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8일 화요일

생명을 마시는 '산소길'을 아시나요?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09-18일자 기사 '생명을 마시는 '산소길'을 아시나요?'를 퍼왔습니다.
[강원도 자전거여행] 홍천군 토리숲에서 '천년사찰' 수타사까지

 
▲ 토리숲, 홍천강변 수타사산소길 안내판. ⓒ 성낙선

지난여름은 자전거여행은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더웠다. 여름 내내 온종일 더위와 싸우느라 도무지 여행을 떠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시도는 해 보았다. 8월 중순의 어느 날, 한창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자전거를 타고 섬강 여행에 나섰다. 어느 정도 더위에 익숙해졌다 싶을 때였다.

섬강은 자연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강 중에 하나다. 그만큼 풍광이 뛰어나다. 몇 달 전부터 그 강변을 자전거를 타고 달려봐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날은 원주시 간현유원지에서 섬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지점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다 올 예정이었다. 하지만 날이 더워도 너무 더웠다. 그날의 더위는 강변이라고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강바람은 부는 듯 마는 듯했다. 한순간 그냥 돌아갈까 갈등이 일었다. 그렇다고 이 먼 곳까지 자전거를 싣고 와서, 페달 한 번 밟아보지 못하고 되돌아서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일단 자전거에 올라탔다. 하지만 페달을 밟기 시작한 지 채 20분도 되지 않아, 여행을 중단했다. 강변길이 가슴 위까지 자란 풀숲에 가려 어디가 길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웬만한 길은 풀숲을 헤치고 들어갔을 텐데 그날은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강변길을 버리고 다른 길을 찾아볼 수도 있었지만, 그건 더욱 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햇볕 아래 너무 오래 서 있었던 탓인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 이상 앞으로 나가는 건 무리였다. 방송에서 바깥 활동을 삼가라고 하더니 그 말이 허투로 한 말이 아니었다.

▲ 덕치천 덕치교, 보행자 겸용 자전거도로 표지판이 서 있다. ⓒ 성낙선

거친 물소리를 내며 흘러내려가는 홍천강

한여름, 섬강으로 떠났던 자전거여행은 무모한 시도였다. 그 후로 이 여름이 어서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는데, 어느새 가을이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여름 더위가 완전히 가신 것도 아니다. 한낮에는 불볕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무리한 도전은 여전히 금물이다.

이번엔 '수타사'로 길을 잡았다. 홍천군의 토리숲과 접한 홍천강변에서 수타사까지 가는 길은 섬강 길에 비해 절반도 되지 않는 짧은 거리다. 강변을 따라가는 길이기는 하지만, 섬강처럼 풀숲을 헤치고 지나가야 할 염려도 없다. 길은 홍천강과 덕치천을 따라 상류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강과 하천이 홍천읍이라는 도시와 수타사라는 천년고찰을 연결한다.

길은 상당 부분 자동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한적한 포장도로다. 비포장 길은 당연히 그보다 더 한적하다. 자전거여행을 하는데 이처럼 편한 길도 드물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미처 몰랐는데, 길 위에서 바라다보는 홍천강과 덕치천 역시 섬강 못지않게 아름답다.

▲ 덕치천 풍경 ⓒ 성낙선

한여름에 섬강 여행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던 게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섬강에서 맛본 실패를 충분히 보상받고도 남을 만하다. 홍천강이 거친 소리를 내며 흘러 내려간다. 이처럼 사납게 흐르는 강을 본 지도 오래다. 마침 비가 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지 수량이 무척 풍부하다.

덕치천은 개발 이전에 원시 상태의 하천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덕치천은 아마 천 년 전에도 지금과 비슷한 모습으로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자연 상태의 살아 있는 물은 느낌부터 다르다.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왠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 덕치천 변, 지난 태풍에 쓰러진 벼. ⓒ 성낙선

자전거여행길이나 다름없는 '명품' 산소길

이 길은 원래 산소길이라는 명칭이 붙어 있다. 산소길은 강원도가 지정한 '명품' 도보여행길로, 도 내에 약 30여 개의 코스가 있다. 홍천군 '도시산림공원 토리숲'에서 수타사까지 가는 길도 그 중에 하나다. 그렇지만 자전거여행을 하는 데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자전거여행 길로 더 적합해 보인다.

