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한겨레신문 hook 2011.09.13자 기사 '‘안철수 현상’ 참새가 봉황의 뜻을 어찌 알겠는가'를 퍼왔습니다.
스스로를 "사회과학도"라 부르는 한 청년이다. 역사와 철학에 대한 성찰을 기반으로 하여 우리 사회의 정치와 경제를 깊이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주요 관심 분야는 한국 경제와 정치, 한국 현대사 등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동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안철수, 정치공학을 뛰어넘다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출마를 고민하고 있다”는 말 한 마디로 지지율이 50%에 육박하던 사람이 5%의 지지율에 불과한 관심 있는 사람만 그 이름을 알고 있는 이에게 서울시장 후보직을 넘겼다.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필자 또한 한 때 정치판이라는 동네를 약간은 구경을 해본 적이 있다. 정말 서울시장과는 비교도 안 되는 당 내의 작은 감투라도 하나 얻어 쓰려고 당원 상호 간에도 비방이 난무하는 곳이었다. 바로 우리 국민이 정치판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이다.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나라를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 출세만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너무나 ‘상식’을 뛰어 넘었던 탓에 특히 보수 언론에서는 갖가지 추측이 난무한다. 심지어는 내년 대선을 염두에 둔 심모원려(深謀遠慮)라는 말까지 나온다. 하지만 여기서의 ‘상식’은 그 동안 우리 정치판에서 난무하였던 정치공학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추측은 억지 주장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비록 서울시장 불출마 선언 이후 대선 후보 여론 조사에서 그 동안 부동의 1위 후보였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까지 제쳤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지만 사실 그 지지율이 실제 선거에서의 득표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시장이나 국회의원과 같은 국정 경험이 없이 대통령으로서 나라를 이끈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인 까닭이다. 만일 안철수 원장이 대선에 출마한다면 이는 대선후보로서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안철수 원장이 이러한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더불어 군사정부 이후 과거에는 대통령들이 민주화 운동 경력이 있는 이들이 선출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제는 점차 행정 경험을 한 이들이 대통령 자리에 오르거나 유력한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지사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는 주지사 출신 대통령이 많은 미국과 매우 유사한 현상으로,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하면서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넘어 실제 국정 운영 능력과 경험을 중시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아마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더욱 강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만큼 서울시장이라는 자리는 대선으로 가기 위해서는 매우 매력적인 자리이다. 더구나 전임자가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탓에 평타만 치더라도 나쁘지 않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만일 정말 대선에 생각이 있다면 오히려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여야 맞다. 이러한 이유로 필자는 안철수 원장의 불출마 선언이 대선을 염두에 둔 고도의 전략이라는 추측은 과거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그와는 다른 생각을 읽을 줄 모르는 주장에 불과하다고 본다. 어쩌면 후보 불출마 선언이라는 아름다운 사건 뒤에 있는 개혁에 대한 시민사회의 열망이 지닌 가치를 깎아 내리려는 의도가 숨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단일화, 대한민국의 슬픈 정치사
이번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가 국민들에게 신선함을 주는 까닭은 우리 나라 정치의 단일화는 매우 슬픈 역사를 지니고 있는 까닭이다. 그 동안 우리 정치계는 단일화 하여야 할 경우에는 못하고, 단일화가 옳지 않은 경우에는 오히려 단일화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왔다. 우선 그 통한의 1987년 대선. 당시 김영삼 후보와 김대중 후보는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들의 강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각자 출마하여 모두 떨어졌다. 그리고 이어진 3당 합당. 이 때 제 2 야당으로서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던 김영삼 민주당 총재는 김대중 평민당 총재를 제치고 대선에서 이길 생각만으로 3당 합당을 하여, 군사 정권 인사들에게 국민이 동의하지 않은 면죄부를 주었다. 1997년 대선에서는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총재는 정치적 색깔이 완전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소위 DJP 연합을 결성하여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마저도 역시 정치적 견해가 상당히 다른 정몽준 의원과 후보 단일화를 하여 제 2의 DJP 연합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더 어처구니 없었던 일은 단일화한 이들 간에도 다툼이 발생하였다는 사실이다. 어디까지나 선거에서의 이해득실을 따져 순전히 승리만을 위하여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해 관계가 상충할 경우 정쟁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3당 합당 이후 김영삼 민자당 대표의 가출 정치나 국민의 정부 시절 국민회의와 자민련 간의 갈등, 정몽준 의원의 노무현 후보 지지 철회 등이 그 예이다. 국민들이 보면서 정말 피곤과 정치권에 대한 회의를 느꼈을 장면들이었다. 이러한 갈등은 나라의 정책과는 그 어떠한 관련도 없는 까닭에 매우 낭비적인 것이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정치공학에 근거한 정치는 가장 근본적으로 역사의 진보를 방해하는 큰 병폐를 낳았다. 1987년 대선에서는 양김 분열로 인하여 전 국민이 나섰던 6월 항쟁은 죽 쒀서 뭐 줘버린 결과를 낳았다. 3당 합당으로 인하여 군사 정권 시절의 인사들이 그대로 정치권에 살아남아 지금까지도 과거사 청산을 방해하고 냉전 수구의 논리를 외치고 있는 일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더하여 DJP 연합으로 인해 해방 이후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 졌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사 청산은 다시 뒤로 미루어 져야 했다. 헌법에서도 명시적으로 그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하는 4.19 항거에 의하여 무너진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동상을 다시 짓겠다고 나서는 일도 모두 이러한 정치공학적 정치의 비극적인 산물이다. 사실 헌법에는 아예 “불의에 항거한”이라 규정되어 있는데, 그 헌법 상의 “불의”가 의미하는 인물의 동상을 다시 짓겠다는 일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알 길이 없다. 더구나 이들은 자신들을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인데.
참새가 봉황의 뜻을 어찌 알겠는가
이러한 역사에 비하면 이번 안철수 원장의 후보 불출마 선언은 오히려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놓아버렸다는 점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우리 사회가 감동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안철수 원장의 결정에 대하여 한나라당에서는 “진포 좌파 세력의 정치쇼”라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자신들이라면 도저히 못할 일을 한 사람에게는 할 말이 아니라 생각한다. 이 비난을 보면서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 간의 일화가 떠올랐다.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에게 “저는 스님이 돼지처럼 보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무학대사는 “저는 전하가 부처로 보입니다.”라 답하였다. 태조가 “아니 저는 스님을 돼지라 하였는데 스님은 왜 저를 부처로 높여주십니까”라 물었다. 이에 무학대사는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는 법이지요.”라 말하였다.
연작안지홍곡지지(燕雀安知鴻鵠之志)라 하였던가, 참새가 어찌 봉황이 구만리 장천을 나는 뜻을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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