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일 토요일

철수가 근혜를 이기려면? 민주당 손잡고 '38선' 넘어야!


이글은 프레시안 2012-08-31일자 기사 '철수가 근혜를 이기려면? 민주당 손잡고 '38선' 넘어야!'를 퍼왔습니다.
[정치 몰입] 박성민-이철희-전홍기혜, 대선을 말하다

"안철수는 2012년 대선에 출마할까?"

지난 1년간 정말로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하지만 대선을 100일 가까이 남겨둔 지금 시점에서는 질문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안철수는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의 박근혜에게 승리할 수 있을까" 혹은 더 나아가 "그렇게 승리하면 안철수는 과연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안철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이 (안철수의 생각)(김영사 펴냄)을 펴내고 또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비교적 자세히 자신의 속내를 밝히면서, 그의 대선 출마는 사실상 기정사실로 굳어졌다. 그는 계속해서 출마 선언을 미루고 있지만, 대다수 시민들은 오는 12월 19일 박근혜 후보와 안철수 원장의 양자 대결 구도가 펼쳐지리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안철수 원장은 출마 선언의 전제 조건으로 "국민의 뜻"을 말했다. 강준만 전북대학교교수가 (멘토의 시대)(인물과사상사 펴냄)에서 날카롭게 간파했듯이 그는 여전히 "대중의 배신"을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대중은 이기든 지든 그가 박근혜 후보와 링에 오르길 바란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어떨까? '프레시안 books'는 대선을 100일 정도 앞둔 시점에 박성민 '정치 컨설팅 민' 대표, 이철희 두문정치연구소 소장, 전홍기혜 (프레시안) 정치팀장과 함께 (안철수의 생각), (안철수의 힘)(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등 최근에 쏟아진 안철수 현상에 대한 논평을 읽었다.

그리고 태풍 볼라벤이 수도권에 근접해 온 28일 오전,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얘기들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초점은 다시 한 가지 질문으로 모아졌다. "안철수는 12월 대선에서 박근혜를 이길 수 있을까?" 여러분의 대답은 어떤가? 한 번 비교해 보자. 그리고 12월 20일을 기다려 보자! (편집자)

'안철수 현상'의 본질은?

프레시안 : 지난 2011년 8월 24일 무상 급식 주민 투표가 있고 나서 1년이 지났습니다. 1년간 정말로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어요.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2011년 8월 26일), 새누리당 총선 승리(2012년 4월 11일) 그리고 이제 9월이니 12월 19일 대선이 거의 100일 앞으로 다가옵니다.

지난 1년간 변치 않고 유지해온 흐름이 있다면 바로 '안철수 현상'입니다. 무상 급식 주민 투표 이후에 갑작스럽게 정치의 전면에 나선 안철수 서울대학교 교수는 이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함께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본인은 대선 출마 선언을 미루고 있지만, 시민 대부분은 사실상 유력한 대선 후보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박성민 '정치 컨설팅 민'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박성민 :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이 언급은 꼭 해야겠어요. 출마 선언도 하지 않은 대선 후보(?)를 놓고서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상황이 '상식적'인 게 아닌데….

이제부터 정색하고 안철수 교수 얘기를 해야 하니까 참 당혹스럽네요. 우리가 '비상식적'인 사람들이 된 듯해서 말이죠. 안 교수가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누가 '상식'이고 누가 '비상식'인지 헷갈립니다. 하기야 지금의 안철수 현상이 '안철수'를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안철수 같은' 사람을 원하는 것인지도 헷갈립니다만.

전홍기혜 : 당혹스럽기는 현장에서 취재를 하는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항상 정당을 놓고서 정치 기사를 쓰는 입장에서 보면, 정당 밖에서 안철수 교수가 1년 가까이 가장 유력한 여당 후보(박근혜)에 버금가는 지지율을 유지해온 것 자체가 미스터리입니다. 게다가 여의도 바깥의 사람들 중 특정 세대(20, 30대)에게 안철수 교수는 이미 다음 대통령이잖아요. (웃음)

이철희 : 여기서 대선 예비 주자로서의 '개인 안철수'와 '안철수 현상'은 구분할 필요가 있어요. 그럼, 안철수 현상의 본질이 뭘까요? 이명박 정부 5년을 겪으면서 많은 한국시민들이 이런 인식을 가지게 되었어요. '한국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데 더 이상 보수의 해법으로는 안 된다!'

저는 이런 열망이 표출된 것이 바로 1년 전의 안철수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점에 '개인 안철수'가 부각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안철수 현상'이라고 이름이 붙었을 뿐이지 만약에 다른 누군가가 그 시점에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 현상은 전혀 다르게 불렸을 거예요.

프레시안 : 그렇다고, 대중이 진보의 해법에 열광한 것도 아니잖아요?

