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0일 월요일

'어린 백셩(愚民)' 속여먹기…유신도 그랬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9-10일자 기사 ''어린 백셩(愚民)' 속여먹기…유신도 그랬다'를 퍼왔습니다.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 '협박이 이슈 되지 않게 하라'고?

이야기의 초점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대선 출마 문제를 놓고, 정준길 씨와 금태섭 씨 사이에 오간 대화의 성격이다. 한 쪽에서는 정 씨가 '뇌물'과 '여자관계'를 들어 협박하며, 안철수 원장의 대선 불출마를 종용했다는 주장이고, 다른 한 쪽에서는친구로서 시중에 나도는 이야기를 전한 사적(私的) 대화를 금 씨가 과대포장했다고 항변한다.

요컨대 위협 섞인 불출마 권유였는지, 참고하라는 정도의 '우정 어린' 대화였는지 양 측 주장이 팽팽하다. 알다시피 정 씨는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캠프의 공보위원을 맡은 검사 출신이고, 금 씨는 안철수 원장을 지근거리에서 돕고 있는 변호사다. 두 사람은 서울법대 86학번 입학 동기이면서 검찰 1년 선후배 '친구 사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밝혀진 것을 보면 두 사람의 맡은 일은 성격상 서로 상반돼있다. 한마디로 창과 방패다. 정준길 공보위원은 주로 안철수 원장과 관련된 의혹들을 증폭시켜 공격하는 쪽이었고, 금태섭 변호사는 그 같은 공격을 방어하고 해명하는, 네거티브 사안에 대한 '대응'인 것으로 알려졌다.

▲ 6일 기자회견하고 있는 금태섭 변호사(왼쪽) ⓒ연합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 이번 사태의 빌미가 된 문제의 대화가 이 예민한 시기에, 적어도 서로 경쟁해야하는 두 진영(지금 이를 부인할 수는 없다)에서, 업무의 성격상 서로 대결관계에 있는 '예민한 공적지위'에 있는 공인 두 사람이 주고받은 '사적한담(私的閑談)'일 수는 없다. 더구나 근래 들어 두 사람은 상대방이 하고 있는 일의 내용을 알고 있으면서 서로 은근히 견제까지 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친구사이'라는 두 사람의 우정도 지금 양 쪽을 비교할 때 상당한 온도차가 느껴진다. 특히 정준길 씨(정 씨는 이번 사태가 불거지자 공보위원직을 사퇴했다)는 금 변호사와의 우정을 유난히 강조한다. 새누리당도 두 사람이 아주 가까운 사이였음을 총력을 다 해 주장하며, 금 변호사의 '우정에 대한 배신'을 말했다. 때맞춰 이른바 보수언론들도 금 변호사가 '협박·불출마 종용'이라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함으로써, 26년 친구가 1시간 만에 정적이 되었다고 썼다.

금태섭 변호사가 정치적인 이유로 우정을 배신한 듯한 느낌을 주는 기사들이었다. 아마도 '사적대화'쪽으로 몰고 가는 것이 박근혜 후보 쪽에 보탬이 된다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지난날 두 사람의 교분이 어떠했건 적어도 지금은 서로의 처지를 분명히 하는 게 옳다. 지극히 간단한 원칙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준길 씨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되어있다.

더구나 이번 사태의 전개과정에서 정 씨의 언행에는 수긍이 가지 않는 해괴한 대목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정 씨가 안철수 원장의 비리 의혹이라며, 금 변호사에게 말한 뇌물과 여자관계 의혹 가운데 특히 뇌물 부분은, 안 원장이 지난 1999년 신주 인수권부 사채 발행 과정에서, 산업은행의 벤처투자팀장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미 2002년의 검찰 수사과정에서 결론이 나와 있다.

산업은행 팀장이 구속됐고, 안 원장도 수사대상에 올랐으나 혐의가 없어 불기소 처분된 사건이었다. 문제는 이 사건을 수사한 사람이 당시 서울지검 특수부의 '정준길' 검사였다는 점이다. 자기가 수사해서 다 알고 있는 내용을 새로 밝혀진 안 원장의 비리가 있는 듯이, '시중에 떠도는 이야기'라며 흔들어 댔다. 금태섭 변호사로서는 바로 수사를 담당했던 정 씨가 뭔가 꼬투리를 잡고 있을지 모른다고, 그래서 "출마하면 죽는다"고 말하는 것으로 알고 등줄기에 식은땀깨나 흘렸을 게 틀림없다.

