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7일 금요일

‘4년전 악몽’ 나영이네 “피해자 복지 탁상행정에 억장 무너져”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9-06일자 기사 '‘4년전 악몽’ 나영이네 “피해자 복지 탁상행정에 억장 무너져”'를 퍼왔습니다.

나영이가 그린 그림 = 8세 여아 나영이(가명)에게 성폭행을 해 평생 장애를 남긴 50대 남성에 대해 법원이 징역 12년형이 선고한 가운데 30일 청와대 자유게시판에 법원의 판결을 비판하는 시민들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 사진은 나영이가 그린 그림. 나영이는 이 그림을 통해 범인을 처벌하고 싶은 내용을 표현했다.

성금으로 연금저축 들자
기초수급 올 석달간 끊겨
정부 “치료비 평생 지원"
나영이 아버지 “처음 들어”

“피해자 복지 확충 방안은 구체적인 게 없는데, 불심검문 같은 단속만 강화한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2008년 12월 발생한 아동 성폭력 범죄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 나영이(당시 8살)의 아버지(59)는 6일 와 만난 자리에서 정부의 성폭력 대책에 분통을 터뜨렸다. 딸이 끔찍한 일을 당한 뒤 성범죄 예방과 제도 개선에 발벗고 나선 그는 “조두순·김길태 같은 아동 성범죄자들은 가진 거라곤 몸뚱어리 하나뿐인 사람들이어서 피해 보상을 청구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국가와 가해자 양쪽 모두에서 보상을 받기 힘든 게 피해자들에게 가장 큰 어려움이라는 것이다.나영이네의 경우만 보더라도 성폭력 피해자 지원제도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기초생활수급자였던 나영이네가 2009년 국민들의 성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수급자에서 탈락할 위기에 놓이자, 보건복지부는 범죄 피해자 성금을 기초수급 자산조사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하지만 나영이네는 올해에도 석달 정도 수급이 중지됐다. 영구 장애를 입은 나영이가 성장한 뒤 살길을 마련해주려고 매달 받는 성금을 모아 연금저축에 가입했는데, 이것이 정부 조사에서 다시 자산으로 잡히고 엄마의 일용근로 소득도 문제가 돼 수급탈락 통지를 받았던 것이다. 담당 공무원에게 항의한 끝에 겨우 수급 자격을 회복할 수 있었다.나영이 아버지는 “담당 공무원이 바뀔 때마다 목청 높여 싸워야 해결되는데, 이런 탁상행정이 매번 피해자 가족의 억장을 무너뜨린다”고 말했다. 성폭력 피해자는 개인정보 보호가 절실한 만큼, 가족들이 큰 목소리로 억울함을 주변에 알리기조차 힘든 상태임을 배려하는 더 세심한 복지행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이번 나주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 뒤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이 정부의 치료비 지원에서 누락된 부분이 있다고 지적하자, 여성가족부는 “피해자 치료비는 평생 청구하는 만큼 지원된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나영이 아버지는 “평생 지원은 처음 듣는 얘기”라며 “나영이 치료비는 의료급여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지원하는 성금으로 충당한다”고 말했다. 나영이의 미래를 위해 쓰일 수 있었던 국민 성금이 치료비로 나가고 있는 셈이다.“피해자 복지가 충분치 않은 탓에 성범죄 피해에 따른 치료비와 생활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가해자와 합의를 하는 가족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합의를 하면 감형 요인으로 작용해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죠.”그는 “큰 수술을 한 나영이는 장애인연금을 받지만 다른 피해자들은 지원 폭이 더 적을 것”이라며 “사회안전망에 대한 국가 책임과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복지 지원 확대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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