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3일 목요일

스러져가는 정권의 ‘촛불’ 공포증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5-03일자 기사 '스러져가는 정권의 ‘촛불’ 공포증'을 퍼왔습니다.
[기고] 김종철·언론인(전 연합뉴스 사장)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 범국민 촛불집회’는 2일 저녁 7시에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경찰이 청계천변과 나란히 가는 청계로를 통제하면서 시민들의 통행이 부자유스러워졌기 때문에 행사는 30분이나 늦은 시각에 열렸다.

나는 광화문 네거리를 건너 청계광장으로 가면서 2008년 초여름의 그 자리를 떠올렸다. 경찰이 컨테이너들을 높이 쌓아 만든 ‘명박산성’ 앞에서 수만여 명의 시민이 ‘MB 아웃, 미친 소 아웃’을 외치고 있었다. 촛불 집회와 시위가 절정에 이른 그해 6월 10일(6·10 항쟁 21주년 기념일)에는 전국에서 1백만 명이 넘는 군중이 이명박 정권을 향해 실질적으로 ‘퇴진’을 요구했다. 

바로 그날 밤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서, 광화문 네거리에서 울려 퍼지는 민중가요 ‘아침이슬’을 들으면서 ‘깊이 반성했다’고 한다. 그는 6월 19일 ‘특별기자회견’을 열고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했다. 그는 회견 도중 세 번이나 머리를 숙이면서 ‘사과드리기 위해서’ ‘제 자신을 자책했다’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채 넉 달도 되지 않아 ‘하야하라’는 압박을 받게 된 그가 얼마나 심리적 공포에 시달렸을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가 그 뒤 4년 동안 ‘뼈저린 반성’을 계속하면서 나라의 민주화와 자주화, 한반도의 평화, 민생과 복지를 위해 정직하고 성실하게 노력해 왔다면 오늘처럼 ‘국가 운영’이 파탄 상태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2일 오후 8시께 서울 청계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중단'을 외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명박 정권 4년은 ‘송도 말년의 불가사리’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4대 강을 비롯한 국토의 여기저기가 토목공사장으로 변해 자연과 환경이 파괴되는가 하면, ‘영포(영일·포항)라인’을 중심으로 한 ‘MB 직할부대’의 부정·부패와 비리가 썩은 생선 냄새를 풍기고 있다. 근자에는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주동한 ‘민간인 불법 사찰’이 폭로된 데 이어, MB의 ‘정치적 멘토’라는 전 방통위원장 최시중이 수뢰 사건으로 구속된 데다 그의 ‘오른 팔’인 전 국무총리실 차장 박영준이 이루 열거하기도 어려운 부정과 비리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어 이 정권은 ‘레임 덕’을 넘어 스러져가는 ‘촛불’ 신세가 되어버렸다.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명박 정권을 ‘미국산 미친 소’라는 ‘악령’이 다시 덮쳤다. 지난 4월 2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가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바로 그것이었다. 2008년에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과 시민단체들이 ‘당장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하라’고 요구한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행정당국은 갈팡질팡을 거듭했다. 2008년 ‘촛불 정국’ 당시 국무총리가 일간지에 크게 낸 광고의 내용(‘미국에서 광우병이 일어나면 쇠고기 수입 중단 조치를 취할 것’)에 대해 청와대 대변인은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 국민 건강이 위험에 처한다고 판단되면 수입 중단 조처를 취한다고 했지 언제 수입 중단을 한다고 했느냐’고 강변했다. 정부는 수입 중단 이전에 마땅히 밟아야 할 ‘검역 중단’ 단계도 거부함으로써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가장 믿고 사랑하는 우방’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해주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촛불’ 앞에서 뼈저리게 반성했다는 것은 ‘민간인 불법 사찰’ 때문에 거짓임이 명백히 드러났다.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이 주도하고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자행한 불법 사찰 대상자들 가운데 ‘촛불의 배후’가 다수 포함되어 있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 ‘촛불’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하자 스러져가는 정권의 공포증이 되살아났다. 나는 이번의 청계광장 촛불집회에서 그것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2012년 ‘명박산성’의 소재는 컨테이너가 아니라 경찰력과 셀 수도 없이 많은 차량이었다. 차를 타고 청계광장 부근의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그 많은 전경과 차량의 ‘산성’ 때문에 촛불을 든 사람들을 볼 수가 없었다. 4천여 명이나 동원되었다는 경찰은 집회장을 에워싸고 ‘폴리스라인’이라는 산성을 세우고 있었다. 두 시간 남짓 촛불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무대에서 20여 미터 남짓 떨어진 경찰 방송차에서는 칼칼한 여성의 목소리가 위협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여러분은 지금 폴리스라인을 무시하고 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선량한 시민들의 통행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경고합니다. 당장 집회를 중지하십시오.” 

