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6일 일요일

대기업에 팔린 굴업도의 불안한 고요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09-15일자 기사 '대기업에 팔린 굴업도의 불안한 고요'를 퍼왔습니다.
[한국의 아름다운 숲⑧-1] 서해의 막내 인천 옹진군 굴업도

(오마이뉴스)와 (㈔생명의숲국민운동)은 7월부터 12월까지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수상한 '한국의 아름다운 숲' 50곳 탐방에 나섭니다. 풍요로운 자연이 샘솟는 천년의 숲(오대산 국립공원), 한 여인의 마음이 담긴 여인의 숲(경북 포항), 조선시대 풍류가 담긴 명옥헌원림(전남 담양) 등 이름 또한 아름다운 숲들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우리가 지키고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의 가치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땅 곳곳에 살아 숨쉬는 생명의 숲이 지금, 당신 곁으로 갑니다. [편집자말]

▲ <붉은 돼지>의 주인공 포르코 롯소는 자신만의 무인도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굴업도는 영화 속 무인도만큼이나 고요하다. ⓒ Ghibli Studio

굴업도에 첫발을 디디며 기자는 일본 애니메이션 의 무인도를 떠올렸다. 해변엔 사람 하나 없었고 민박을 운영하는 7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 하나가 있을 뿐이다.

인천항에서 90km 떨어진 굴업도는 여의도 1/5크기의 작은 섬이다. 섬 중앙의 5m 안팎의 '목기미 사빈'은 섬을 동섬, 서섬으로 나눈다. 바위가 많은 동섬에는 섬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연평산(128m)과 덕물산(138.5m)이 있고 서섬은 바다에서 보면 개머리처럼 생긴 '개머리초지'와 7 가구가 사는 마을이 있는 완만한 구릉지다.

호젓한 해변과 개머리초지를 독차지하는 행운을 누리면서 기자는 의 포르코 롯소처럼 섬 주인이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영화 속 롯소는 전쟁의 참혹함에 질려 스스로 돼지가 돼 무인도에서 살아간다. 기자도 도시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 받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붉은 돼지)의 무인도는 공적(하늘의 악당)의 습격을 받고 무인도의 고요는 깨진다. 굴업도의 고요도 깨질지 모른다. CJ 계열사인 씨앤아이(C&I) 레저산업(이하 씨앤아이)이 굴업도 토지의 98.5%를 매입했으며 이곳에 골프장, 리조트 등을 포함한 오션파크를 건설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 씨앤아이 측은 개머리초지로 가는 길목에 군부대에서 쓰는 이형철조망을 둘러놨다. ⓒ 이수용

롯소가 무인도를 찾은 이유, 굴업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굴업도를 찾은 이유는 비슷하다. 잠시 소란스러운 도시를 떠나 자연에서 치유받고 싶은 것이다. CJ의 개발은 굴업도 사람들이 살아온 방식, 굴업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방식과는 정반대다.

CJ 계열사가 토지의 98.5% 매입... 골프장·리조트 건설 임박

굴업도의 사람들은 자연을 '적당히' 이용해왔다. 굴업도의 이용가치는 민어와 땅콩농사, 소방목 등에 있었다. 1920년대 두 차례 큰 태풍으로 굴업도 민어잡이는 쇠락했다. 그 뒤 굴업도 사람들은 1980년대까지 땅콩농사, 소방목 등으로 생계를 잇다가 수지가 맞지 않아 이것도 이내 그만뒀다.

▲ 굴업도 초지는 태반이 완만한 계단식으로 땅콩경작지의 흔적이 남아있다. ⓒ 이규정

그들이 생태계를 보존하려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퇴장' 덕분에 굴업도는 다양한 동·식물이 공생하는 섬이 될 수 있었다. 사람들이 굴업도에서 퇴장하자 금세 생태계가 안정화됐고,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섬이 됐다.

사람들은 한 발 더 나아가 '초지 관리자'를 뭍에서 들여오기도 했다. 바로 사슴과 흑염소다. 마을 사람들이 더 이상 관리하지 않아 야생화 된 150여 마리의 사슴과 흑염소들이 굴업도를 뛰어다녔다. 그리고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 짐승들이 억새 초원에 길을 만들고 짓밟아 억새는 높게 자라지 못했다. 그 대신 키 작은 제비꽃은 물론이고 금방망이, 엉겅퀴 등이 잘 자랐다. 꽃이 피면 나비가 날아든다. 멸종위기 동식물 2급인 왕은점표범나비 애벌레는 제비꽃을 먹고, 나비성충은 다양한 꽃을 밀원(벌이 꿀을 빨아오는 원천)으로 삼았다. 사슴의 조력으로 굴업도는 왕은점표범나비의 국내 최대 서식지가 될 수 있었다.

