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5일 토요일

진보당에 보내는 조중동의 ‘장송곡’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5-04일자 기사 '진보당에 보내는 조중동의 ‘장송곡’'을 퍼왔습니다.

▲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왼쪽부터 조준호, 심상성, 이정희, 유시민, 공동대표

통합진보당(진보당)이 최대의 위기에 빠졌다. ‘4·11총선 비례대표 부정선거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인 조준호 공동대표가 지난 2일 ‘총체적 부정’을 인정하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진보, 중도, 보수 가운데 어느 쪽에 속한다고 생각하든 간에 그 내용을 보고 놀라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3월 14일부터 18일까지 치러진 비례대표 후보 경선에서 대리투표를 비롯해서 다양한 형태의 부실·부정 행위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조 위원장은 ‘투표 마감시간 이후에 온라인 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은 적지 않은 수의 현장 투표가 집계돼 투표 결과를 신뢰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지난 총선에서 6석을 차지한 진보당 비례대표 전원의 당선이 무효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3일 ‘진보적 언론’이라는 평을 듣는 매체들이 진보당의 부정선거를 가차없이 비판하고 나섰다.
·“도덕성을 생명으로 하는 진보정당 비례대표 경선에서 광범위한 부정이 확인됨에 따라 진보당은 존립을 위협받는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런 문제는 이른바 민족민주(NL) 계열에서 시작된 당 주류 당권파의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논의구조에서 비롯한 측면이 크다”(한겨레)·“당권파 ‘패권주의’가 원인···‘선’이라 믿으면 수단·방법 안 가려”(경향신문) ·“한 줌의 권력에 ‘진보의 영혼’을 팔았나”(미디어오늘)·“‘충격’ 통합진보당 ‘총체적 부정···대리투표도”(오마이뉴스)·“이정희, 계파 꼭두각시인가 공당 대표인가?”(프레시안)
일부 진보적 언론은 논설이나 외부 기고문을 통해 진보당의 ‘해체 가능성’을 예상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보기를 들어보자. 최형익(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은 한겨레 ‘시론’(‘한 번은 희극으로, 한 번은 비극으로’)에 이렇게 썼다.
“사실 이번 부정선거 기획 의혹을 받고 있는 경기동부연합으로 알려진 정치집단이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위장전입 등 조직적으로 선보였던 각종 희한한 행태는 공공연한 비밀의 일이었다. 그들은 당내 경선을 자신들의 정치적 단결을 과시하는 소동 내지 피크닉쯤으로 인식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국회의원 선거가 헌법상 국민을 대표하는 주권기관 담당자를 선출하는 정치행위에 해당하므로 이번 부정선거 사건은 사태의 속성상 정당 해산에 이를 만한 중대한 정치적 범죄행위로 규정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스스로 해산하느냐, 아니면 선거관리위원회 등 해당 국가기관에 의뢰해 타율적으로 해산하느냐의 선택만 남아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진단이 진보당 사람들에게는 무자비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정당의 행위와 선거 운영에 관한 이성적, 법리적 해석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감성적으로 반론을 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진보적 매체들이 통합진보당의 부정선거에 대해 가혹할 정도로 비판을 가한 데는 그 당이 위기를 떨쳐버리고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배어 있을 것이다. 그에 비해 조선·중앙·동아일보의 기사와 논설은 진보당에 대한 ‘사형선고’처럼 읽힌다.
조선일보가 5월 3일자 1쪽 머리기사 제목으로 커다랗게 뽑은 것은 ‘그날, 진보당의 민주주의는 죽었다’이다. 기자가 “진보당에 ‘진보·민주’도 없고 ‘법과 상식’도 실종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쓴 부분을 편집자가 ‘진보당의 민주주의는 죽었다’고 표현한 것이다. 같은 날자 조선일보 사설의 제목은 ‘진보당, 북한식 투표 흉내 내려면 진보 간판 내려라’이다. 그 사설은 “1980년대 군사정권조차 지금 진보당처럼 ‘대담하고 과감한’ 선거 부정은 저지를 엄두도 못 냈다. 진보당 투표 부정은 4·19를 부른 1960년 자유당 3·15 부정선거와 닮은 꼴”이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비례대표 부정선거가 드러낸 통진당 DNA’라는 사설에서 “통진당은 과거 김일성 추종 주체사상파(주사파)가 중심인 민주노동당 세력, 종북에 반대해 한때 민노당을 탈당했던 진보신당 일부 그룹, 국민참여당이 모여 만든 ‘한 지붕 세 가족”이라면서 “이번 사건은 당을 장악한 주사파 그룹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기편 핵심들을 비례대표 상위 순번에 배치하려고 부정선거를 버젓이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 사설(‘진보당, 부정선거 수사 의뢰하라’)은 “진보당이 위기를 딛고 새로 태어나려면 스스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비당권파나 시민단체의 고발로 검찰 수사가 진행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 중앙일보 5월 4일자 1면

