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8일 화요일

‘부끄러움 아는 자’와 ‘부끄러움 모르는 자’


이글은 대자보 2012-05-07일자 기사 '‘부끄러움 아는 자’와 ‘부끄러움 모르는 자’'를 퍼왔습니다.
[최용익 칼럼] 시민사회와 정치권,언론노조 연대파업 풀기 위한 대안내야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 같아요.”

우연히 만난 어느 후배가 회사 측 임원과 간부들을 가리켜 내뱉은 말이다. 

지난 5월 4일 밤, 여의도공원에서 방송사 노조들의 연대파업 행사중 하나로 열린 시민문화제 「여의도의 눈물」 공연장에서 만난 MBC 후배기자의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그 말이 딱 맞다.’ 

파업 100일을 눈앞에 두고 있는 MBC노조와 60일을 넘긴 KBS노조 조합원들은 여전히 씩씩해보였다. 왜 안 그렇겠는가. 월급이 몇 달째 안 나오는 상황에서 힘이 빠질 만한데도 조합원들에 대한 잇따른 해고와 중징계, 시사프로그램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가 뻔히 보이는 터무니없는 조직개편 등등으로 속을 박박 긁어 놓으니 파업을 접을래야 접을 수가 있겠는가? 거기에다 낙하산 사장에게 입 안의 혀같은 측근들을 지방사와 자회사 사장, 본부장 승진으로 보란 듯이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고 앉아 있으니 약을 올려도 아주 작심하고 올리고 있는 꼴이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임원들은 성과급 타령을 하고 있다니, 무노동무임금으로 고생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명색이 선배라는 회사 간부들이 정상적인 인간들로 보이겠는가 말이다. 전쟁터에서 포로로 잡힌 적군에게도 이런 식으로 모욕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후안무치도 유만부동(類萬不同)이요, 체면이나 염치와는 담을 쌓은 것 같은 인간말종(人間末種)적 작태에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힐 터이다. 

탐욕에 눈이 뒤집혀 자기가 하는 일을 남들이 어떻게 보는지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정신병에 반사회적 인격장애 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 일명 사이코패스 psychopath 라는 것이 있다. 그 증상이 앞서 열거된 낙하산 사장과 그 무리들이 보이는 행태와 비슷하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의 권리를 무시하는 무책임한 행동 양식을 반복적, 지속적으로 보인다거나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한 관심이나 걱정이 전혀 없으며, 사기(詐欺)를 일삼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것 등이 주요한 증상으로 거론된다. 앞의 후배가 지목한 간부라는 자들은 자신들이 이런 정신병 증세를 보인다는 사실을 알기는 하는 것일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유태계 이탈리아인 작가 프리모 레비는 종(種)으로서의 인간이 느끼는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에 대해 통찰력있는 관찰과 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폴란드 모노비츠라는 마을에 세워진 아우슈비츠 제 3수용소에 수용돼 있던 그는 죽은 동료 유태인의 시신을 버리러(매장이 아니다!) 철조망이 쳐진 울타리 근처의 구덩이에 갔다가 우연히 철조망 건너편에서 러시아 기마병들을 발견했다. 1945년 1월 27일 정오 무렵이었다. 이 군인들은 독일군으로부터 수용소 일대의 지역을 해방시킨 러시아 군의 일원이었다. 1년 가까운 아우슈비츠 수용 생활 중 최초로 만난 독일군 이외의 외부인과의 상봉장면에 대한 묘사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들(러시아 해방군)은 널브러진 송장들과 파괴된 막사들과 얼마 안 되는 우리 생존자들 위로 낯선 당혹감에 사로잡힌 시선을 던졌다.--- 그들은 인사를 하지도, 미소를 짓지도 않았다. 음울한 광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하고 입을 봉해 버리는, 감히 무어라 할 수 없는 혼란스런 감정이 동정심과 더불어 그들을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바로 그 부끄러움이었다. 가스실로 보내질 인원 선발이 끝난 뒤, 그리고 매번 모욕을 당하거나 당하는 자리에 있어야 했을 때마다 우리를 가라앉게 만들던 그 부끄러움, 독일인들은 모르던 부끄러움, 타인들이 저지른 잘못 앞에서 올바른 자가 느끼는 부끄러움, 그런 잘못이 존재한다는 것에, 그런 잘못조차 존재하는 이 만물의 세상 속에 돌이킬 수 없이 자신이 끌어들여졌다는 것에, 그리고 자신의 선한 의지는 아무 것도 아니거나 턱없이 부족하고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는 것에 가책을 느끼게 만드는 바로 그 부끄러움이었다.”(프리모 레비 ‘휴전’, 1963, 이소영 옮김, 돌베개, 2010, 19~21쪽, 밑줄은 필자)

레비는 아우슈비츠에 수용된 유태인들과 러시아 해방군들이 조우한 최초의 순간, 양 쪽 모두에게 동일한 종류의 감정인 ‘부끄러움’이 관통했다고 증언한다. 유태인들에게 나치 독일군으로부터 온갖 망신과 모욕, 봉변을 당하면서도 죽지 못해 무기력하게 당하면서 비굴하게 살아남을 수밖에 없었다는 데 대한 수치심이 있었다면, 러시아 군인들은 유령이나 시체를 연상케하는 뼈만 남은 상태의 유태인들을 보고 그들이 당했을 고통의 무게와, 고통을 겪고 있던 그들에게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했던 데 대한 인간적인 미안함과 그로 인한 자괴감을 가졌다고 진술한다. 그 순간 인간이라면 마땅히 느끼게 되고, 느껴야 할 정서적 공통분모가 바로 ‘부끄러움’이라는 것이다. 

