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7일 월요일

문재인, 노무현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글은 미디어스 2012-09-16일자 기사 '문재인, 노무현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를 퍼왔습니다.
[분석]'발언'을 통해 본 문재인

▲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가 16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고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오픈프라이머리 서울에서 대선 후보로 확정된 뒤 후보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로 문재인 후보가 최종 선출되었다. 안철수 원장의 의중을 논외로 하면, 이로서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의 양강 구도가 확정되면서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의 막이 오른 셈이다.
12월 19일 대선까지는 94일 남았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후보자가 미흡한 점을 점검하고 장점을 강화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문재인 후보의 저서 (사람이 먼저다)를 통해 문재인 후보의 강점과 약점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문재인의 강점

▲ 고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008년 1월 30일 권양숙 여사 환갑 축하 행사에서 권양숙 여사에게 장미꽃을 선물하고 있다.ⓒ고 노무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

야인으로서 침묵하는 이광재, 친노를 부정하는 김두관, 통합진보당 사태로 곤욕을 치르는 유시민에 비하면, 문재인 후보는 끝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필하며 그의 유산을 가장 많이 물려받았다. '패권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어찌되었건 그는 민주당 내 최대 계파 세력의 수장이기도 하다. 문 후보의 최대 강점은 타 후보 진영의 비아냥거림에 전혀 개의치 않으며, 모두가 필요에 따라 한 번쯤은 부정했던 바로 그 ‘친노’를 끝내 거부하지 않고 시원스럽게 긍정하며 끌어안고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노무현의 유일한 적자다.
“저는 친노가 확실하고 친노라는 딱지를 떼고 싶지도 않습니다.”
인간 노무현의 서사에는 강력한 힘이 있다. 지지자들은 승부사를 거듭한 노무현, 당당히 청와대에 입성한 비주류 노무현에게 열광했다. 그런 대통령이 자살을 택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이 전무후무한 서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트라우마와 엄청난 부채감으로 남았다.노무현의 적자 문재인은 이 트라우마와 부채감을 해소해 줄 위치에서 정권 교체의 당위성을 호소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문 후보는 이명박 정권에 "무익하게는 복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잘잘못은 가리되 치졸하게 갚아주지는 않겠다는 다짐은 그의 인간적 면모로 읽히기도 한다. 다시, 노무현과 같은 희생자가 나오면 안 된다는 선한 의지의 표현이다. 여기서 문 후보는 다시금 이명박 대통령과 자신을 차별화한다.
“(이명박) 정부가 한 일은 무조건 악으로 놓고 적대시함으로써 자신의 지지자들을 결집하는 구태는 발전도 정체도 아닌 퇴행에 불과합니다. (…) 보복 정치를 하지 말자는 것은 이전 정부가 저지른 잘못을 모두 덮고 불문에 부치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강조하고 있는 ‘검찰 개혁’ 카드는 다목적으로 읽힌다. 노무현에 대한 복수를 열망하는 이들에게 그것은 가장 확실한 복수 의지다. 검찰은 끊임없이 언론에 피의사실을 흘리며 종래에는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문재인은 이런 '정치 검찰'과 맞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후보다. 혹자들은 노무현 시대의 빛나는 한 지점으로 권력이 검찰과 부적절한 거래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꼽는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본다면, 검찰에 대한 '방치'이기도 했다. 하지만 문 후보는 참여정부의 검찰관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개혁'이란 방식의 가장 철저한 개입을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과 한명숙 전 총리 등의 수사과정에서 보여주었듯이 본연의 임무를 포기하면서까지 확인되지도 않은, 심지어는 3류 황색 언론들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근거 없는 허위 사실을 뒤로 흘리면서 사실 규명보다는 흠집 내기, 망신주기 식 태도로 일관한 점이죠.”
지금도 검찰은 새누리당 비리 사건이 터져 나올 때마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를 저격하는 방식으로 정국을 틀어왔다. 바로 얼마 전 공천헌금 관련 수사가 대표적이다. 여당의 이익에 복무하는 ‘정치검찰’의 행태는 노골적이고 이에 대한 야권 지지자들의 분노가 확연한 상황에서 검찰 개혁 하나 만큼은 확실히 하겠다는 것은 강한 지지 결속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한다. 
“권력은 국민들이 위임해주는 것이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더욱이 문재인 후보는 소박하고 청렴한 이미지로 노무현과 많이 닮았다. 속세와 거리를 두다가 시대의 부름으로 모습을 드러낸 은둔 고수, 혹은 선비처럼 대쪽 같은 이미지까지 갖고 있다. ‘검찰이 털어서 먼지 안 나온 문재인’의 일화는 지지자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하다. 이 강직한 ‘은둔 고수’는 저서는 물론 후보 수락연설에서 자신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임을 분명히 했다. '새 시대의 맏형'을 천명한 그가 '구 시대의 해결사' 역할을 해 온 '정치 검찰'과 어떻게 맞설지는 이번 대선을 가를 중요한 시대 정신 가운데 하나이다. 