이철희 : 그런 점에서 지난 1년간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진보가 보인 모습은 정말로 안타깝습니다. 진보가 안철수 현상의 밑에 놓인 대중의 열망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안철수 현상의 에너지는 고스란히 민주통합당이든 통합진보당이든 어쨌든 현실의 진보 세력으로 수렴되었을 거예요. 그런데 진보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대중이 원했던 건 '혁신'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민주 시대'에서 '복지 시대'로의 이행을 요구했어요. 하지만 진보 특히 민주통합당은 그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지난 4·11 총선에서 복지 시대에 걸맞은 어떤 정책 혁신이 있었습니까?

인물 혁신은 더 별 볼 일 없었어요. 민주 정부 때 배지를 달았던 이들이 고스란히 총선 내내 전면에 부각이 되었습니다. 혁신의 내용도 부실한데, 그 내용을 실천할 사람의 면면도 엉터리니 김기원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고단하고' '억울하고' '불안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겠어요? 야당의 4·11 총선 패배는 그래서 당연한 결과였죠.

대선 출마 선언도 하지 않은 안철수 교수에 대한 여전한 대중의 높은 지지는 역설적으로 안철수 현상에 깔린 대중의 열망이 정치적 에너지로 전화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대통령 선거의 불편한 진실

▲ <안철수의 생각>(안철수 지음, 제정임 엮음, 김영사 펴냄). ⓒ김영사
프레시안 : 정작 안철수 현상으로 나타난 열망은 '안철수 현상'이 아니라 '개인 안철수'로 수렴되었습니다. 지금(2012년 8월 28일) 민주통합당 경선이 진행 중이지만, 그래서 문재인, 손학규 후보 등에게 미안한 얘기입니다만, 사실상 대중은 박근혜 후보와 상대할 유일한 대선 후보로 안철수 교수를 선택했어요. 여론 조사 결과가 그걸 말해주고요.

박성민 : 사실 안철수 현상 자체는 거대한 변화의 한 징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는 얘기지만 노태우 전 대통령은 다수당의 다수파였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다수당의 소수파였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소수당의 다수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소수당의 소수파였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 안철수 교수는 '개인'일 뿐입니다.

이런 변화의 원인으로는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디지털 혁명 그리고 정당의 약화 등을 들 수 있겠어요. 그런데 이런 변화만 강조하다 보면, 한국의 정치 현상의 가장 중요한 맥락을 놓칠 수가 있어요. 자, 이렇게 질문을 바꿔볼까요. 디지털 혁명, 정당의 약화 같은 변화 속에서도 왜 새누리당(한나라당)은 20년 이상 굳건할까요?

바로 이 질문에 주목해야 합니다. 자, 생각해 보세요. 민주통합당은 2010년 6월 경기도지사 후보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2011년 10월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못했어요. 안철수 교수에게 밀려서 오는 2012년 대통령 후보도 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큰 선거에서 3년 연속 후보를 내지 못한 제1야당이 정당으로서의 존재 이유가 있을까요?

새누리당이 선거에서 후보를 내지 못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어요. 대통령을 꿈꾸는 보수 인사라면 당연히 새누리당으로 들어와서 경쟁을 해야 합니다. 이회창 후보가 그랬고, 이명박 대통령이 그랬고, 지금의 박근혜 후보가 그랬습니다. 대통령이 되려는 정치인뿐만 아니라 당원들도 그렇게 당연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당 밖의 인물을 고려할 때도 결국에는 당으로 들어와서 당의 후보가 되는 것만 상상할 뿐, 후보를 안 내는 혹은 못 내는 상황은 당직자도, 당원들도 생각도 못하거든요.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지금의 안철수 교수처럼 밖에서 민주통합당을 흔드는 모습은 아예 머릿속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새누리당은 다른 정치 세력과의 연대 없이 단독으로 집권할 수 있는 유일한 정당이기 때문입니다.

1997년에 외환 위기가 한국 경제가 풍비박산이 났어요. 또 한나라당에서 탈당한 이인제 후보가 출마해서 19퍼센트나 득표했어요. 정말 정권 교체가 당연해 보이는 이런 상황에서도 김대중 대통령은 김종필 전 자민련(자유민주연합) 총리와 연대했음에도 고작 1.5퍼센트 차이로 이길 수 있었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2년 당시 이력이나 노선에 있어서 '달라도 너무 달랐던' 정몽준 후보와 여론 조사로 후보를 결정하는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겨우 유일한 야권 후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정몽준 후보의 지지가 얼마나 되었을지는 미지수지만요. 그렇게 단일 후보가 되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과 2등과의 차이는 고작 2.3퍼센트였어요.

여기서 우리는 한국 정치의 불편한 현실을 직시해야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대한민국에서 대통령 선거 따위는 없습니다. 현재의 구도에서 5년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바로 새누리당 후보에 대한 찬반 투표입니다. 1997년 반대, 2002년 반대, 2007년 찬성! 그리고 우리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놓고 오는 12월 19일 찬반 투표를 진행할 예정이고요.

