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8일 화요일

문재인-안철수 단일화론이 놓치고 있는 것은…


이글은 프레시안 2012-09-17일자 기사 '문재인-안철수 단일화론이 놓치고 있는 것은…'을 퍼왔습니다.
[이철희 칼럼] 야권 후보들, 당분간 홀로서기에 나서라

과하다. 야권의 후보들에 대한 관심이 온통 정책이나 노선보다 후보단일화에 쏠려 있다. 호기심은 이해하나, 잘못된 프레임이다. 후보단일화란 용어는 절차에 대한 관심을 표명할 뿐 그 후보가 지향하는 바에 대해서는 아무런 함의도 지니지 않는다. 알고 쓰든 모르고 쓰든 이 프레임은 특정한 효과를 겨냥한 것이다.

후보는 정책, 정치적 약속을 담고 있는 하나의 브랜드다. 비유하자면, 후보 ○○○는 '이건희'라는 개인이 아니라 '삼성'이라는 브랜드다. 따라서 후보에 대한 일차적 관심은 그가 무엇을 지향하고 어떤 사회를 그리고 있는지 등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물론 삶의 역정과 이러저러한 생각, 그리고 가치나 인생이란 단어가 앞에 붙는 무슨 무슨 관(觀)이라는 것도 당연히 포함된다.

야권의 후보들은 이제 막 본선 무대에 발을 디디는 순간에 있다. 당내 경선이나 책을 통해 자신들의 정책과 생각을 밝힐 기회가 있었지만 아직 다수의 국민들에게 이해ㆍ수용되는 수준은 미미하다. 아직 하나의 브랜드로 포지셔닝(positioning)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그들이 무엇을 지향하고, 어떤 사회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를 알리고 알게 되는 커뮤니케이션 프로세스가 밀도 있게 진행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야권의 후보들에 대한 관심이 오로지 후보단일화 여부에만 쏠린다면 이들 후보들의 '브랜드 정체성' 즉 정책과 지향은 소홀하게 취급되거나 묻힐 가능성이 늘어난다. 다시 말해 단일화 프레임은 노선과 정책에 대한 관심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일화의 당위성은 인정되더라도 그들이 구체적으로 단일화의 수순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단일화 프레임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은 일종의 오도행위라고 하겠다.

과거 3김 정치란 말이 유통된 적이 있다. 그냥 쉽게 이해하면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등 세 김씨가 주도하는 정치를 말한다. 하지만 이 담론이 은연중에 유포하는 것은 3김 정치가 낡은 정치라는 느낌과 인식이다. 3김 정치란 말을 유통시킨 주체는 5공의 전두환 정권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끌어내기 위해 낡은 정치를 혁파해야 한다고 했고, 그 낡은 정치를 3김 정치로 담론화한 것이다.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3김 정치는지역에 기반한 보스정치를 뜻하는 것으로 사용돼 3김의 정책이나 이념을 무시하거나 덮어버리는 프레임이었던 것이다. 뛰어난 담론전략이다.

후보단일화 담론이 자칫 이런 프레임으로 작동할 우려가 있다. 단일화 방법론 등에 대한 논의만 무성해지고, 정작 주목받아야 할 그들의 주장(argument)은 뒷전으로 밀쳐놓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후보가 선출되고, 유력한 제3 후보의 등장이 눈앞에 등장했는데도 언론의 관심은 온통 후보단일화에 대한 것뿐이다. 의도적인 프레이밍이라는 생각이 든다. 야권의 후보들은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해법의 제시보다는 정치공학적 단일화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야권의 책임도 없지 않다. 지난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는 단일화의 명분이 이회창 후보에게 승리하는 것 외에 별로 드러난 것이 없었다. 단일화는 후보들의 게임일 뿐 국민의 관점에서 왜 단일화하는지, 단일화해서 나라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등이 빠져 있었다. 게다가 후보 등록 직전에 이뤄진 단일화 때문에 판세가 뒤집혔다. 이런 경험 때문에 이번의 단일화에 대해서도 승부의 관점에서 읽히는 게 무리는 아니다.

시장에서의 흡수·합병(M&A)이 꼭 성공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듯 후보단일화가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지난 2010년 경기지사 선거에서 후보단일화가 이뤄졌지만 패배한 것이 좋은 예다. 2011년의 김해 보궐선거 역시 마찬가지 사례다. 후보단일화는 양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단일후보의 브랜드 아래 통합될 때 효과를 발휘한다. 단일화에 성공한다고 해서 무조건 '1+1=2'의 등식이 성립되는 게 아니다. 2가 아니라 1.5가 될 수도 있다.

