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5일 토요일

견공의 재능 기부 ‘야생동물 똥 찾기’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홍섭기자 블로그 물바람숲 2012-09-14일자 기사 '견공의 재능 기부 ‘야생동물 똥 찾기’'를 퍼왔습니다.

암 환자 가리는 후각으로 올빼미 펠릿, 범고래 배설물 찾아 보전에 기여
공놀이 집착하는 외곬 성격이 적합…배설물 찾은 뒤 보상으로 놀아줘

» 범고래 배설물 찾기의 '달인' 터커. 사진=워싱턴대 보전생물학연구센터

크낙새는 남한에서 20년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가장 희귀하고 멋진 딱따구리이다. 광릉 수목원에 크낙새의 모형을 달아놓고 그 밑을 지나가면 ‘클락~ 클락~’ 하고 울도록 만들어 놓은 적이 있다. 부디 돌아오라는 염원을 담은 장치이지만, 만일 크낙새가 나타난다면 이 녹음 소리에 실제로 응답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딱따구리인 북부점박이올빼미를 조사할 때도 녹음된 울음소리를 이용한다. 미국 서북부 해안의 온대우림에 서식하는 이 딱따구리를 연방정부가 1990년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하자 벌목 일자리 3만개가 사라진다며 “새가 중요하냐 일자리가 중요하냐”는 사회적 논란이 불거졌다.

» 미국의 유명한 멸종위기종 북부점박이올빼미.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이 새를 보전하려면 서식지가 어디인지 아는 것이 먼저다. 연구자들은 번식기에 녹음된 북부점박이올빼미 소리를 들려주는 방법을 쓴다. 짝짓기 때 영역 지키기에 민감해진 올빼미는 이 소리를 들으면 곧바로 반응해 울음소리를 낸다.
과학자들은 이 소리를 추적해 올빼미를 발견하면 산 쥐를 내놓는다. 둥지를 튼 올빼미라면 둥지로 쥐를 가져갈 것이고 아니면 그 자리에서 먹어치울 것이다. 이로써 올빼미의 번식 여부와 둥지 위치 등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벌목이 이뤄지지 않는데도 이 올빼미의 수는 해마다 줄고 있다. 북미 동부에 사는 줄무늬올빼미가 외래종으로 들어와 토종 북부점박이올빼미를 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상황은 기존의 울음소리 조사 방법에 지장을 초래했다. 외래종 올빼미에게 들킬 것을 겁낸 토종 올빼미가 과학자가 들려주는 녹음 소리에 반응하지 않는 경향이 생긴 것이다.

» 올빼미 펠릿을 찾아내고 자랑스러워하는 탐지견 맥스. 왼쪽 위에 올빼미가 보인다. 사진=워싱턴대 제니퍼 하트먼

이에 미국 워싱턴대 보전생물학센터가 내놓은 대안이 바로 탐지견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암에 걸린 사람의 미묘한 체취 차이도 가려내는 개의 후각을 이용해 북부점박이올빼미가 게워내는 먹이 찌꺼기인 펠릿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 센터 사무엘 와서 소장은 최근 미국 공공과학도서관이 발행하는 온라인 공개학술지 에 실린 논문에서 탐지견을 이용해 실제로 북부점박이올빼미를 조사했더니 녹음을 이용한 것보다 뛰어난 결과를 얻었다고 소개했다.
조사에는 라브라도 리트리버 잡종견인 슈렉과 호주 소몰이개 잡종견인 맥스가 나섰는데, 세 번의 조사에서 87%의 확률로 점박이올빼미를 탐지해 냈다. 울음소리를 이용한 조사에서는 탐지 성공률이 59%에 지나지 않았다.

» 회색곰의 배설물을 탐지하는 탐지견과 연구원. 사진=보전생물학센터

이 센터는 1997년부터 개의 후각을 이용한 야생동물 배설물 조사를 광범하게 해오고 있다. 조사 대상은 호랑이, 회색곰, 퓨마, 재규어, 늑대 등 다양한데, 특히 범고래의 배설물 추적이 유명하다.
야생동물의 배설물 탐지견은 유난히 집중력이 강하고 지치지 않고 놀이에 몰두하는 성격을 지닌 개에서 선발한다. 지나치게 공에 집착해 가정에서 기르지 못하고 보호소로 보낸 개가 그런 예이다. 그런 개만이 하루 종일 평원을 가로지르고 산을 오르고 눈밭을 헤치고 다녀도 마침내 주인과 공을 가지고 노는 보상을 기대하며 즐겁게 일할 수 있다.
이 센터에서 범고래 배설물 추적의 ‘달인’인 터커가 바로 그런 개였다. 래브라도 레트리버 잡종견인 터커는 공놀이를 미친 듯이 좋아한다. 연구진은 조사선에 터커를 태우고 범고래 조사에 나선다. 연구진은 조사선에 터커를 태우고 범고래 조사에 나선다. 이때 가장 중요한 건 바람에 수직방향으로 운항하는 것이다. 그래야 터커가 고래 배설물을 찾아낸다.

» 범고래의 배설물. 물에 뜨지만 곧 흩어져 버린다. 사진=보전생물학센터

» 범고래의 배설물에 접근하자 흥분한 모습을 보이는 터거. 사진=보전생물학센터

범고래의 배설물은 물에 뜨는데 30분쯤 지나면 물에 풀려 사라져 버린다. 연구자들은 배설물을 수거해 분석함으로써 고래가 무얼 먹었는지, 스트레스와 영양 상태는 어떤지, 성별은 무언지, 어떤 개체인지를 알아낸다.
터커가 벌떡 일어나 꼬리를 쳐들면 전방에 배설물이 있다는 뜻이다. 이 개는 2㎞ 가까운 거리에서 배설물을 탐지할 수 있다. 배가 목표물에 접근할수록 개의 반응은 강해지는데, 반대로 멀어지면 개는 “뱃머리를 돌려라”라고 외치듯 뒤를 돌아본다. 물론 배설물을 수집하자마자 연구진은 터커와 공놀이를 해준다.
가축화 역사가 가장 긴 개는 야생동물보다 사람 편이다. 야생동물 사냥을 돕고 가축이 그들의 식사거리가 되지 않도록 헌신한다. 야생동물 시각에서 보면 일종의 배신이다. 이제 똥을 찾아내는 그들의 후각 덕분에 개는 야생동물 보전에 기여하는 역사적 변신을 하고 있는 셈이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Wasser, Samuel K, Lisa S. Hayward, Jennifer Hartman, Rebecca K. Booth, Kristin Broms, Jodi Berg, Elizabeth Seely, Lyle Lewis, Heath Smith. 2012. Using Detection Dogs to Conduct Simultaneous Surveys of Northern Spotted (Strix occidentalis caurina) and Barred Owls (Strix varia)PLoS ONE 7(8): e42892.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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