정준길 씨는 공보위원으로 있으면서 트위터를 통해 '가지가지'를 했다. 8월31일에는 "안철수연구소의 BW발행과 관련한 문제점에 대해서는 적절한 시점에 쉽게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하는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고, 안 원장과 관련해 "어느 정도 내용이면 핵폭탄일까요"라는 글도 띄웠다. "금태섭 변호사 더 바빠지겠네요"라는 빈정거림도 있었다. 그래놓고도 6일의 기자회견 때는 금 변호사와의 우정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사람을 한껏 두들겨 패 정신을 잃게 하거나, 손발을 묶은 뒤 금품을 가져가도 강도이지만, 털끝하나 건드리지 않고 째려보는 것만으로 '항거불능'케 한 뒤 재물을 가져가도 강도가 된다. 전문가들은 마찬가지로 "협박은 '상대가 어떻게 받아 들었느냐'로 판단하는 것이 법학의 기초"라 말한다. 따라서 정준길 씨는 '후보자가 되려는 자에 대한 협박죄'를 적용해 법률적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법학자들이 적지 않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그런 정준길 씨에 대해 "협박을 하고 말고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가 속내를 털어 놓은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그녀는 알고 있을 것이다. 서너 가지의 이유가 있다. 지금 새누리당 대선 캠프에서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부분은 누가 뭐래도 안철수 원장일 것이다. 바로 안 원장 문제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정준길 전 공보위원 만한 인물이 거의 없었을 것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우선 안 원장 캠프를 압박하는 역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모르는 사람은 못한다.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그 쪽과 '뜻'을 주고받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채널이 확보돼 있으면서 전후좌우를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의욕적인 사람이 제격이었을 것이다.

둘째 2002년 산업은행 뇌물사건을 수사했던 정준길 당시 검사만큼 안철수 원장의 비리 가능성을 많이 들여다 본 사람이 당 안팎에 없다. 따라서 그의 언행에는 적지 않은 비중이 실려 있다. 이번 금태섭 변호사와의 '통화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안 원장과 관련된 이야기라면 뜬구름 잡는 것일지라도 그의 말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긴장하게 되어 있다. 애당초 대선 캠프 공보단에 유일한 검사출신 위원으로 발탁된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셋째 정준길 씨가 "우리가 조사해 다 알고 있다"고 말 했듯이 정 씨만큼 검찰 등 사정기관과 소통하는 인물이 흔치않다. 해박한 법률지식도 그러려니와, 특히 대선기간 중 당과 검찰의 중간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는 사람은 안다. 이와 함께 연속적인 안철수 원장 '깎아 내리기 작업'과정에서 보았듯이 정 씨 개인의 능숙한 트위터 작업능력도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정준길 씨는 '보물'이었을 것이다. 드러내놓고 "그렇다"며 시인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박근혜 후보의 정준길 공보위원 '폄하' 발언은 본 뜻을 잘 알아들을 필요가 있다. 정준길 씨는 '그럴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 정준길 전 공보위원 ⓒ프레시안(최형락)

이쯤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안철수 원장의 출마를 막으려한 일련의 작업들은 결코 정준길 전 공보위원 혼자 해 냈을 리 없다. 새누리당이 되었건 어느 정보기관이 되었건 아니면 그들이 함께 모였건, '뒷조사하고 논의하고 분석하고 조정하는' 거대한 콘트롤 타워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본인 아니면 알 수 없는 개인정보들이 줄줄이 새어나와 유통되고 있는 것도 배후의 '힘 있는' 기관들의 역할 때문이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다.

"우리가 조사해서 다 알고 있다"거나 "대선에 나오면 죽는다"거나 하는 소리들, 다 그래서 나오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다. 사실은 이런 게 다 범죄 행위이고 바로 국민이 피해자가 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금태섭 변호사가 '협박폭로' 기자회견을 하던 6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에게 한 통의문자메시지가 날아든다. '안철수 관련 협박'이 이슈가 되지 않도록 하고, 사실 관계가 이슈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진실 확인 여부와는 상관없이 이러쿵저러쿵 사실 관계를 왈가왈부함으로써 우선 안철수 원장에게 상처를 입히는 쪽으로 사태가 발전돼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자기들이 여기저기 그토록 들쑤셔도 사실관계가 나오지 않자, 확인되지는 않지만 우선은 귀에 솔깃한 루머들을 마구 퍼뜨려 안 원장에게 흠집을 내놓고, 출마 자체를 못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영문 모르고 있는 국민들이 잘못 판단하도록 속이자는 이야기다. 때문에 '협박·종용'과 관련된 음모규명이 시급하다. 중요하다.