그런 현실이 반(反)새누리당 후보가 어느 당이냐가 별로 중요하게 안 여겨지는 이유일 겁니다. 누가 새누리당 후보를 이길 수 있느냐만 중요한 거죠. 이런 구조적 불균형이 안철수 현상과 같은 제3후보에 대한 열망, 반복되는 야당의 위기 그리고 대선 때만 되면 존재감이 사라지는 진보 정당의 한탄을 낳고 있습니다.

프레시안 : 1990년 3당(민정당, 민주당, 공화당)이 합당해서 민자당(민주자유당)을 만든 후과입니다.

박성민 : 맞아요. 그때 만들어진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의 '90년 동맹'은 지금까지 한국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상수입니다. 이 '90년 동맹'을 깨지 않는 한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의 본질은 계속해서, 당명이야 어떻든 간에, 새누리당 후보에 대한 찬반 투표가 될 수밖에 없어요.

▲ 이철희 두문정치연구소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이철희 : 동의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편을 드는 정치 세력이 유리한 건 당연합니다. 더구나 분단 체제의 효과까지 염두에 두면 새누리당으로 상징되는 보수 세력으로 힘의 균형추가 기울어져 있다는 걸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그런 새누리당 고정 지지가 대한민국 국민의 40퍼센트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전홍기혜 : 바로 그런 여권 고정 지지를 '38선'에 비유합니다. 새누리당과 그 후보를 찍는 이들이 투표율에 상관없이 항상 38퍼센트가 존재한다는 거예요. 1997년 최악의 조건에서도 당시 이회창 후보가 38.2퍼센트를 가져갔어요. 지난 2010년 6·2 지방 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이 참패했다지만, 광역의원 비례대표 투표에서 한나라당이 39.8퍼센트를 가져갔고요.

이철희 : 그걸 다른 쪽에서 보자는 거예요. 대한민국 국민의 60퍼센트 정도는 새누리당으로 상징되는 보수 세력을 불신합니다. 이들은 언제든지 매력적인 '대안'이 나타나면 새누리당이 아닌 민주통합당이나 혹은 다른 정치 세력을 선택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저는 그런 60퍼센트의 열망이 바로 '안철수 현상'을 만든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얘기입니다만, 그래서 저는 방금 박성민 대표가 언급한 것과는 다르게 말하고 싶어요. 대선은 새누리당으로 상징되는 보수 후보에 대한 찬반 투표가 아니라 민주통합당으로 상징되는 진보 후보에 대한 '신임 투표'입니다. 다만 지금의 민주통합당은 그런 매력적인 대안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지요. 그 결과가 바로 '개인 안철수'에 대한 열광이고요.

Again 2002? Again 2007!

프레시안 : 여기서 이제 좀 더 솔직한 얘기를 해볼까요. 아마 이 대화를 읽는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 할 질문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개인 안철수'가 대통령 선거에 나가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꺾을 수 있을까? 점쟁이처럼 예측을 해보라는 게 아닙니다. (웃음) 같이 주목해 볼 만한 지점을 살펴보지요.

박성민 : 지금 정치 논평을 하는 많은 지식인들은 오는 대선이 1대 1 구도가 된다면 '박빙' 승부가 되리라고 예상합니다. 여야 모두 그런 전망이 우세하지요. 대선 전망을 할 때는 상대에 대한 과대평가도 독이 되지만 근거 없는 낙관은 더 위험합니다. 냉정할 필요가 있어요. 특히 야권은 더 냉정해야 합니다. 기본 체력이 여권보다 약하니까요.

감히 말하건대, 이번 대선은 세 가지 가능한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①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가 5퍼센트 이상의 제법 큰 차로 승리한다. ② 박빙 승부가 되지만 박근혜 후보가 신승한다. ③ 역시 박빙 승부가 되어서 야권 후보가 신승한다. 여기서 신승의 기준은 표차가 5퍼센트 이내로 나는 것이지요.

그런데 ①이 아니라 ②, ③ 시나리오가 되려면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달려가는 열차의선로를 변경하는 정도로 여론의 흐름에 대반전이 있어야 해요. 누구나 어깨가 들썩이고 감정이 고조되는 변화에 대한 열망이 저 밑바닥부터 솟구쳐야 해요. 마치 2002년처럼! 모두가 느낄 정도의 변화의 태풍이 불어야 합니다. 그것도 중형이 아닌 대형으로요.

다시 말해 그런 흥분 상태가 되어도 야권이 꼭 이기리란 보장이 없다는 거예요. 이겨도 겨우 이기고요. 2002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세요. 이른바 '386 세대'와 그 바로 이전 세대가 노 전 대통령에게 마지막 열정을 투사했잖아요. 그런데도 뚜껑을 열어보니 어땠습니까? 후보 단일화를 하느라 난리법석을 떨었고, 그러고도 2.3퍼센트 차이밖에 안 났어요.

