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3일 월요일

[사설] 애먼 시민을 ‘나주 성폭행범’으로 몬 범죄 상업주의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9-02일자 사설 '[사설] 애먼 시민을 ‘나주 성폭행범’으로 몬 범죄 상업주의'를 퍼왔습니다.

(조선일보)가 ‘나주 성폭행범’ 고아무개(23)씨의 얼굴이라며 평범한 시민의 사진을 게재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국민의 알권리를 빌미로 흉악범 사진을 일삼아 공개해온 ‘범죄 상업주의’와 무리한 특종 경쟁이 빚어낸 참사다. 이번 오보 사태를 계기로 피의자 얼굴 공개가 과연 알권리에 해당하는지, 범죄 예방에 실질적인 효과가 있는지 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이뤄져야 한다.조선일보가 지난 1일치 서울판 1면에 실은 고씨 사진은 개그맨을 꿈꾸는 한 20대 대학생의 얼굴이었다. 이 대학생의 친구가 1일 오후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제 친구가 성폭행범으로 알려져 욕설과 비난을 듣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고, 조선일보 쪽은 뒤늦게 잘못을 확인해 2일 온라인판에 사과의 글을 실었다. 하지만 그 사이 인터넷 등을 통해 잘못된 얼굴 사진이 무수히 퍼져 성폭행범으로 오인된 대학생은 “죽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고통을 겪고 있다.현재 피의자 얼굴 공개는 ‘최대한 공익과 공공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전제 아래 언론사 자율에 맡겨져 있다. 지난 2009년 ‘강호순 사건’으로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지면서 신문윤리실천요강이 고쳐진 결과다. 그 이전까진 ‘인권침해를 우려해 현행범과 공인이 아닐 때 당사자의 동의 없이 사진을 보도해선 안 된다’는 규정이 지켜져왔다. 실천요강이 바뀐 뒤 보수 성향 매체들은 조두순, 김길태 등 흉악범의 얼굴을 경쟁적으로 공개했다.물론 얼굴의 비공개가 보도의 절대적인 원칙이 될 수는 없다. 흉악범이 붙잡히지 않은 경우, 체포나 추가 피해 예방 등 수사상 필요에서라면 공개가 합리적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를 제외한 흉악범의 얼굴 공개는 흥미를 자극하는 선정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 지나친 경쟁 속에서 엉뚱한 피해자를 낳는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조선일보는 “1일 새벽 1시까지 경찰, 고씨의 얼굴을 아는 사람 등 10명한테서 ‘고씨가 맞다’는 증언을 확보해 서울 일부 지역 최종판에 게재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얼굴 사진에 얼마나 매달렸는지 보여주는 자기 고백이나 다를 바 없다.흉악범 얼굴 공개는 피의사실 공표 금지처럼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옳다. 고씨가 성폭행범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의 주변 사람들이 입게 될 피해나 피의자에게도 보장돼야 할 보편적 인권 등을 고려할 때 얼굴 공개가 결코 능사는 아니다. 무엇보다 무고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흉악범으로 둔갑하는 엄청난 부작용까지 낳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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