이날 ‘촛불집회’를 주최한 ‘광우병위험감시 국민행동’ 등 시민단체들은 모임에 참가한 시민이 연인원 5천 명을 넘었다고 밝혔다. 경찰이 병력과 차량으로 철통 같이 에워쌌는데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비좁은 공간에서 어깨를 맞대고 촛불을 들었던 것이다.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의 박상표 정책국장은 무대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4년이 지나고 돌이켜보니 촛불이 옳았고, 피디수첩이 옳았으며 국민이 옳았고 이명박 대통령만 틀렸음이 증명됐다.”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은 “광우병에 대한 진실이 텔레비전에 나오고 있나? 지금 이 나라는 허위와 거짓의 천국”이라고 말한 뒤 “지금은 미국 관료의 말을 한국 관료가 그대로 하고 있고, 거기에 관변학자들이 말을 보태고, 조중동과 KBS, MBC가 받아쓰는 현실에서 진실로 나아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5월 2일의 촛불집회에서는 2008년 초여름에 부모의 손에 이끌려 왔던 어린이들이 의젓한 고등학생이 되어 참여한 모습이 눈에 띠었다. 무대에 올라서 ‘18세의 고등학생 안희준’이라고 신분을 당당히 밝힌 소년은 열띤 목소리로 외쳤다. “저는 공부를 잘 못합니다. 그러나 진실과 상식이 무엇인지는 바로 알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4년 전에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광우병 쇠고기 수입 중단, 국민주권 지켜주세요’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촛불집회장에는 ‘아고라’ ‘안티이명박’ ‘8·15평화행진단’ 등 수십 개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파업을 하고 있는 언론사 노조들의 깃발도 보였다. 나는 무대 가까이에 있는 ‘전국언론노조 MBC 본부’ 깃발 아래에서 이용마 사무국장을 만났다. 지난 1월 30일부터 94일째 파업을 주도하고 있는 그의 얼굴에는 피로한 기색이 좀 있었지만 표정은 아주 밝았다. 나는 촛불집회 무대와 경찰의 방송차에서 울려나오는 요란한 소리 틈틈이 그와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조합원들이 많이 지쳐 있겠군요.그런 동료들도 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전혀 그렇지가 않아요. 김재철 사장이 워낙 무리한 일을 많이 해서 지금 상태로는 회사로 돌아가더라도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기 때문에 전보다 더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 수가 얼마나 됩니까?전체 조합원 1천여 명 가운데 750여 명쯤입니다. 해외에 나가 있는 조합원 1백여 명을 합치면 850 명 가량입니다. 조합원의 85%가 참여하고 있는 셈이지요. 

-MBC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요?9시 ‘뉴스데스크’ 시청률이 평일은 4~5%, 주말은 2%까지 폭락했습니다. 저희가 돌아가더라도 원상 회복을 하려면 얼마가 걸릴는지 모르겠습니다. 뉴스뿐 아니라 교양과 연예오락도 바닥입니다. 

촛불집회장 바로 옆에 서 있는 동아일보사의 고층빌딩에서 불빛이 강하게 새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건물을 가리키며 이용마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1974년 10월 24일부터 동아일보사에서 ‘자유언론실천운동’을 하던 언론인 113명이 1975년 3월 17일 저 회사에서 폭력에 밀려 쫓겨난 것이 벌써 37년 전 일입니다. 그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언론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여러분이 아직도 거리에서 이런 활동을 하고 있군요.”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번의 언론대투쟁은 확실한 결과를 얻을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선배님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촛불집회가 끝난 뒤 몇 사람과 함께 서린동의 낙지집으로 갔다. 소주 잔이 오가는 가운데, 자영업을 하는 한 시민운동가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진보언론은 물론이고 조중동의 표적은 MB입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거기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박근혜와 MB를 전혀 다른 차원에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와 MB는 같은 집권당 소속이자 수구보수세력의 대표 아닙니까?” 나는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박근혜는 요즈음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검역을 중단하라’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겠다’는 등 자신은 ‘독야청청’하다는 듯한 발언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공영방송을 상업화한 관영방송’으로 전락시키고 사원들을 거리로 몰아낸 낙하산 사장들에 대해서는 한 마디 말도 없다. 제18대 대통령이 되겠다는 그의 집념 때문일 것이다. 그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미국을 비롯한 외세의 부당한 압력에 정당하게 저항하고, 1%의 특권층과 조중동의 기득권을 과감히 무너뜨리며, 민주·평화·민생·복지의 길을 활짝 열리라고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김종철·언론인(전 연합뉴스 사장) | cckim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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