프레시안 : 그래서 ①, ②, ③ 중에 어떤 시나리오가 유력합니까? (웃음)

박성민 : 아직 대선까지 100일도 넘게 남았잖아요. 다만 아직은 1번 레일로 달리는 듯 보이네요. 야권이 이기려면 누군가 선로 변경 장치를 잡아당겨야 할 텐데 아직은….

▲ 전홍기혜 정치팀장. ⓒ프레시안(최형락)
전홍기혜 : 지금과 같은 상황만 보면, 안철수 교수를 비롯한 야권이 결코 낙관할 근거가 없습니다. 특히 안철수 교수나 혹은 그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이들은 민주통합당 없이도 안 교수가 박근혜 후보와 박빙의 승부를 펼치거나 혹은 이길 수 있으리라는 낙관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민주통합당의 지리멸렬한 상황을 즐길 때가 아니거든요.

박성민 : 민주통합당과의 성공적인 화학적 결합 없이는 안철수 교수는 절대로 대선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물론 안철수 교수에 대한 대중의 열망이 꺼져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권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민주통합당과 안철수 교수 모두가 온전히지지 기반을 지켜야 합니다. 어느 쪽이든 조금만 붕괴가 되어도 어려울 겁니다.

이철희 : 동감입니다. 올해 대선의 가장 유력한 변수는 '안철수의 힘'이 아니라 '민주통합당의 노력'입니다. 저는 박성민 대표보다는 야권에게 기회가 좀 더 있다고 판단하는 편입니다만, 지금 민주통합당 경선을 보면 한숨이 저절로 나옵니다. 여전히 민주통합당은 경선 흥행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대선을 두 번이나 이겼던 전략가" 운운하면서 정치를 보는 눈이 저 정도 수준밖에 안 될까요? "Again 2002"를 외치며 경선 흥행을 백날 꾀해도 지금 민주통합당과 대선 예비 후보의 준비 상태만 보면 흥행이 될 리가 없어요. 그리고 설사 흥행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효과가 얼마나 가겠어요?

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2002년을 보세요. 엎치락뒤치락 경선 흥행이 성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후보로 선출되었지만 그 효과가 채 3개월도 가지 않았습니다. 대선 100일을 앞둔 시점에서는 거의 10퍼센트대로 지지율이 떨어졌어요. 그리고 월드컵 대회를 계기로 당시 정몽준 후보가 부상했습니다.

오히려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중요한 요인은 경선 흥행이 아니라 그 위기의 100일 동안 보여준 그의 정치인으로서의 탁월한 승부사 기질이었습니다. 노무현 리더십으로 당 안팎을 견인하면서 기어이 야권 단일 후보가 되었고, 더 나아가 시민들의 표심까지 자극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지금 민주통합당을 보세요. 단적으로 말해서 문재인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닙니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의 시대정신을 상징하는 인물이었어요. 문재인 의원이 그런가요? 고작 '도로 노무현'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잖아요.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도 노 전 대통령과 문 의원은 천지차이입니다.

박성민 : 노무현 전 대통령은 탁월한 '선동가'라니까요. 대중의 마음에 불을 확 지르는 데는 노 전 대통령이 정말로 탁월했어요. 사실 문재인 의원뿐만 아니라 안철수 교수도 마찬가지예요. 지금은 뭔가 대중을 긍정적인 의미에서 정치적 흥분 상태로 유도해야 되는데 두 분이 말하는 것을 보면 어떤가요. 흥분한 대중도 다시 차분해지는…. (웃음)

▲ <안철수의 힘>(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인물과사상사
{#8959062170#]이철희 : 그러니까 내용 없이 형식으로 뭔가 분위기를 반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접어야 해요. 결국은 내용이 문제입니다. 지금 민주통합당은 과거의 민주당, 열린우리당과는 다릅니다. 어쨌든 당시보다 훨씬 더 '좌 클릭'한 정당이에요. 또 문재인, 손학규, 김두관 등 대선 예비 후보들도 명시적으로 진보 정체성의 강화를 내세우잖아요.

그렇다면 그런 선언에 걸맞은 내용을 채우는 게 급선무입니다. 진보 정체성 강화의 핵심은 뭡니까? 바로 사회 경제 어젠다입니다. 흔히 노동자, 서민으로 불리는 이들이 "아, 저 정도 내용과 의지면 민주통합당에 한 번 기대를 걸어볼 만한데…"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정도로 파격적인 사회 경제 정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이건 외국의 경험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요. 민주당 시대를 열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동맹'의 핵심에는 사회 경제 정책이 있었습니다. 유럽의 독일, 스웨덴 같은 사회민주주의 정당도 노동 친화적인 사회 경제 정책을 통해서 이른바 '복지 동맹'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프레시안 :그런데 민주통합당이 사회 경제 어젠다를 만지작거리는 동안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측에서 오히려 "복지", "경제 민주화"를 말하고 있어요.

