 휘말린 부정과 추문에 대해 ‘일차적으로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고 솔직하게 사과하는 일이 먼저가 아닐까?

김종철 (언론인)  |  cckim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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