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17일 목요일

“전두환 공소시효 남았다”던 사법연수원생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5-17일자 기사 '“전두환 공소시효 남았다”던 사법연수원생'을 퍼왔습니다.
정한중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아직도 역사 청산 안돼”

1995년, ‘12·12가 내란죄가 아니라면 헌법규정상 재직 중 소추할 수 없으므로 그 기간은 공소시효 기간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착상으로 1996년 헌법재판소의 5·18특별법 합헌 판결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한 사법연수원생이 있었다. 이후 전두환씨는 대법에서 군사반란죄·내란죄 등으로 사형선고를 받지만 2년 복역 후 97년 특별사면된다. 이후 그 사법연수원생이 행방이 궁금했다. 1995년 2월 18일자 한겨레 기사에 그의 인터뷰가 실린 기록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정한중(당시 34세·현재 41세)씨.
확인 결과, 그는 현재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중이며 참여정부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서 실무단으로 일하기도 했다. 14일 타대학 특강을 마치고 나온 그와 만났다. 당시 일을 상기시키니 그는 “어떻게 알았느냐”며 되묻는다.
그는 군 제대 후 전두환 전 대통령 임기 중인 86년 사법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대학생 시위가  일상적이던 당시 그도 공부하면서 시위에 종종 참가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전두환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기소가 가능한지, 공소시효가 얼마 남았는지 따져보게 됐다.
그러다 김영삼 정부 때 검찰에서 12·12 군사반란을 ‘죄는 인정되지만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기소유예를 하게 된다. 그는 94년 11월 15일 서울변호사회에서 변호사 연수를 마치고 느낀 것을 쓰라며 나눠준 설문지에 ‘12·12는 대통령 공소 불가요건인 내란죄와 군사반란죄 두 가지 다 해당하지 않으므로 임기 중 공소 제기를 못할 것 아니냐.
공소시효에서 대통령 재직 7년을 빼야하는 거 아니냐. 공소시효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내용을 써냈다. 서울변호사회에서 이걸 보다가 ‘어, 이거 말 되네’라며 회의를 한 후 당시 김창국 변협 회장이 그 내용을 토대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법률전문가가 아닌 사법연수원생이 이런 중대 사실을 발견했다고 언론에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전남 광양이 고향인 정 교수는 5·18광주민중항쟁이 발생한 1980년, 순천고 졸업 후 부산소재 대학에 진학했다. 그는 대학신입생 신분으로 지역감정을 몸소 체험했다. 광주 5·18민중항쟁이 ‘폭동’이라는 정부발표와 언론보도에 당시 부산에서도 전라도 사람에 대한 비난여론이 들끓었다. 5·18에서 비롯된 편견은 그 후 20여 년이 흐르도록 여전했다.
그리고 1997년 12월 22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사회 대화합’ 뜻을 반영해 김영삼 대통령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특별사면했다. 당시 분위기에 대해 그는 “사면에 대해 찬성이 많았다. 광주 피해자를 DJ가 대표하는 건 아니지만, 피해자중 한명이고 나름대로 광주·호남을 대표하는 사람이 대통령 되고 나서 이제 용서해야 되지 않느냐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때 야권·정치권에서도 반대는 많지 않았다”고 상기했다. 그러나 국민정서로는 여전히 사면되지 않은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면된 이상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의해 한번 확정 판결난 사항에 다시 죄를 묻는다는 것은 법제상 불가능하다. 정 교수는 “재기소는 원천적으로 불가”라며 “이제 역사의 심판만 남은 셈”이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그는 “당시 석방시키지 않고 감형을 하더라도 장기복역을 하게 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라고 개인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연수원 수료 후 경남 창원에서 연수원 동기와 공동법률사무소를 개업해 주로 노동조합 고문변호사로 활동하게 된다. 대우조선, 지금의 두산 중공업 등 노동사건을 주로 맡았다. 개업하는 동시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 가입했으며 경남지역에서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를 맡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05년 1월 참여정부가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라는 걸 만들었을 당시 (노무현 대통령 핵심 인선의) 추천으로 실무추진단 위원에 위촉되면서, 창원에서의 변호사 생활을 그만두고 상경했다. 임기 2년의 상근 전문 계약직 공무원이었다. 변호사 수임료에 비해 수입이 훨씬 적은 공무원 생활을 택한 이유를 묻자 “가려는 사람이 없어서”라며 “변호사 그만두고 가려는 사람이 잘 없었던 모양이더라”고 소탈하게 웃는다.


정한중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그는 현재 법률전문대학원에서 형사소송법과 법조윤리를 강의하고 있다. 변호사 시절이나 법조 자문 공무원으로 일할 때나, 학생들을 가르칠 때나 그가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원칙은 ‘역지사지’, ‘무고한 사람을 억울하게 만들지 말자’는 것.
정 교수는 여전히 역사 청산이 완결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국민들이 밝혀진 진상이라도 제대로 직시해야 하는데 아직도 일부는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영향력이 큰 방송에서 밝혀진 진실을 제대로 알려줘야 하는데 이번 정부 때는 공중파 방송에 관련 내용이 안 나오더라”면서 “역사교과서에 오르는 것은 최소한의 요구이고, 역사책에 한 줄 올라가고 그치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새미 기자 | psm@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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