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0일 월요일

사회복지사가 털어놓는 불편한 진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9-10일자 기사 '사회복지사가 털어놓는 불편한 진실'을 퍼왔습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성과주의 덫에 빠진 복지 현장

지난 7일은 13번째 사회복지의 날이었다. "국민의 사회복지사업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고 사회복지사업 종사자의 활동을 장려"하기 날이다. 나와 같은 사회복지사에겐 생일 같은 날이다. 하지만 이런 날일수록 기쁘지 않으며, 마음만 더 무거워진다. 사회복지사인 우리가 처한 불편한 진실 때문이다.

2010년 지방선거 이후 어느새 복지국가 담론이 무성하다. 대선후보마다 복지국가를 내세우고 있다. 정말 대단한 변화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기에 사회복지사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복지'에 가장 큰 주체로서 목소리를 내야 할 사회복지사들이 조용하기만 하다.

현재 자신이 담당하는 일을 소화하기가 너무 벅차 여유가 없는 것일까? "천사, 봉사정신이 뛰어난 사람, 헌신, 착한 사람들" 등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회복지사 이미지때문에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일까?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7년 차 사회복지사인 나는 그 핵심 원인이 사회복지 현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 지난 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13회 '사회복지의 날' 기념행사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 이날 행사에는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 오제세 국회 복지위원장을 비롯한 의원들이 참석했다. ⓒ연합

행정업무와 성과주의 덫에 빠진 사회복지 현장

근래 사회복지사가 대량 배출되고 있다. 대학들은 미래의 유망직종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워서 무분별하게 사회복지 대학생들을 양성해낸다. 그 결과 사회복지 전공학생으로 사회복지 철학과 가치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사회복지 정체성이 훼손되고 있다. 그런 것을 알려주는 선배 사회복지사도 만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지금 사회복지 현장에서는 직장 샐러리맨 사회복지사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시장중심 상업화 영향으로 결과들을 도출해야 하는 성과주의가 강조되면서 서류와 과정이 복잡해지고 사회복지사들은 과다한 행정업무에 빠져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복지사업의 필요성, 대상자의 욕구 평가, 사회복지기관의 발전방향, 이를 수행하는 사회복지사의 역할 등을 생각할 여유를 가지기 어렵다. 코앞에 보이는 당면과제, 사회복지시설 평가와 성과 등에 연연하게 된다. 심지어 어떻게 하면 사업을 최대한 부각하여 성과물을 크게 보이게 할지, 즉 행정업무능력과 포장술(?)이 능한 직원만을 원하고 있는 게 지금 사회복지현장의 불편한 진실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일부 사회복지사들은 사업의 이유도 모른 채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시키니까 그냥 하는 거죠"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 동료들을 접할 때 정말 막막해진다. 이러한 사업이 제대로 진행될 리 없다. 대상자들에게 질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오히려 어떤 때는 이러한 사업이 뛰어난 행정력과 화려한 포장기술로 우수프로그램으로 돌변하는 기막힌 경우도 있다.

그로 인해 가치와 철학적 소신이 있는 사회복지사들이 늘어나기보다는 직장 샐러리맨 사회복지사들이 많아지고 있다. 뜨거운 열정으로 소신을 가지고 일했던 사회복지사들이 현장을 떠나고 있다. 남아 있는 사회복지사들은 불편과 불만을 지닌 채 개인주의적 경향에 빠져들고 있다. 자기 업무 이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스스로에게 덫을 치고 있다.

급변하는 시대 변화에 뒤처지는 사회복지 현장

나는 사회복지사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물어본다면 이에 대해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는 사회복지사가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만큼 사회복지사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

항상 친절하고 사회복지사의 말을 잘 따르던 대상자들이 어느 순간 민원인이 되어 당당하게 자기의 주장을 펼치며 복지서비스를 요구하는 것을 종종 경험한다. 복지에 대한 주민 욕구가 증가함에 따라 다양한 사회복지 역할을 수행하는 단체들도 여럿 생겨나고 있다. 이렇게 사회복지 현장에서 다양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지만, 사회복지사는 아직 발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이제 지역주민들에게 착한 일을 한다고 칭찬만 받는 시대는 지났다. 보편적 복지국가로 가자는 지금 이 시점에서 복지대상자는 이제 더 이상 시혜자가 아닌 소비자로서 복지서비스를 요구하고 있다. 저소득층에게만 국한된 서비스에서 벗어나 일반 주민들도 보편적인 복지를 바라고 있다. 사회복지사들이 바쁜 행정업무와 성과주의에 얽매인 탓에 급격한 사회변화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만약 다른 전문가 그룹이 사회복지사를 대신해 지금 우리가 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자리를 비워달라고 하면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제 사회복지사 스스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재정립해봐야 할 때이다.

민감한 사안은 외면하는 현실

3년마다 위탁을 받는 사회복지시설이 지닌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자신의 사업 추진에 독립성을 지니기 어렵고, 복잡하게 얽혀진 정치구조에서 중간적인 입장에 머무르는 경향을 띠게 된다. 그 결과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을 회피해 가게 된다.