부정한 음모에 속아 넘어가고, 그렇게 잘못 판단해서 잘못 선택하고, 나라의 운명이 그래서 잘못 결정되기도 했다. 그렇게 나라와 국민이 거대한 피해를 본 적도 있다. 그저 그게 최고의 가치인줄 알았던 '돼지의 행복'조차 마음껏 누리지 못하면서 우리가 겪어야 했던 참혹한 세월을 잊을 수는 없다. 사정없이 '속여먹기' 당하던 시절이었다. 특히 유신 때 그랬다.

유신 자체에 대한 문제 지적은 이제 막 본격화 된 느낌이지만, 부정투성이였던 유신헌법 투개표 과정은 지금도 별로 알려지지 않은 채 고비를 넘어가고 있는 듯하다. 워낙 규모가 큰 거대한 '속여먹기' 판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필자 같은 사람에게도 '그 때'와 관련된 제보가 꼬리를 물고 있다.

계엄령을 선포하며 겉으로는 유신헌법에 대한 찬반토론을 금지하면서도 박정희 정권은 뒤로 어처구니없는 짓거리를 저질러댔다. 전국의 초중고교 교사들을 동원해 각 마을별로 이른바 '투표 독려 캠페인'을 벌였다. 표면적으로는 투표독려였으나 내용인 즉슨 대대적인 '찬성 독려활동'이었다. 속여먹기 활동이었다. 국력을 극대화해야 북한의 위협을 막아 통일을 앞당길 수 있고, 그 일을 할 수 있게 박정희 대통령을 밀어줘야 한다는 설득 작업이었다.

반상회 하듯 사랑방 좌담을 마친 결과는 교감에게 보고해야했다. 투표하는 날, 정당 참관인을 배제한 투표소에서는 대리투표가 스스럼없이 이뤄졌고, 일부 투표소에서는 군대에서처럼 공개투표까지 자행됐으나, 투개표 과정에서 공정성이나 투명성을 따지는 사람은 없었다. 그날 밤 개표 업무에 차출된 교사들은 투표함을 열면서 접히지도 않은 채 사전에 무더기로 집어넣은 투표용지 뭉치를 무수히 보았다고 했다.

찬성이건 반대건 100장 묶음 위에 찬성표 한 장 올려놓고 '찬성 100표 한 묶음'으로 계산하기도 했다. 92.9% 투표율에 91.5% 찬성률 기록은 그렇게 탄생했다. 박근혜 팬 카페인 '근혜동산'에 들어가 보면 그 "유신헌법으로 박정희 대통령은 900만 명의 생명을 구했다"고 적혀있다. 북한침략을 사전 대비해 엄청난 국민의 희생을 막아냈다는 설명이다.

유신이 선포된 1972년 10월17일, 그 25일 전인 9월22일 필리핀에서도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박정희 씨와 동갑인 1917년생이다)이 계엄령을 선포했다.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정적과 언론인을 구속했다. '공산주의와 이슬람 반군의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정치안정과 경제발전을 위해서'라는 명분이 내걸렸다. 그 때 마르코스가 내 건 슬로건이 '신(新)사회(New Society)건설'이었다. '유신'의 '신'도 새신(新)자다. '마르코스'와 '박정희'의 이 기막히게 절묘한 닮음이여! 당시 우방국들의 민주화를 줄곧 촉구해 오던 미국은 필리핀 사태에 그저 팔짱만 끼고 구경했다. 대통령선거가 목전에 닥쳐있기 때문이었다.

박정희 씨는 필리핀 사태에서 힌트를 얻어 안심하고 유신을 결행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분명한 것은 두 나라 다 백성 속여먹기를 한 것이었다. 국민들은 잘 모를 수 있다. 그러나 유신이나 '협박·불출마종용'이나 다 백성 속여먹기를 목표로 하고 벌어진 일들이다.

바야흐로 커다란 속여먹기 판을 만들어 가려는 조짐이 보인다. 눈 부릅떠야 한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오홍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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