조선·동아·중앙일보의 기사와 논설에 따르면, 통합진보당은 진보와 민주도 없는 정치집단이며, 김일성을 추종하는 주사파가 부정선거를 주도한 정당이자, 스스로 검찰 수사를 의뢰해야 하는 ‘범죄집단’이다.
참으로 딱한 것은 진보당 지도부와 당원들이 보수언론의 이런 ‘난도질’에 공개적으로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진보당 진상조사위원회가 발표한 ‘비례대표 부정선거’의 내용이 법과 상식의 한계를 한참 벗어났기 때문이다.
리얼미터의 이택수 대표가 3일 트위터로 알린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총선에서 10%를 넘었던 통합진보당 지지율은 6.8%까지 떨어졌다. 이런 추세로 가면 2011년 12월 5일 창당 이전, 민주노동당 지지율인 4.8%까지 추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진보당 공동대표들인 이정희, 심상정, 유시민은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이 대표직을 사퇴한다고 해서 진보당이 대중의 지지를 회복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자, 이제 진보당은 어디로 가야 하나?
2000년 1월 30일에 창당된 민주노동당은 한국 정치사에 새로운 역사를 열었다. 1945~1948년의 ‘해방공간’에서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던 좌파정당들이 미군정의 탄압으로 불법화한 이래 이승만 정권 시기에는 조봉암이 이끌던 진보당이 좌파정당의 맥을 이어왔다. 그러나 그가 북한의 ‘간첩’으로 몰려 ‘사법살인’을 당한 뒤 진보적 이념과 정책을 내세운 정치세력은 합법적 공간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민주노동당의 탄생은 그런 의미에서 역사적이었던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창당 이래, 땀 흘려 일하면서도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거나 경제적 수탈을 당하는 사람들을 대변하기 위해 애써왔다. 민주당이라는 중도보수적 정당이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 한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에는 나라의 민주화와 민족의 자주, 민생과 복지를 위해 투쟁의 일선에 나섰다.
나는 2010년 6·2 지방선거 기간에 민주노동당이 야권 연대를 위해 희생적으로 일하는 자세를 감명 깊게 보았다. 가장 중요한 서울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이상규 후보가 민주당 한명숙 후보와의 단일화에 선뜻 응한 뒤 패배하자 선거운동의 일선에 나서서 열심히 일하고, 이정희 대표가 ‘청년 응원단’을 이끌고 대중의 눈길을 끌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 2012년 총선에서도 통합진보당은 우여곡절 끝에 야권 연대에 동참했다.


▲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2번 이석기 당선자통합진보당은 지난번 총선 비례대표 경선에서 주권자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 수구보수세력은 그 당의 이마에 ‘부정선거당’이라는 낙인을 찍은 뒤 두고두고 시비를 걸 것이다. 나는 진보당이 그런 멍에를 벗어던지는 길은 하나뿐이라고 믿는다. 공동대표와 당권파가 기득권을 과감하게 버리고, 말 그대로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정당으로 환골탈태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이정희, 심상정, 유시민 모두 유능하고 정치적 식견이 뛰어난 지도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진보당의 이마에서 ‘주홍글씨’를 지우기 위해 평당원으로 일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재창당을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대중성이나 인기가 약하더라도 ‘진정한 노동자·농민의 벗들’을 당의 전면에 앞세우고 사람들의 믿음과 사랑을 되찾는 데 이바지하는 것이 세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오는 12월의 대통령선거에서 민주·진보 진영이 승리하기 위해 꼭 이루어야 할 야권 연대는 그 다음의 과제이다.

김종철 (언론인)  |  cckim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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