이철희 : 그러니까 민주통합당이 더 공세적으로 사회 경제 어젠다를 얘기해야지요.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가 "복지"를 얘기하면 민주통합당에서는 "어떤 복지냐?"를 놓고 패를 까자고 공격해야 합니다. 그래야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의 차이점이 강조가 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새누리당의 사회 경제 어젠다의 실체를 폭로할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의 민주통합당은 이런 일에는 신경을 안 씁니다. 그런데 민주통합당 바깥에는 그 실체는 불분명하지만 뭔가 매력적인 대안이 있어요. 바로 안철수 교수입니다. 그러니 대중이 민주통합당을 외면하는 게 당연하지요. 그런데 정말 안타깝게도 이렇게 민주통합당이 대중으로부터 외면을 당하면 그것이 바로 안 교수에게도 큰 불행입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직구'는 없고 '변화구'만 있다!

프레시안 : 저렇게 지리멸렬한 민주통합당의 상황과 함께 대선을 100일 앞둔 시점에 주의 깊게 살펴볼 부분이 어떤 게 있을까요?

박성민 : 선거는 스포츠와 전쟁의 중간 어딘가 놓여 있을 거예요. 스포츠나 전쟁과 마찬가지로 선거의 승패도 크게 세 가지 요인에 좌우됩니다. 전력, 전략, 정신력! 그리고 여기에 하나를 덧붙인다면 돌발 상황이 있겠지요. 예를 들자면, 1997년 외환 위기 같은 일이요. 이번 대선에서도 남북 관계 혹은 한일 관계 등에서 그런 돌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무튼 전력, 전략, 정신력 이 세 가지 요인을 염두에 두고 야권의 상황을 점검해 볼 수 있을 거예요. 우선 전력은 어떻습니까? 전력 자체는 야권이 많이 강화가 되었어요. 1997년 대선에서는 JP(김종필)와 손을 잡고, 2002년에는 당시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를 해야 했다면 이번의 안철수 교수는 그보다는 덜 이질적이지 않습니까?

지난 총선 결과도 전체적으로 팽팽한 전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다만 전략과 정신력은 조금 걱정됩니다. 1997년과 2002년 두 번의 승리가 전력의 열세를 전략과 정신력으로 이겨냈다면 지금은 오히려 전력의 상승을 전략과 정신력이 뒷받침하지 못해 질 수 있는 상황이거든요.

지금 야권은 세 가지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지기 기반의 위기, 정체성의 위기, 리더십의 위기가 그것입니다. 먼저 이번 대선을 분석하는 많은 지식인들이 강조하지 않는 중요한 지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이번 대선은 1987년 이후에 진행된 대통령 선거 중 처음으로 호남이 '상수'가 아니라 '변수'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번 2012년 대선은 야권이 김대중 전 대통령 없이 치르는 첫 선거입니다. 2007년 대선까지는 호남은 무조건 반(反)새누리당이었습니다. 하지만 과연 이번에도 호남 사람이 안철수든, 문재인이든 야권 후보에게 몰표를 줄까요? 낙관할 수 있습니까?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결코 낙관할 수만은 없습니다. 야권의 절대 기반인 호남의 투표율과 지지율이 과거만큼 될지 걱정됩니다.

반면에 TK의 사정은 어떻습니까? 오히려 더 똘똘 뭉치고 있어요. 이제 지역 투표의 온상이라고 호남을 비판할 근거가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호남에서는 점점 야권 이탈 표가 나오는 반면에 TK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지역 투표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야권의 전략가들은 수도권과 PK에서 야권이 표를 얻으면 잃어버린 호남 표를 보충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안철수든, 문재인이든 부산 출신이 후보로 나온다고 해서 PK가 얼마나 움직여 줄지는 미지수입니다. 당장 노무현 전 대통령이 PK 표심을 움직이는데 성공했습니까? 문재인 의원이 지난 총선 때 눈에 띄는 성과를 냈나요?

그러니까,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는 38퍼센트의 지지층이 오히려 단단해지고 있는 반면에, 죽어도 새누리당 후보는 안 찍는 35퍼센트 정도 되었던 야권 지지층은 호남 표의 이탈 가능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오히려 약해지고 있어요. 즉, 애초에 강했던 새누리당의 전력이 더욱더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에요.

ⓒ프레시안(최형락)

그럼, 정체성은 어떤가요? 방금 박근혜 후보가 전태일재단 방문을 거부당했다는 뉴스(2012년 8월 28일)를 봤습니다. 박 후보가 이른바 '광폭 행보'라고 부르는 파격적인 모습을 계속 보이고 있어요. 봉하 마을을 가서 노무현 전 대통령 묘를 참배한 데 이어서, 전태일재단도 방문했고요.

분명히 박근혜 후보의 지지층의 입장에서 보자면 달갑지 않은 행동이지요. 하지만 새누리당 안팎에서 그런 박 후보에게 토 다는 세력이나 사람이 있나요? 없습니다. 이심전심의 합의가 있는 겁니다. "박근혜 당신이 대통령으로만 당선될 수 있다면 무슨 '쇼'를 해도 좋아!" 이런 식으로요.