▲ 덕치리 성황당, 현대화(?)된 모습이다. ⓒ 성낙선
명칭은 도보여행길이지만, 자전거를 타는 사람 눈에는 '명품' 자전거여행길이나 다름이 없다. 이 길에는 도보여행길에 흔히 나타나는 계단이나 산길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다. 자전거여행을 하는 데 아무 장애가 없다. 길이는 약 12km다. 한나절 걷기에 적당한 거리다.

하지만 그 거리도 왕복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자전거를 타고 갔다 오는 것이 더 적합할 수 있다. 언덕도 거의 없다. 수타사에 당도하기 직전에 아스팔트 도로 위로 딱 한 군데 언덕이 나타난다. 그 언덕마저 결코 높은 편에 속하지 않는다. 절을 찾아 들어가는 길인데도, 높은 언덕이나 산길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의아하다.

이처럼 강원도 산소길에는 자전거여행길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길이 여러 군데다. 관리도 비교적 잘 되어 있다. 갈림길마다 이정표가 나온다. 길을 잃을까봐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화장실도 꽤 여러 군데 설치돼 있다. 그 길 끝에서, 언덕 위에 올랐다가 시원하게 바람을 가르며 내려오면 눈앞에 바로 수타사가 나타난다.

▲ 수타사 대적광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7호. ⓒ 성낙선

생태숲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수타사

▲ 수타사 입구. 오른쪽에 자전거 통행 금지판이 서 있다. ⓒ 성낙선
수타사는 고색이 창연한 절이다. 신라 성덕왕 7년(708년)에 창건됐다는 기록이 있다. '천년고찰'이다. 그만큼 월인석보와 범종 등 많은 보물을 소유하고 있다. 절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산과 계곡은 여느 국립공원 못지않게 깊고 넓다. 절 오른쪽으로 공작산 생태숲과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절과 생태숲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생태 숲 안쪽으로 또 다른 산소길이 열려 있다. 이 길은 좁은 산길이다. 지금까지 달려오고 걸어온 길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 길에는 또 어떤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지 몹시 궁금하다. 하지만 오늘 내가 가야 할 길은 여기, 수타사까지다. 그 이상 욕심을 냈다가는 수타사를 둘러싸고 있는 산 위로 해가 지는 광경을 지켜봐야 할지도 모른다.

▲ 공작산 생태숲, 탐스럽게 매달린 조롱박. ⓒ 성낙선
수타사를 나와서는 수타계곡을 거슬러 오른다. 절 왼쪽을 감싸고 돌아가는 이 계곡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적인 넓은 암반과 깊은 소가 있다. 보기 드문 비경이다. 이 계곡이 천 년 전 사람들이 왜 이곳에 절을 세워야 했는지를 잘 말해준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절 건너편 산비탈에 상층부 일부가 사라지고 깨진 삼층석탑이 하나 서 있다. 탑 몸체와 지붕돌 위로 이끼가 두텁게 덮여 있다. 그렇게 큰 상처를 입고도 아직도 그 자리에 의연히 서 있는 탑에서 수타사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되돌아오는 길에 다시 덕치천과 마주친다. 그러고 보니, 이 하천은 인간이 간직해온 역사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긴 세월을 흐르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는 것과 물이 흐르는 것이 별반 다르지 않다. 세월이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없듯이, 물이 흐르는 것 또한 막을 수 없다.

수타사 가는 길에는 중간에 슈퍼나 편의점을 찾아볼 수 없다. 간단한 음식이나 음료는 미리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 공작산 생태숲, 연잎으로 가득 차 있는 연못. ⓒ 성낙선

▲ 공작산 생태숲, 무궁화꽃과 산책로. ⓒ 성낙선

성낙선(solpu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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