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9일 수요일

북 인권, 보수에 맡겨선 해결책이 없다… 진보가 나서야 한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2-09-19일자 기사 '북 인권, 보수에 맡겨선 해결책이 없다… 진보가 나서야 한다'를 퍼왔습니다.

ㆍ[북한 인권, 진보와 보수를 넘어]왜 지금 북한 인권을 말하는가

왜 지금 북한 인권인가. 지난 20년간 지속되었던 문제인 데다, 전 세계에 인권 문제 없는 나라는 없다. 게다가 ‘우리’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다.

하지만 바로 지금이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지난달 경향신문 취재진이 북·중 접경지역에서 만난 북한 주민들의 증언을 보면 현재 북한의 식량 상황과 정치적 자유권의 제약 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일시적 월경자 수십 명의 증언만으로 북한 인권 상황의 심각성을 일반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들의 보고서 내용도 특별히 다르지 않다는 점을 외면하기 어렵다. 이렇게 북한 인권침해 정도는 매우 심각하다.

지난 8월말 중국 접경지대에서 건너다본 북한회령부근 마을. 탈북자를 막기위한 철조망이 작년보다 더 늘어났다. 삼합 | 특별취재팀

▲ 보수는 인권, 진보는 화해… 서로 이분법적으로 접근

사회적 합의로 풀어야

북한 인권 문제 논의는 우선 북한 인권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북한 주민들은 가장 기본적인 먹을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 지금이 1997년 ‘고난의 행군’ 때보다 심각하지는 않다고들 한다. 북한 주민들이 배급제가 무너진 당시 경험에서 장마당과 같은 자구책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만성적 위기 상태가 20년간 이어져왔고,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북한 주민들의 신체조건까지 변화가 일어나고 타인의 존엄은 물론, 자신의 정치적 존엄과 권리를 찾으려는 생각은 꿈조차 꿀 수 없다.

북한 인권 문제는 무엇보다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북한의 유일 체제에 기인한 것이다. 게다가 자주적 발전노선으로 인해 북한은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고 한국전쟁 이후 초강대국인 미국과 60년간 적대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후견국 소련이 붕괴한 뒤 국제사회에 편입될 기회도 놓쳤다. 체제 보장을 위해 핵·미사일 개발로 나아갔고, 미국 등의 경제 제재를 받았다. 그럴수록 북한 인권 상황은 악화됐고, 국제사회는 북한 인권 문제에 개입할 수단을 잃어버리는 악순환이 일어났다.

한마디로 북한 인권은 북한 체제의 성격과 북한의 대외관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문제다. 인권 문제 하나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북한 인권 문제는 무엇보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한 부분을 이룬다는 점에서 역대 정권도 나름대로 접근법이 있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에 소극적 자세를 견지하면서 대북 유화정책으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쪽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북한의 인권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역대 정부 가운데 ‘북한 인권’을 가장 중시한다고 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 북한 인권이 개선됐다고 스스로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 시기 북한 인권 문제는 인권 개선보다는 북한 정권을 붕괴시켜야 한다는 명분에 활용된 측면이 강했고, 그럴수록 북한 인권이 더 나빠지는 역설이 일어났다.

한국 사회에서 북한 인권 문제는 ‘남남갈등’의 중요한 소재이다. 세계적 관점에서 이 문제에 관한 한 한국 사회의 진보와 보수는 전도돼 있다. 민주화를 외치며 남한 독재정권을 타도했던 진보는 북한 인권에는 상황론과 점진론을 내세우고, 선 경제개발과 점진적 민주화로 남한 독재를 정당화했던 보수는 북한 인권을 위해 체제 붕괴를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중 어느 것이 해결책인가? 선의의 무시인가? 의도적 공세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대안은 무엇인가. 