지금 진보가 위기감을 느낄까요? 보수가 위기감을 느낄까요? 단언하건대 후자입니다. 재벌, 언론, 검찰, 사학, 교회 등 한국의 '시장 보수'와 '안보 보수'들은 본능적으로 아는 거예요. 그들에게는 이번에 권력이 진보로 넘어가면 한국 사회의 진보와 보수의 역관계가 반전이 될지도 모르는 위기감이 있습니다. 그러니 정말로 안간힘을 쓰고 선거에 임하는 겁니다.

야권은 어떤가요? 예를 들어서, 안철수 후보가 야권의 단일 후보가 된들 그가 소신대로 자유로운 행보를 할 수 있을까요? 그가 '통합'을 내세우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를 참배할 수 있을까요? 당장 '원탁회의' 원로들부터 한 마디씩 하시겠지요? (웃음) 민주통합당은요? 보수에 박근혜 후보한테 뭐라고 하는 원로가 있습니까, 훈수꾼이 있습니까?

민주통합당의 전략 부재는 이철희 소장이 신랄하게 비판을 했으니 길게 얘기하지는 않겠습니다. 딱 한 가지만 첨언하자면 문재인, 손학규 의원은 물론이고 그리고 안철수 교수까지 너무 한가해요. 비유를 하자면, 박근혜 후보는 전형적으로 직구를 던지는 스타일인데 이제는 변화구까지 습득을 했거든요.

그런데 뒤쫓는 이들은 직구를 던질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내놓은 대선 슬로건만 보세요. "저녁이 있는 삶"(손학규), "사람이 먼저다"(문재인)…. 안철수 교수는 "복지, 정의, 평화" 정도인가요? 다 좋은 얘기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역부족이에요. 지금은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직구 아니 '돌직구'를 던져야 할 때인데요.

지금 야권은 자신의 지지 기반을 지키고, 상대의 지지 기반을 잠식할 전략이 없습니다. 정체성에 집착하지 않고 안철수 교수나 혹은 다른 야권 후보의 광폭 행보를 승인할 여유도 없습니다. 왜냐! 그럴만한 리더십이 없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없는 첫 번째 선거라는 점이 야권의 최대 약점으로 보입니다.

지금 보십시오. "중도로 외연 확대를 해야 한다" "20~40대를 잡아야 한다" "무주공산 호남을 공략해야 한다" 따위의 여권의 전략만 보이지 않습니까. "야권이 보수의 강력한 지지 기반인 50대 이상을 공략해야 한다", "TK에서 정면 승부를 건다", "보수의 어젠다를 뺏어 와야 한다" 등의 소리는 들리지 않거든요.

안철수와 '강남 스타일'

프레시안 : 최근 한국 정치의 또 다른 화두 중 하나는 세대입니다. 특히 민주통합당 후보나 안철수 교수를 지지하는 이들은 이른바 '2040 세대'에 목을 매는 상황입니다.

전홍기혜 : 30대 독자들과 만나서 얘기를 해보면 확실히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로 상징되는 '낡은 보수'에 아주 강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적어도 서울·수도권에서는 오는 대선에서 세대별로 표심이 갈리는 모습을 또렷하게 볼 수 있을 거예요. 대선 당일에 20~40대의 투표율을 둘러싸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게 뻔합니다.

이른바 '세대 투표'가 작동하는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지난 10·26 선거 때 박원순 서울시장의 득표율이 가장 높았던 게 30대입니다. 그런데 무상 급식의 실질적인 수혜 계층이 초등학생 자녀를 둔 바로 이 세대입니다. 사회 경제적 이슈에 대한 민감도가 세대 투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또 하나는 문화적인 측면입니다. 안철수 교수가 자신을 놓고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고 했습니다. 저는 안 교수가 경제적인 측면에서 '진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문화적인 측면에서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후보와 비교해도 그렇고, 민주당 다른 주자와 비교해도 그렇습니다. 그가 가진 '소통의 이미지'가 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철희 :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게 있어요. 일단 인구 구성 비에서 20, 30대의 비중이 떨어지고 있는 사실입니다. 즉, 야권이 40대 더 나아가 50대의 일부를 자기 지지로 끌어오지 못하고 20대, 30대만 쳐다봐서는 절대로 승리를 자신할 수 없다는 거예요. 이런 맥락에서 저는 자꾸 '2040 세대'를 얘기하는 게 과연 적절한 전략인지 회의적입니다.

왜냐하면, '2030' 혹은 '2040'을 말하면서 결과적으로 40대, 50대를 '꼰대' 취급하면서 밀어내는 모습이 있거든요. 그런데 40대, 50대가 그렇게 간단치 않습니다. 그들이 2002년에 '노무현의 기적'을 만들었던 세대예요. 그 세대는 60대 이상처럼 '묻지 마 새누리당'이 아니라는 거예요.