MBC, KBS, YTN 등 방송 3사와 연합뉴스 등 공영언론사들의 동시 연대파업은 한국언론 역사상 초유의 사태이다. 여기에 독선적인 교회권력에 대항해 파업을 벌이고 있는 국민일보와 박정희가 5.16쿠데타를 일으킨 뒤 강탈한 재산을 모태로 설립된 정수장학회의 사회환원을 외치며 농성중인 부산일보 등 언론계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공영언론사 연대파업의 원인 제공자는 이명박(MB) 정권이다. 이 정권이 내려꽂은 낙하산 사장들의 전횡으로 공영방송, 공영언론은 지난 4년간 완전히 초토화됐다. 방송에서 뉴스다운 뉴스나 본격 다큐멘터리, 심층탐사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텔레비전을 켜도 볼만한 프로그램이 없다는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다. 뉴스보도는 정권찬양 일변도로 흐르고 있고 비판적인 시사프로그램은 폐지되거나 축소, 왜곡됐으며 말을 잘 들을 만한 사람들로 주요보직을 채우게 되니 회사 내부의 민주주의가 시들어간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박정희나 전두환의 군사독재 이후, 적어도 90년대 초반의 김영삼 정부 때부터 약 15년간 착실히 쌓아온 방송민주화의 성과를 과신했던 방송인들은 설령 정권이 한나라당으로 바뀐다고 해도 방송사 내에서 이 같은 상황이 전개되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MB정권이 들어서자 낙하산 간부들의 지시에 저항적이거나 반발하는 방송인들은 해고, 정직 등 중징계에서부터 지방이나 한직으로 좌천시키는 등의 대규모 인사조치로 전면적인 물갈이가 이루어졌다. 이 정권 들어 이 같은 막무가내식 인사이동으로 피해를 본 방송인들만 3사를 통틀어 일천 명에 육박하고 있다. 


▲ 언론인들이 불법 언론장악! 불법 조중동 방송! 사태를 규탄하고 나섰다. ©임순혜

정치권력과 그 하수인인 낙하산 간부들의 부당하고 무도(無道)한 언론자유 탄압과 횡포를 견디다 못해 4년 만에 집단적인 항거의 움직임으로 나타난 것이 이번 파업이다. 이 정권들어 언론장악의 주범들은 대통령 수하의 홍보수석과 문화부 장관, 또는 방통위원장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들은 말 그대로 대리인 역할을 했을 뿐, 최종적인 책임은 대통령에게 돌아가게 마련이다. MB는 무슨 일만 생기면 자기와는 상관없다는 식의 무책임하고 엉뚱하며 유체이탈적 발언을 하는 것으로 이골이 난 터이지만 결국 그가 결단을 내리거나, 내리도록 외부에서 강제하지 않으면 파업은 끝나기 힘들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파업사태가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언론사 노조의 파업을 유발한 상대방-파업의 원인을 제공했고 따라서 파업을 풀어야 할 책임이 있는-인 MB를 비롯한 현 정권의 주요인물들이 도대체 예의나 염치와는 거리가 먼 ‘철면피족’이라는 것이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정권이 투하한 공영언론사 사장들과 이 사장들이 임명한 본부장, 국장 등 간부들 또한 후안무치 면에서 난형난제다. 

결국 현재 일어나고 있는 방송 3사를 비롯한 공영언론사 동시파업은 MB정권 들어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알릴 의무를 수행하지 못해온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언론인들이 언론장악을 통한 지배집단의 유지, 강화를 꿈꾸는 MB정권을 상대로 벌이는 대회전(大會戰)의 성격이 강하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을 상대로 저항을 시작한 것이다. 승패는 어떻게 될 것인가. 역사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의 승리를 기록하고 있다.

프리모 레비는 그의 저작에서 ‘부끄러움’이 가해자(압제자)와 피해자(생존자) 사이를 예리하게 가르며 영원한 상처로 남는다고 말했다. 언론인들의 파업이 오래 가면 오래 갈수록 파업을 유도한 낙하산 간부들과 MB정권에 대한 언론인들의 증오는 더 커질 것이고 이것이 후일 더 큰 후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것이다. 시민사회와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고 언론노조 연대파업을 풀기 위한 대안을 만들어 내야할 필요성이 큰 이유다.

최용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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