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2일 토요일

안철수가 '우'로, 문재인이 '좌'로 간 까닭은?


이글은 미디어스 2012-09-21일자 기사 '안철수가 '우'로, 문재인이 '좌'로 간 까닭은?'을 퍼왔습니다.
[분석]단일화보다 중요한, '진짜 대결'의 시작

전혀, 예상치 못했던 형국이다. 안철수 교수의 출마 선언 이후 대선 판세 전체가 웜홀(worm hole)을 통과한 양상이다. 안 후보는 양자대결 구도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오차 범위 밖에서 앞서기 시작했고, 야권 단일후보 선호도에선 민주당 문재인 후보에 10% 이상 앞섰다.
확실한 ‘컨벤션 효과’다. 시간상 아직 효과가 채 다 반영되지 않았단 견해가 우세하니 다음 주 초에는 지지율 격차가 좀 더 벌어질 수도 있다. 물론, 안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낙관하긴 어렵다. 대선은 아직 90여일이나 남았다. 안 후보는 여전히 불안한 점이 많은 무소속 후보다.

확 줄어든 부동층의 의미

그래서 지지율보다 더 주목해야할 것이 있다. 지지율의 추이는 계속 흐름을 타고 변해갈 것이다. 하루가 1년이 될 수도 있는 대선 국면에서 당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안 후보의 등장 이후 진짜 주목해야 할 것은 ‘부동층’의 향배다. 안 후보의 출마선언 이후 부동층은 10% 정도로 확 줄었다.
이례적인 현상이다. 87년 이후 거의 모든 선거는 언제나 대략 3~40% 남짓의 부동층을 깔아두고 전개됐다. 그래서 거의 모든 선거의 국면은 새누리당 계열의 후보와 민주당 계열의 후보가 고정 지지층 30%를 이미 확보한 상황에서 후보자를 결정하지 못한 부동층을 파고드는 양상으로 전개됐다.
그래서 역대 모든 대선에서 후보들은 ‘중도’를 외쳤다. ‘보통사람’을 내세웠던 노태우는 쿠데타 잔존 세력이었고, ‘신한국을 창조’하겠다던 YS는 IMF로 우릴 인도했다. ‘준비된 대통령’은 서민은 물론 재벌에게도 준비된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탈정치를 선언하며 ‘국민성공시대’를 말했던 MB시대에 이르러 중도는 그야말로 희화화된 비극으로 남았다.

▲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가 20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처음 만나는 진짜 중도

하지만 실제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우리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중도를 만나본 적이 없다. 매번 선거 때마다 ‘중도’의 입장이 강조되고 여야 가릴 것 없이 ‘중도개혁’ 노선이 천명됐던 까닭은 실제 그들이 중도를 꿈꾸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선거 국면에서의 중도는 어디까지나  이미 진영을 갖추고 있는 ‘집토끼’가 아니라 투표를 할지 말지조차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산토끼’들을 향한 애달픈 사냥 공세였다.
유권자의 정치적 스펙트럼을 1에서 10까지로 구분한다면 매번 대선은 새누리당 계열이 오른쪽 끝에서부터 3을 이미 확보하고, 민주당 계열 후보가 왼쪽 끄트머리에서부터 대략 또 3을 확보한 채,(가장 왼 극단에는 0.5정도의 진보 후보가 있었다) 가운데(중도층)를 향해 돌진하는 게임이었다.    
진영과 진영의 대결이 첨예한 양자 대결로 수렴되던 대선의 역사에서 안 교수의 등장은 가장 본질적인 균열을 예고하고 있다. 부동층이 10% 안팎으로 축소되었다는 건, 박근혜와 문재인 사이에 놓여있던 층이 안 교수의 등장을 계기로 선택을 시작했단 의미와 같다. 역대 모든 대선을 언제나 안갯속 판도로 몰아넣으며, 첨예한 진영의 대결에서 ‘나는 어느 편인지’를 스스로 짜맞추어야 했던 이들이 비로소 주체적 선택을 한단 의미이기도 하다.

안철수는 오른쪽으로, 문재인은 왼쪽으로

▲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가 21일 오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의 심리치유 공간인 평택 와락센터를 방문, 어려움을 호소하는 해고 노동자 가족들의 얘기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안 후보는 출마선언에서 “국민의 반을 적으로 돌리면서 통합을 외치는 건 위선”이라고 말했다. 이후 안 교수는 대선 후보로서의 첫 일정으로 현충원을 참배하며,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고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과 무명용사들의 묘역을 함께 들렀다. “역사에서 배우겠습니다”란 그의 방명록 문구는 다분히 수사적인 문장이지만 묘한 울림으로 남았다. 반면, 안 교수의 등장으로 상승세가 꺾인 문 후보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치유센터인 ‘와락’을 찾았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해고 사연을 들으며, 문 후보는 정말 와락 눈물을 흘렸다. 그리곤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안 후보와 문 후보의 행보는 엇갈린다. 안 후보의 등장 이후 문 후보는 ‘좌클릭’을 시작한 모양새이고, 출마선언에서 ‘정권교체’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 안 후보는 오른쪽을 많이 의식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한 여론의 반응 역시 엇갈린다. 안 후보가 모호하단 비판이 높고, 문 후보가 드디어 방향을 잡기 시작했다는 격려가 많다. 이 엇갈린 반응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방향이 어긋나기 시작한 이 둘의 행보야말로 이번 대선의 향방을 결정지을 동선이란 점이다.
이번 대선의 초반 판세는 박 후보가 오른쪽 극단부터 3.5정도를 점하고 있고, 안 후보가 중간의 3을 점하고, 문 후보가 안 후보의 왼쪽의 2.5를 점하고 있는 판세라고 단순화할 수 있다. 단일화 필승론의 산술적 계산 근거는 3+2.5>3.5+@를 무조건 이긴다는 명료한 산수다.
하지만 이 산수가 성립하기 위한 조건이 있다. 3+2.5는 언제나 5.5가 되진 않는 것이 정치다. 변수를 억제하기 위해선 안 후보가 좀 더 우로 약진을 해 박 후보의 지지자를 잠식해야 한다. 문 후보는 좌로 지평을 넓혀 무주공산에 처해있는 가장 왼쪽의 지지층을 흡수해 와야 한다. 이러한 구도는 지난 02년 대선의 구도와 마찬가지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안 후보는 최대치의 중간을 점하며 우로 약진해 박 후보를 극우로 몰아넣어야 한다. 동시에 문 후보는 활동 공간을 넓혀, 기권을 선택할지도 모르는 진보적 유권자들을 지지자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지지율은 의미가 없다. 최대 변수가 단일화인 것은 맞다. 하지만 단일화 이전에 안 후보가 얼마나 박 후보의 표를 잠식하느냐, 그리고 문 후보는 얼마나 진보적 유권자들에게 본인을 어필할 수 있느냐가 우선시되어야 한다. 진짜, 대결이 시작되었다. 

김완 기자  |  ssamw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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