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0일 월요일

[윤미향 칼럼]‘위안부’ 문제 해결 기회 걷어찬 한국정부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910일자 기사 '[윤미향 칼럼]‘위안부’ 문제 해결 기회 걷어찬 한국정부'를 퍼왔습니다.
‘위안부’ 헌재 판결 1주년, 한국정부는 뭐하고 있나?

“이명박 대통령 독도방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8.15를 앞두고 정신없이 분주한 일정을 보내고 있을 때 난데없이 걸려온 기자의 전화인터뷰에 즉답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대답은커녕 만우절에 간혹 지인들에게 당하곤 했던 당혹감과 허무함이 다가왔다. 그때는 일본군‘위안부’와 관련한 압박여론을 어떻게 형성할 수 있을까를 골몰하던 시기였기에 황당함은 더 크게 느껴졌다. 

한 손으로 전화를 받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니 정말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했단다. 아뿔싸! 내 머릿속을 치고 가는 것은 바로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어디로 향해 갈 것인가!”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전까지는 한국 헌재 판결에 의해 한국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계속 일본정부에게 양자협의를 제의하고, 국가의 법적 책임을 요구했는데, 대통령의 독도방문은 상황을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 놓았다.

“우리 땅을 대통령이 방문했는데 무슨 난리냐!” 하는 목소리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소리들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일본정부의 강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피해자들과 민간단체들이 한국정부에게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정부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라, 중재위원회에 회부하라고 요구해 왔다. 그런데 오히려 일본정부가 ‘독도’를 카드로 한국정부에게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자고 공격하기 시작했고, 한국정부는 대응하느라 쩔쩔맸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러한 상황을 예견치 않았을까? 아니면 그 상황을 예견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일외교문제보다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 임기에 대한 불안 해소와 게속 하락하는 지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이미지 만들기가 더 중요했을까? 아니면, 정말 독도 방문이 한일 간의 과거역사 청산에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뉴시스 지난 8월 10일 독도를 전격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

한국정부 직무유기, 헌재 판결에도 안 고쳐져

일본군‘위안부’ 제도는 일제의 군과 정부가 적극 주도하여 식민지조선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젊은 여성들을 강제로 전쟁터에 끌고 가 ‘성노예’를 강요한 국가적 범죄행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위안부’ 제도의 피해자들은 ‘광복’ 후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조차 이야기할 수 없었던 억압된 세상에서 살아야 했다. 뿐만 아니라 피해를 해결 받지 못함으로 인해 그 피해는 또 다른 피해를 만들었다. 피해자들의 평범한 육체적. 정신적 생활을 가로막았으며 가족과 이웃, 사회와의 정상적인 관계를 방해하는 등 피해자들의 고통을 가중시켜 왔다. 이러한 피해자들의 고통은 개인에게 국한되지 않고, 가족과 사회전반에 반목과 갈등, 상처를 유발시키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국정부는 이러한 피해자들의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하여 피해자들의 인권을 옹호하고, 한일 간의 역사를 바로잡아야 할 책임이 있음에도, 그 책임을 방기해왔다. 결국 한국정부는 2006년에 피해자들의 헌법소원심판청구 소송을 당해야 했고, 1년 전 8월 30일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판결을 받았다. 헌법재판소 판결은 이전까지 한국정부가 제 책임을 하지 못한 것이 위헌이라는 뜻이고, 따라서 앞으로 헌법재판소 판결을 제대로 이행하여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행위의무가 주어졌음을 명백히 밝힌 것이다. 그러니만큼 한국정부는 중재절차를 비롯하여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배상권리 등에 관한 국제기준에 입각하여 정부의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어떠한가? 여전히 한국정부는 위헌 상태를 계속하며,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활동의 푯대가 어디인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갈팡질팡하며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대통령의 독도 방문 후에는 엉뚱한 곳을 향해 튕겨가는 탁구공처럼 한국과 일본정부 사이에 설전만이 오가고 있다. 