박성민 :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지금 야권의 적절하고 효과적인 전략은 '세대를 말하지 않기'예요. 대신 40대, 50대를 어떻게 야권의 지지자로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들의 마음속 한 구석에서 아직 꺼지지 않은 '마지막 불꽃'을 일깨워야 합니다. 그들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선뜻 주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그 지점을 파고들어야 해요.

프레시안 : 그런데 20대나 30대가 투표장에 나오면 무조건 야권에게 표를 준다는 가정도 한 번쯤 재고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철희 : 투표장에 나오면 야권 후보를 찍겠죠. (웃음) 야권에 거부감을 가진 젊은이가 굳이 박근혜 후보를 찍으러 투표장에 나오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듭니다.

사실 박 후보의 최근 행보가 튀긴 합니다만, 젊은이들에게 매력 있는 후보로 다가가기엔 역부족인 것 같아요. 그간 박 후보가 이명박 대통령과 대립하는 듯하면서 '개혁 보수' 이미지를 가진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최근의 5·16 쿠데타 미화, 새누리당 공천 비리 등을 겪으면서 그 '개혁적' 이미지가 많이 퇴색되었어요.

요즘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싸우지도 않잖아요. 이제 대중은 둘이 티격태격했지만 사실은 한 묶음이라는 걸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극복 대상으로서의 '낡은 보수' 이미지야말로 박근혜 후보가 더 많은 지지를 받는 일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야권이 주요 공략해야 할 지점이 이 부분인데요.

예를 들어서, 박근혜 후보가 전태일재단 그리고 전태일 동상을 방문하는 걸 왜 막습니까? 박근혜 후보가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싫은 특정 세력을 제외하고 대다수 시민에게 그런 모습이 어떻게 비춰지겠어요? 박 후보의 최근 행보에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야권의 미숙한 대응입니다.

전태일 기념관 방문하고, 전태일 동상 앞에서 묵념하는 박근혜 후보에게 야권은 이렇게 반문해야지요. 그럼, "쌍용 자동차 정리 해고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느냐" 더 나아가서 "심각한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은 무엇이냐" 이렇게 물어야지요. 박 후보가 마냥 노동자 듣기 좋은 소리만은 못할 거예요. 핵심 지지층의 계급적 한계가 있으니까요.

야권은 바로 그 지점부터 시작해야죠. 박근혜 후보의 서민 행보가 사실은 얼마나 기만적인지 폭로하는 겁니다. 박근혜 후보가 이른바 '광폭 행보'로 중원을 선점하려고 하는데, 과연 얼마나 왼쪽으로 올 수 있을지 자꾸 시험에 들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박근혜 후보와 야권이 어떤 점에서 다른지를 쟁점으로 만들어야지요.

박정희 독재 시대를 기억하는 이들이 박근혜 후보에게 반감을 가지는 거야 당연히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독재자의 딸", "진정성이 없다" 따위로 박근혜 후보를 비판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박근혜가 나쁘다' 이런 식으로 선악의 구도로 접근해서는 누구도 설득할 수 없어요. '박근혜가 틀렸다'고 목소리를 높여야지요!

ⓒ프레시안(최형락)

박성민 : 저는 최근에 나온 정치 뉴스 중에서 통합진보당의 커피 논쟁이 제일 흥미로웠어요. (웃음) 에스프레소 커피 세대와 자판기 커피 세대 간의 대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잖아요. 박근혜 후보든 혹은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든 또 안철수 교수든 20대, 30대에게 어필하려면 이른바 '강남성'을 가져야 합니다.

최근에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전 세계적으로 떴잖아요. 그 노래와 뮤직비디오는 한국 사회에서 강남의 바뀐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 강남에서 나고 자란 가수 싸이가 말하는 '강남 스타일'의 강남은 1980년대의 '강남 졸부' 1990년대의 '강남 오렌지족'과는 다른 강남이에요. 부끄러운 강남이 아니라 닮고 싶은 강남입니다.

또 싸이의 노래와 뮤직 비디오를 받아들이는 진짜 강남 사람들의 여유는 어떤가요? 만약 1990년대에 강남을 소재로 한 그런 뮤직비디오가 나왔다면 당장 강남 아줌마들부터 들고 일어나고, 강남구청이 싸이에게 소송을 걸고 난리가 났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의 강남 사람들은 오히려 강남이 그렇게 소비되는 걸 '쿨'하게 받아들입니다.

'강남 스타일'의 가사에서 보이는 지향 그리고 강남을 희화화하는 뮤직 비디오조차 수용하는 강남 사람들의 여유야말로 바로 강남성의 전형적인 특징이에요. 예를 들어 이런 거겠죠. 촌스럽지 않고 (자기와 생각이 다른) 타인을 배려할 줄 알고, 다양성을 인정하고, 시야가 국내에 갇힌 게 아니라 국제적인 그런 모습들이요. 한국에서 이런 강남성은 또 다른 힘입니다.

이런 강남성에 제일 환호하는 게 바로 20대, 30대입니다. 지금의 20대, 30대는 외환 위기 같은 시련이 있긴 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이 뻗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성장한 세대입니다. 세계 최대 경제 강국에서 자기 나라가 몰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일본의 20대, 30대의 처지와 대비되지요.