예를 들어, 자신이 일하는 기관에게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민감한 사업에 대해서는 회피하려 한다. 노인의 성문제, 다문화 가족 및 이주노동자 인권문제, 판자촌 입주민문제, 자살문제 등 자칫 논란이 커져 기관에 상당한 피해가 우려되는 일은 개입하려하지 않는다. 실제로 많은 사회복지기관들이 복잡한 일에 관여했다가 위탁과정에서 위탁법인이 바뀌거나 기관장이 변경되는 사례도 발생하곤 한다.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지역과 복지현장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로서는 자괴감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주로 벌이는 사업은 복잡한 문제를 피하고 성과가 가시적인 것들이다. 상황이 복잡하고 어려운 대상자 접근보다는 행사 위주의 사업을 진행한다. 다른 기관과의 사업 중복을 피하고 필요한 연계사업을 벌여야 하나 자신의 기관 성과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을 경우 이를 방치하기도 한다.

사실 복지기관들이 지역공동체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감안하면 더 많은 역할에 대한 기대도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뉴타운 개발에 따른 대상자 주거권,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환경파괴, 대기업 진출에 따른 지역경제피해, 소수계층 인권운동, 기피시설 반대, 해당 지자체 정책 반대 등에 대해서도 앞으로는 자신의 목소리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한미FTA, 환경파괴, 정부정책 반대, 인권문제 등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민감한 사항에 대해서 개인 입장을 지니고 적극적인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사회복지사도 일부 있지만, 자신이 현재 일하고 있는 기관과 관계된 민감한 지역 이슈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게 보통이다.

불편한 진실을 바꾸기 위해 해야 할 숙제들

사회복지현장의 불편한 진실들을 우리 스스로 인정하자. 그래야 대안을 찾는 논의가 가능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이 생길 수 있다.

먼저 최고 관리자는 5년, 10년 후에 복지관의 방향성을 수립해야 하며, 지역 내 사회복지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최고 관리자가 활동의 공간을 넓게 열어나가야만 복지현장의 사회복지사들도 활동력을 지닐 수 있다. 지역주민의 변화된 욕구를 파악해 지역주민이 당당하게 참여할 수 있는 경로도 만들어 줘야 한다.

다음으로 슈퍼바이저는 사회복지 흐름에 따른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집중하고, 사회복지사 역량강화를 위해 관행적인 업무지침을 바꾸어가야 한다. 점차 대상자들은 시혜자가 아닌 다양한 욕구를 표출하고 당당하게 원하는 소비자로 변화하고 있는데, 기존 방식대로 복지서비스를 수행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지나치게 많은 행정업무를 최소화하고 직원 역량 강화를 위한 프로그램도 마련해야 한다. 왜 사회복지현장에서 전문가가 양성되지 못하고 있을까? 나는 그 원인을 직무에 따른 업무수행 능력 개발과 체계적인 수퍼 비전의 부재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담당업무를 수행하는 방법론적 수퍼 비전만 받을 뿐 사업에 방향성 및 사회복지사로서 가져야 할 역할, 태도 등에 대한 지속적인 역량개발에 대한 노력이 부족하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나와 같은 사회복지사들의 역할이다. 단순하게 주어진 업무만 수행하는 착하고 순박한 사회복지사 이미지를 뛰어넘어야 한다. 이제는 사회변화 흐름을 읽고 자신의 소신과 색깔을 담아서 사회복지 일을 벌일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사회복지현장의 어려운 처우 조건을 개선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이다. 이를 강력하게 요구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스스로 역할을 강화해 가야 한다.

내년 사회복지의 날에는 당당한 글을 쓰고 싶다

사회복지 현장의 불편한 진실들을 감추지 말자. 사회복지사 스스로 이를 꺼내어 알리고 변화를 만드는 계기로 삼자. 사회복지 방법론만 보아도 개별실천, 집단, 지역복지, 행정, 법, 사회 조사 등 역할이 넓게 구분되어 있지 않은가. 지금처럼 행정업무에만 매몰되는 건 곤란하다.

다행히 최근 주목할만한 변화의 조짐이 조금씩 일고 있다. 사회복지사를 주축으로 '사회복지시설평가 혁신모임', '복지국가 만들기 시민촛불' 등 함께 모이고 새로운 실천을 모색하는 노력이 시작되고 있다. 이렇게 새로운 대안을 찾고자 하는 사회복지사들이 있기에 불편한 진실 속에 희망도 발견한다.

올해 사회복지의 날을 맞이해 사회복지 현장의 불편한 진실에 대한 글을 썼지만 내년 사회복지의 날에는 주인공으로서 당당한 글을 쓰고 싶다. 단순히 착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보다 복지일꾼, 전문가, 활동가로서 대한민국 복지국가를 위해 기여하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

 /안태용 경기복지재단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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