야권 후보들의 일성이 후보단일화가 되어서는 안 된다. 단일화를 표방하면 스스로 부족하다는 것을 공표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과도하게 해석하면 단일화를 출마 명분으로 삼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야권의 후보들은 당분간 홀로서기에 나서야 한다. 자신의 힘으로 무엇을 어떻게 이룰지를 설명하고, 지지를 구해야 한다. 그래야 후보다운 후보가 될 것이고, 또 홀로서기를 통해 규합·결속된 지지층이라야 단일화에 나서더라도 후보를 따를 것이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야권의 후보들은 당분간 홀로서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뉴시스

사실 후보단일화는 방법이나 이벤트가 아니라 과정이다. 어떤 방법으로 단일화를 이룰 것이냐, 즉 여론조사로 할 것이냐 담판으로 할 것이냐 등의 방법론은 단일화 논의의 핵심이 아니다. 후보단일화를 하나의 이벤트로 접근하는 것도 옳지 않다. 아무리 멋있는 그림으로 포장해서 아름다움을 치장해도 그 명분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겉모양보다는 내용에 신경 쓰는 것이 필요하고, 옳다.

후보단일화는 국민들이 하는 것이다. 야권의 후보가 같은 정당의 소속이 아니라면 독자 출마해 국민의 지지를 얻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런 다음 두 후보가 합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것인지 확인되어야 한다. 그 이후 누가 더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누구의 정책이 더 신뢰를 받는지가 가려질 것이다. 다시 말해 지지율로 나타나는 민심에 의해 후보단일화의 대강이 결정된다는 말이다. 단일화의 방법이나 이벤트는 이런 과정의 끝에 해당되는 일부분에 불과하다.

1995년 영국 노동당의 당대표 선거에서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이 단일화를 모색했다. 극소수 측근들에 의해 협의와 조정이 진행됐다. 단일화 즈음 블레어와 브라운이 담쟁이 넝쿨로 둘러싸인 고풍스런 하원 분수대 주변을 함께 거니는 장면이 공개되었다. 둘은 정담을 나누면서 우정과 신뢰를 나누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 그림으로 인해 단일화는 미화되고, 그 효과는 극대화되었다.

그런데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블레어와 브라운이 노동당의 동일한 정파, 즉 현대화파에 속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둘이 합쳐지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는 말이다. 그들이 만약 서로 다른 정파에 속해 있었다면, 또는 서로 생각이 많이 달랐다면 단일화가 어색하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단일화는 그것이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생명이다. 지금 야권의 두 후보에게는 이런 점이 아직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민주당의 후보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야권의 후보다. 민주당의 정책과 안 원장의 생각은 많이 다르지 않다. 과거 정몽준과 노무현의 차이를 생각하면 다행스런 대목이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민주당 지지층과 안 원장 지지층은 겹치기도 하지만 다르기도 하다. '안철수 현상'은 기존 정치와 정당에 대한 반발이나 거부의 발현이다. 때문에 유권자의 관점에서 보면 그 둘이 합쳐지는 것이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양 후보의 지지층이 손을 잡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하다. 그 명분을 제시하고 설득하는 것은 이벤트가 아니라 과정에 의해 확보될 수 있다.

후보단일화의 명분이 처음부터 '이러저러한 이유로 단일화해야겠다'고 밝히는 접근으로 만들어질지는 의문이다. 단일화의 명분은 그 이유를 명시적으로 밝히는 것보다 각자의 정책과 노선 등 브랜드 정체성을 분명하게 한 다음, 크게 봐서 둘이 다르지 않다는 점이 먼저 인식되도록 함으로써 만들어질 수 있다. 예컨대, 낡은 민주당의 후보로서 만족하는 민주당 후보와, 그것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안 원장이 합쳐지려면 민주당이 달라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둘이 새정치를 위해 손잡는다는 명분이 세워지기 마련이다.

후보단일화의 성패는 두 후보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 민주당 후보는 당내의 기득권 구조를 혁파하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민주당을 더 크고 새로운 민주당으로 탈바꿈시키는 혁신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면서 야권이 하나의 틀 속에서 연대하는 구도를 만들어내는 통합의 리더십도 보여줘야 한다. 안 원장은 단기필마의 일인이 아니라 새로움과 다름을 지향하는 세력을 정치적으로 결집시키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또 야권의 분열과 대립을 막고 혁신과 재구성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리더십을 구사해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얼마나 잘 풀어내느냐 하는 리더십 경쟁에서, 단일화의 명분과 효과가 결정될 것이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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