또 지금 20대, 30대는 소비자로서의 정체성도 아주 강한 세대입니다. 이런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세계 시장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매력적인 상품'으로서의 대통령상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는 '강북 우파'에 가깝잖아요. 민주통합당의 후보들도 그런 점에서는 괜찮은 상품이 아니에요. '강북 좌파'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자연스럽게 안철수 교수한테 주목하는 겁니다. '강남 좌파' 대통령에 제일 근접하거든요. 아까 전홍기혜 기자가 안철수 교수가 다른 건 몰라도 "문화는 진보" 같다고 했는데, 그 실체가 바로 강남성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게 안철수 교수의 가장 중요한 딜레마예요.

앞에서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안철수 교수가 대선을 치르려면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야권과의 화학적 결합이 불가피해요. 그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 교수가 야권과 화학적 결합을 하는 순간 그가 가진 강남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어요. 그 때도 지금처럼 안철수 교수에 대한 20대, 30대의 열광이 여전할까요? 또 다른 '신상'을 찾아서 급속히 이탈하지 않을까요?

이철희 : 그러니까, 세대를 자꾸 말하는 건 패착이라니까요. (웃음)

ⓒ프레시안(손문상)

안철수 리더십, 첫 번째 시험대는?

프레시안 : 안철수 교수가 대선을 치르려면 민주통합당과의 결합, 그것도 2002년의 후보 단일화를 뛰어 넘는 감동을 주는 화학적 결합이 있어야 한다는 데는 한목소리를 냈습니다. 물론 이런 전제 자체를 부정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웃음) 안철수 교수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큰 일'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이철희 : 한 번 더 반복하지만, 민주통합당 없는 안철수 대통령은 불가능해요. 착각은 자유지만요. (웃음) 또 단언컨대 안철수 교수와 민주통합당의 막판 '후보 단일화' 이벤트만으로는 절대로 승기를 잡을 수 없습니다. 그건 이미 2002년에 한 번 이었던 일이잖아요. 또 그 주인공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고요.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합니다.

더구나 설사 그렇게 해서 안철수 교수가 대통령이 된다고 한들 성공할 수 있을까요? 정권 교체의 주체는 대통령 후보 혼자가 아니라 세력입니다. 지금 안철수 교수에게 세력이 있습니까? 최소한 미래 5년을 내다보면서 국가를 경영해야 하는데 안철수 교수가 깃발 들고 100일 만에 모인 이들이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요?

프레시안 : 그런데 도대체 안철수 교수와 민주통합당 간의 감동을 주는 화학적 결합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방금 이철희 소장은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만.

전홍기혜 : 그게 가장 어려운 지점입니다.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로 유력한 문재인 의원은 '공동 정부' 구상을 내놓았어요. 그런데 대통령제에서 공동 정부가 쉽습니까? 1998년에 김대중 대통령과 자민련이 했던 방식이 그런 모습에 가까울 텐데, 결국은 실패했잖아요. 결국은 민주통합당이 '다 주는' 식이 될 텐데, 그걸 민주통합당이 받아들일까요?

더구나 지금 더 큰 문제는 안철수 교수가 민주통합당과의 '화학적 결합' 따위엔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거예요.

이철희 : 100일 좀 더 남은 상황에서 출마를 할지 말지도 모르는 상황이잖아요. (웃음)그나저나 안철수 교수가 출마 선언을 하고 나서, 민주통합당과의 연대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가 궁금합니다. 왜냐 하면, 그 모습 통해서 안 교수가 정치인으로서의 리더십을 평가 받을 테니까요.

다시 한 번 반복하자면, 민주통합당은 여전히 기회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박근혜 후보가 확실히 승기를 잡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고비가 많으리라 생각하거든요. 지금 문제는 경선 흥행이나 안철수 교수와의 후보 단일화 같은 이벤트로 여론을 반전해 보려는 꼼수입니다. 그런 식으로는 절대로 통하지 않아요. 민주당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해요.

박성민 : 그런데 만에 하나 민주통합당이 이번에도 '다 주는' 식으로 안철수 교수의 품에 안기는 게 민주통합당의 미래, 더 나아가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서 맞는 건가요? 민주통합당과 그 지지자는 당장의 대선에만 조급해 하지 말고 이런 질문도 한 번 던져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프레시안 : 오늘 대화는 유난히 '명쾌한 대답'보다는 '신중한 질문'이 많았습니다. 거기에는 대선 100일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유력한 예비 후보인 안철수 교수가 출마 선언조차 하지 않은 불확실성에서 기인하는 것 같아요. 정치의 역할 중 하나가 불확실성의 제거인데 지금 대선을 앞둔 한국 정치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거지요.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서 이번 대화가 대선을 앞두고 벌어질 여러 가지 일들을 제대로읽기 위한 한 가지 지침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프레시안(최형락)

/강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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