더욱이 일본정부는 한국정부의 정권말기 상황을 간파라도 한 듯이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강제연행 입증자료’가 없다며 일본군 성노예 범죄를 국가의 정책으로, 제도로 입안하고 집행해 놓고도, ‘연행’ 과정의 문제로 책임여부를 축소·왜곡하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이미 군 수뇌부의 명령으로, 행정문서로 정책을 마련하여 지시하고, 하달하며, 집행했던 사실을 입증하는 수많은 군 문서들을 자신들의 손으로, 입으로 조사하고 발표해놓고도 지금 와서 그것이 잘못이었다며 거꾸로 돌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독도 퍼포먼스, ‘위안부’ 해결 기회 걷어찼다

그렇게 대통령의 독도방문 퍼포먼스로,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한일 간의 외교쟁점에서 다시 사라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위안부 문제는 보편적 여성인권문제”이며 “일본정부는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며 전례 없이 강경하게 발언했지만, 일본정부에 압력도, 국제사회에 홍보도 되지 못한 채 우리 ‘국민’들을 향한 메시지만 되고 말았다. 그렇게 일제 강점으로부터 해방된 지 67년이었던 8.15는 지나가버렸다. ‘광복’이었으되 ‘광복’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 채 67년을 살았던 일본군성노예 생존자들은 여전히 길거리 투쟁을 벌이고 있고, 피해자들의 기본권 침해를 계속하고 있는 한국정부의 위헌 상태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 사이에, 지난 1년 동안 피해자들은 10명이 사망하였고, 60명의 생존자만 남아있는 아픈 현실이다. 

왜 한국정부는 피해자들과 민간단체들이 유엔과 ILO, 세계 각국 의회를 돌아다니며 민간외교를 펼치듯이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정부에 대한 국제적 외교활동을 펼치지 못하는가?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한반도 평화에 위협이 되고, 아시아 평화에 위협이 되는, 저렇게 위험하게 변해가는 일본정부와 일본사회에 대해 세계 여러 나라 정부들로부터 지지와 연대를 받아내지 못하는가? 여전히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외교적인 총력을 기울이기에는 껄끄러운 주제라고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면 여전히 군사협정을 체결해야 할 동반자로 여기고 있는 것일까?

ⓒ김철수 기자 경술국치 102주년을 맞은 29일 오후 서울 종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정기 수요집회에 참석한 위안부피해 할머니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한국에서만 피해자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역사적인 상황과 배경, 피해의 정도에 차이가 있었지만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여성들이 성노예로 연행되어 인권유린을 당했던 문제이다. 충분히 남북 및 아시아피해국 정부와 공조로 국제적인 힘을 만들 수 있다. 세계 각국 의회 결의를 이끌어냈던 나라들의 정부의 지지와 연대도 가능할 것이다. 더욱이 지난 2005년, 한국정부는 한일협정에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법적 책임 문제는 다뤄지지 않았고, 이 때문에 일본정부에 법적 책임을 추궁해 나갈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그러므로 전후 단 한 번도 진행되지 못했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배상권 행사를 위해 한국정부는 유엔 등 국제기구와 국제재판소 등에서의 해결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세계 각국의 연대와 지지를 통해 일본정부에게 조속한 문제해결을 촉구해야 할 의무가 있다. 위헌의 범죄를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 된다. 

지난 주간에 또 한 분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가 돌아가셨다. 북이 고향이신 할머니는 위안부로 끌려가신 후에 이산의 아픔까지 안고 이남에서 홀로 외롭게 살아야 했다. 살아있을 때에 문제 해결을 보면 한이 풀릴 것 같다던 할머니들이 그렇게 한 분 두 분 한 많은 역사를 안은 채 생을 마감하고 있다. ‘내일’을 기대한다는 것조차 사치라고 여겨지는 피해자들의 ‘오늘’에 해방을 이룰 수 있도록, ‘국민’으로서 존중받고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한국정부는 조속히 외교정책을 수립하고, 다방면의 외교활동을 진행하길 촉구한다.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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