▲ 굴업도 초지에는 꿀이 풍부한 금방망이가 널려 있다. ⓒ 이수용

그뿐 아니라 굴업도의 짐승들은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동물인 애기소뿔소똥구리에게 1980년대까지 있었던 소를 대신해 '똥'을 대량으로 공급하고 있다. 육지에서는 멸종위기지만 섬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다.

CJ의 개발이 진행된다면 몇 년 뒤 이 초지에서는 풀벌레 울음소리 대신 '사장님, 나이스 샷'하는 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 씨앤아이가 이 초지에 골프장을 건설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이 계획에 따르면, 골프장은 직선거리 최대 31m 절토와 단일품종의 잔디 위에 만들어진다. 게다가 여느 골프장처럼 대량의 화학비료와 농약이 쓰일 예정이라 생태 다양성은 현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굴업도에서 수집된 초본만 116종인데 이중 얼마나 살아남게 될까?

'꼬마장군' 같은 소사나무 숲은 어떻게 될까

굴업도의 아기자기한 소사나무 군락도 위기다. 굴업도 식생의 80%를 차지하는 소사나무는 최대 10m까지 자란다지만 굴업도에서는 5m가 넘는 소사나무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도 잎이 풍성하고 수형이 아름답다.

▲ 소사나무는 굴업도 식생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 이규정

섬에서 가장 높은 덕물산(138.5m)에서 소사나무를 보면 양탄자처럼 대지를 낮게 덮어 초지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런 소사나무를 가까이서 보면 번개가 지나간 것처럼 구불구불하다. 그만큼 반전 있는 나무라 하겠다.

▲ 소사나무 잎은 달걀형으로 2~5cm로 작은 편이고 털이 나있다. ⓒ 이수용

▲ 줄기 아랫부분이 여럿으로 나뉘고 비틀려 솟아오르는 줄기와 가지는 소사나무의 가장 큰 특징이다. ⓒ 이수용

소사나무는 주로 분재나 관상용으로 쓰여 실용적 용도는 거의 없다. 예부터 주민들이 소사나무를 땔감으로 소량 이용했을 뿐이다. 소사나무는 키가 작아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지 않을뿐더러 가지가 구불구불해 지나가기도 어렵다. 아이러니한 것은 소사나무를 실용적으로 쓸 수 없는 탓에 (소사나무) 군락이 자연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작은 섬에는 작은 소사나무가 제격이다. 소사나무 군락 주위에 산이 있다고 해도 100m 남짓 솟은 산봉우리 두 개뿐이라 굴업도의 숲은 늘 소금기 머금은 해풍에 노출되어 있다. 큰 나무가 자라기 어려운 환경 탓이다. 소사나무의 뿌리는 해풍에 견딜 수 있게 땅에 단단히 뿌리를 내렸고, 가지는 구불구불해 바람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다. 경사지의 소사나무는 강한 해풍을 받아 아예 엎드려 버렸다.

▲ 소사나무는 굴업도의 자연환경에 잘 적응했다. ⓒ 이수용

자기를 낮추는 생존전략으로 소사나무는 굴업도 식생의 80%를 차지하게 됐다. 바다와 맞닿은 지역에는 낮은 키의 대나무 군락이 조성되어 있는데 대나무가 해풍에 실린 소금기를 중화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하니 자연의 조화가 신비롭기만 하다.

이처럼 굴업도는 문명과 자연의 공조로 독특한 풍경이 펼쳐진다. 사람이 기르다 놓아버린 사슴과 흑염소는 다양한 꽃과 희귀 곤충이 자라기 좋은 초지를 만들었고 별 쓸모없어 놔둔 소사나무 군락은 섬을 더 아름답게 했다. 굴업도 사람들은 자연을 지배하려하지 않았다. 그저 적당히 이용하다가 놔뒀을 뿐이다. '적당히'의 교훈, CJ는 알까.

덧붙이는 글 |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는 전국의 아름다운 숲을 찾아내고 그 숲의 가치를 시민들과 공유하여 숲과 자연, 생명의 소중함을 되새기기 위한 대회로 (사)생명의숲국민운동, 유한킴벌리(주), 산림청이 함께 주최한다. 생명의숲
홈페이지 : beautiful.forest.or.kr | 블로그 : forestforlif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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