문재인의 약점

하지만 문 후보는 아직까지 '검찰 개혁'외에 다른 ‘킬러 콘텐츠’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문 후보는 저서에서 정치·경제·사회 분야 전반에 걸쳐 정책 방향을 제시하면서도 ‘전 정권에 대한 복수’ 이외의 비전을 유권자의 뇌리에 각인시키는 데 실패했다. 경선 과정에서 줄곧 ‘콘텐츠 부족’을 지적받기도 했다. 검찰 개혁 방안만 보더라도 초점은 주로 아직까지는 노무현에 맞춰져 있는 모습이다.
“노 대통령에 대한 진정한 복수를 원한다면 전 정권의 치졸한 모습이 아니라 노 대통령의 뜻처럼 상생과 통합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문 후보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지난 대선과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통합당이 그랬던 것처럼 노무현의 그림자에 기대려는 어떤 '관성'의 작동이다. 이를 의식한 문 후보는 “정치인 문재인은 정치인 노무현을 넘어서겠다”며 “그가 멈춘 그 곳에서, 그가 가다만 그 길을 머뭇거리지도 주춤거리지도 않고 갈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정작 여기에도 그래서 문 후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는 아직 들어있지 않다. 그래서 그의 지지자들은 그가 “이명박 대통령·박근혜 후보와는 반대로 하겠다”고 믿고 지지하고 있지만,20 02년 노무현을 찍었지만 2007년 이명박을 찍은 중간층들은 “노무현의 유지를 잇겠다”는 그의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궁금해하고 있다. 
그가, 참여정부의 거의 모든 것을 공으로 인식하고 있단 점도 불안 요소다. 예컨대 그는 “참여정부 때에도 (…) 통합의 정치를 추구했지만 만족스러운 성과는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 못 다한 바람을 제가 꼭 이어받고 실현하고 싶습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그의 발언은 참여정부의 실정에 등을 돌렸던 이들에겐 소구력이 없다. 대표적으로 그는 참여정부 정책의 과오로 논란이 뜨거운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사업의 문제점을 솔직하게 인정하지 못한다. 그의 논법 중 상당수는 '참여정부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명박 정부가 바꾸었다'는데 머무른다. 그러나 이는 절반의 진실, 절반의 진영에서만 동의할 수 있는 인식이다. 
“강정마을 해군기지에 대해서 참여정부를 거론하는 것은 5년 내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이전 정권만 탓해 온 습관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일 뿐입니다. (…) 참여정부의 원래 계획은 민항과 군항의 기능을 함께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 반면 이명박 정부는 국회와 협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제주해군기지)’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물론, ‘노무현의 시대정신’을 구현한 대선 후보로서 노무현을 부정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점은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문 후보는 노무현을 넘어서야 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아직 인식과 실천 사이에 괴리는 있지만 문 후보가 끊임없이 ‘노무현을 넘겠다’는 뜻을 피력하고 있단 점이다.
“참여정부가 이룩한 성과가 이명박 정부 시대에 훼손되었다면 당연히 복원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과거가 아닌 지금 이 시점에서 필요한 시대정신을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모든 자식은 아버지를 죽이고 비로소 자기 자신으로 설 수 있다. 참여정부 정책에 대한 입장이 바뀌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잘못을 시인할 수 있다면 문 후보는 ‘노무현의 거울’로만 남지 않고 진정 정치인 노무현을 뛰어넘어 노무현이 만나고 싶어하던 '새 시대의 맏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추대’된 박근혜 후보의 대항마로서 확실히 자리매김하려면 ‘이명박과 박근혜의 반명제’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확고한 비전을 제시해야만 한다.
지난 10일 ‘인혁당 발언’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지만, 이전까지 박근혜 후보는 김대중, 노무현, 전태일 등을 잇달아 방문하는 ‘광폭 행보’로 중도층까지 껴안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명박과 거리를 두는 것은 박근혜로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반 이명박 정서에만 기대어 정권 교체를 이뤄어내겠다는 도전이 안일한 이유이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한다”던 노무현의 호소를 문재인 후보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윤다정 기자  |  songbird@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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