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1일 화요일

“통진당 사태, 신당권파도 책임있다”


이글은 시사IN 2012-09-11일자 기사 '“통진당 사태, 신당권파도 책임있다”'를 퍼왔습니다.

‘5·12 중앙위원회 폭력사태’와 이 사건이 몰고 온 후폭풍은 통합진보당(통진당)을 파산으로 몰고 갔다. 회의시작 3~4시간이 넘어도 회의 순서조차 정하지 못하는가 하면, 결론 없는 마라톤 회의가 이어지는 건 기본이었다. 통진당을 취재할 때마다 체력장을 치르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박원석 통합진보당 의원(42)을 만날 때마다 질문을 빙자한 투정을 부리곤 했다. “이제 어떻게 되나요?”라고. 답은 늘 기자의 기대를 배반했다. 대신 그는 희망을 말하며 의연한 체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그가 지난 18년을 꼬박 시민운동에 몸담으며 두둑이 키워온 자산이기도 했다. 

ⓒ시사IN 이명익 “신당권파도 정치적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내부의 문제점을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고, 적당히 타협해왔다. 섣부르게 권력화됐다.”
그런 박 의원마저 요즘은 더 이상 희망을 언급하지 않는다. ‘혁신’이라는 일말의 기대가 무너진 폐허의 자리에서 그는 “통진당 소속 의원으로서 당의 그 어떤 활동에도 협력할 생각이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런 그에게 누군가는 ‘끊임없이 개량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라고 비꼰다. 한 언론에 따르면 그는 통진당 ‘알박기’에 들어간 신당권파 의원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이렇게 응답했다.  “그런 나를 용납할 수 없다면 제명하라. 누구처럼 제명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결정을 뒤집는 일은 하지 않겠다.”

그는 구당권파뿐 아니라, 신당권파에도 각을 세운다. “정치적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내부의 문제점을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고, 적당히 타협해왔다. ‘요만한’ 것으로 섣부르게 권력화됐다.” 이는 자기반성이기도 했다. 

새로운 당의 창당이 구당권파 세력만 뺀다고 달라지는 게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사실상 분당 상황에서 재창당을 선택한 이상, 요즘은 ‘과거의 민주노동당이나 통진당에 비해 무엇이 달라야 하나’에 고민의 방점이 찍혀 있다.


“통진당의 어떤 활동에도 협력할 생각 없어”

처음 심상정 전 공동대표로부터 비례대표 직을 제안받았을 때, 그 역시 이러한 실패에 따른 리스크를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함께 시민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민주통합당의 ‘왼쪽 방’에 더 많이 마음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진보 정당에 대한 일말의 기대와 믿음이 그를 붙잡았다. 참여연대는 박원석이라는 이름의 다른 말이었지만, “주장에 그치지 않고, 책임지고 대안을 만드는 일을 해보고 싶다”라는 열망이 더 컸다.

그는 요즘 어수선한 당을 지켜보며 ‘화려한 뒤풀이’를 치렀던 1991년 5월을 생각한다. 대학 4학년이던 그 시절, 강경대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목격하며 패배감과 허탈감에 사로잡혔다. 어렴풋이 “이렇게 한 시절이 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이후 길을 모색하던 중, 시민운동의 가능성을 발견했고 당시 박원순 변호사, 조희연 교수 등이 참여연대를 만드는 데 합류했다. 그게 1994년이었다. 

또 한 번 성찰의 계기가 된 건 2008년 촛불시위였다. 수배를 당하고, 구속되고, 세상의 입길에 오르내렸다. 그때 생각한 건 ‘정치의 부재’였다. 시민운동가를 넘어, 본격적으로 정치를 업으로 삼는 일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2010년 곽노현 교육감 선거를 도우며 옆에서 지켜본 경험은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2012년 배지를 달았다. 의원으로서 무엇을 해보기도 전에, 응급 상황인 당부터 살려내야 한다. 고를 수 있는 ‘유의미한’ 선택지는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가 이번엔 어떤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

장일호 기자 | ilhostyle@sisain.co.kr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