북한 인권 문제는 분단체제의 핵심 요소 중 하나라는 점에서 민족적 특수성이 있지만, 동시에 민족을 넘어 국제적이고 보편적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는 아직 북한 인권이라는 하나의 문제에 대한 진보와 보수 두 개의 시선, 두 개의 접근법이 대립하는 분열적이고 갈등적인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는 올바른 접근법, 효과적인 해결책, 합리적 대안이 나올 수 없다. 이명박 정부 5년간 진보진영은 북한 인권 논의에 끼어들지 않으려 했다. ‘북한 인권 문제 제기는 곧 체제붕괴론으로 귀결된다’는 주장은 논리 비약이다. 진보는 지금처럼 나태함에 빠져서는 안된다. 반면 보수의 주장처럼 역사적으로 폐쇄된 체제가 외부 압력을 받아 스스로 체제 전환을 해서 인권을 회복시킨 사례도 없다.

보수들의 인권 제기는 정당하고 필요한 것이었지만, 그 해법은 비현실적이고 급진적이며 어떤 측면에서는 이상주의적이었다. 이는 북한 인권 문제를 온전히 보수에게 맡겨서는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현실을 잘 말해준다. 진보세력이 나서야 한다. 북한 인권을 거론하면 보수고, 인권 대신 화해와 협력만 말해야 진보라는 낡은 구분선부터 없애야 한다. 이 이분법을 버리지 못하는 한 목불인견의 북한 인권 침해를 막을 길이 없다. 더 이상 기다릴 상황이 아니다. 마침 대통령 선거가 한창이다. 북한 인권 문제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좋은 때다.

이것이 지금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이다.

■ 어떻게 취재했나

중국서 북한 주민·탈북자 20여명 만나
1주일 동안 휴대전화 인터뷰도 진행해

‘북한인권 진보·보수를 넘어’의 1부는 보름간의 북한 주민 대상 릴레이 인터뷰가 뼈대다.

취재팀은 일본 독립 저널리스트 집단인 ‘아시아프레스’의 도움을 받아 지난 8월 중순, 2주 동안 중국 옌지·단둥에서 북한 현지 주민과 탈북자 등 20여명을 만났다. 

북한 주민들은 주로 랴오닝성 단둥에서 만날 수 있었다. 옌지에서는 주로 중국 체류 탈북자들과 탈북자로부터 태어나 버려진 2세 청소년들을 인터뷰했다. 취재팀이 본 북한 사람들은 수줍고 조심스러웠다. “죽는 사람이 머저리” 같은 험한 말을 내뱉을 때에도 그들 눈에서는 진한 슬픔이 더 읽혔다. 감시체계에 익숙해진 그들은 “아무리 친해도 속얘기는 나누지 않는다”면서 오히려 옆에 있는 또 다른 북한 주민을 의식하기도 했다. 

“믿지 못해서” 취재진이 내민 주스를 끝까지 마시지 않은 한 주민은 “한국 사람은 모두 안기부라는 교육을 받고 왔다”고 했다. 

취재팀이 애초 북·중 접경지역에 가기로 결심한 것은 북한 현지주민의 증언을 듣는 것이 정확한 취재에 더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취재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한계가 드러났다. 취재팀이 만난 북한 주민은 주로 황해도 곡창지대와 강원도에 살고 있었다. 국내 단체들이 주로 접하기 어려운 지역이 황해도 등임을 감안하면 일종의 ‘행운’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취재팀의 판단이 황해도의 상황에 매몰될 우려가 있었다. 복수의 주민 증언에 따르면 황해도의 상황은 심각했다. 그러나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북한인권정보센터는 탈북자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생존권 침해는 현저하게 줄었다는 진단을 지난 5일 내놓기도 했다. 이 때문에 취재팀은 1회에서 황해도에 초점을 맞춰 생존권의 위기상황을 전했다. 북 체제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황해도 상황이 의미를 가진다고 봤다.

북한 주민들이 상황을 실제보다 부풀려 말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황해도의 상황에 대해 여러 다른 진단도 존재했다. 그러나 취재팀은 심각한 식량난 속에서 생존자들이 느끼는 고통과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자 했다. 

취재팀은 취재원의 신변보호를 위해 인터뷰에 응한 북한주민의 신상을 임의로 변경했다.

■ 특별취재팀 전병역·손제민(정치부), 송윤경(사회부), 심혜리(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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