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6일 수요일

박 후보는 부산일보를 어찌 할 것인가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9-25일자 기사 '박 후보는 부산일보를 어찌 할 것인가'를 퍼왔습니다.
[박래부 칼럼] 넬슨 만델라의 과거사 정리 배워라

가을 들어 두 개의 대형 태풍이 산하를 휩쓸고 지나갔다. 국토 곳곳에 큰 상처가 남았고, 수재민의 상실감과 아픔이 클 것이다. 지금은 쾌청하고 서늘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피해를 입은 분께 외람되지만 청랑한 대기가 시 한 편을 떠올리게 한다.

영국시인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의 시 ‘인빅터스’(불굴, 라틴어)다. 남아공의 인권운동가이자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었던 넬슨 만델라가 26년간의 감옥생활을 버티게 한 시라고 한다. 

(엄습하는/ 칠흑의 어둠 속에서/ 어느 신인가 내게 주신/ 굴하지 않는 영혼에 감사한다// 잔혹한 상황의 손아귀에서도/ 난 주눅 들거나 통곡하지 않았다/ 내려치는 곤봉 아래서/머리는 피 흘렸지만 난 무릎 꿇지 않았다// 분노와 눈물의 땅 저 편에/ 어둠의 공포가 어른거리고/ 많은 세월이 흘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문이 아무리 좁아도/ 많은 저승의 형벌이 기다려도/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내 영혼의 선장>)

비유로 말하면, 올해 우리는 두 개의 정치 태풍을 맞고 있다. 4월 총선이 이어 12월의 대선이 새로운 희망과 함께 국민의 마음속을 훑으며 지나가고 있다. 개혁 진영의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 보수 진영의 박근혜 후보가 대선의 선두로 조명되고 있다. 

지지율 추락 없었다면 사과 했을까?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24일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하며, 상처와 피해를 입은 분과 가족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던 입장에서 물러섰다.

늦었으나 다행스런 변화다. 그러나 박 후보의 과거사 인식이 광범위한 계층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야권 후보의 부상으로 자신의 지지율이 계속 추락하지 않았다면 그런 기자회견을 했을까? 회견문을 보면 아버지 행적에 대한 사과나 전향적 입장보다는, 인정에 호소하고 희석시키려는 변명 부분이 훨씬 길다. 진정성보다는 다급한 위기감이 더 드러난다. 

박 후보는 근래 ‘경제 민주화’라는 카드도 꺼내 들었다. 경제 민주화는 재벌 개혁과 노동자의 복지, 노동기본권의 보장 등이 핵심이다. 그러나 박 후보는 노동운동의 상징인 전태일 재단과 동상에 헌화하려다 제지당했다. 쌍용차 노조원들은 “해고자문제로 박 후보 캠프 앞에서 20일 넘게 면담을 요구하고 있는데 묵묵부답이다. 노동자의 요구를 묵살하는 박 후보가 전태일 재단에 온다는 건 허구”라고 주장했다. 이벤트성 서민행보라는 것이다.

올해는 굴절된 언론을 정상화하려는 투쟁으로 뜨거웠고 지금도 고통스럽게 계속되고 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야권도 동참한 치열한 투쟁을 모른 체했다. 박 후보 역시 다른 분야에는 정책을 제시하면서 언론만은 외면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언론이 입은 상처와 굴욕, 불명예는 몇 년 안에 회복되기 어려울 정도로 심대하다. 박 후보의 언론에 대한 침묵은 현 정부의 비열한 언론정책을 답습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청와대와 총리실은 광범위하게 민간인을 불법 사찰했으며, 그에 바탕을 두고 공영 언론사 사장들을 ‘낙하산 인사’했다. 그 사장들이 정권에 충성하기 위해 여론을 왜곡하자 일선 언론인이 참다못해 투쟁에 나섰다. 그 과정에 사장들은 자신의 추한 경영과 비리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파업 참여 언론인들을 무더기로 해고하는 등 중징계하고 있다. 

박 후보, ‘언론 기득권’부터 내려놔야

언론 대학살이 진행되고 있으나, 절대다수인 보수언론들이 침묵함으로써 외부로 잘 알려지지도 않고 있다. 현 정부는 또 보수언론에 종편TV 특혜를 주었다. 이 종편들은 그러나 국민의 외면으로 0%대 시청률에 머물고 있다. 언론을 정상화하라는 각계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박 후보는 모든 불명예스런 유산을 물려받아 12월 대선을 치를 속셈인 모양이다.

언론과 관련해서 박 후보 자신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부분이 있다. 과거사를 사과했으니 진정성이 있다면 당연히 따를 문제다. 1962년 박정희 군부는 부산의 김지태씨로부터 부일장학회와 부산일보, 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을 강제로 헌납 받았다. 그 뒤 박정희의 ‘정’, 육영수의 ‘수’를 따서 정수장학회로 부르고 있다. 정수장학회는 지금 부산일보 주식 100%, 경향신문사옥 대지 723평, MBC 주식 30%를 갖고 있다. 

부산일보 노조는 권력이 부당하게 빼앗은 재산의 사회 환원과 정론지로 거듭 나기 위해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 동안 이호진 노조위원장이 해고됐고, 편집국에서 쫓겨난 이정호 편집국장은 서울로 옮겨와 프레스센터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박 후보는 당이 위기에 놓였을 때 “모든 기득권을 나부터 내려놓겠다”고 말한 적이 있고, 지금은 “국민 대통합의 시대를 열겠다”고 말한다. 정수장학회 이사장이었던 박 후보는 이 문제도 확실히 정리해야 한다. 국민은 후보가 민주주의에 대해 신념이 부족하거나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신뢰와 지지를 거둬가 버린다. 

다시 만델라 얘기로 돌아가면, 그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TRC)를 구성하고 수많은 과거사 자료를 수집한 후 여러 행사를 벌임으로써, 권력으로부터 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을 역사가 오래 기억하게 했다.

박래부(새언론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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