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26일 월요일

평창, ‘올림픽 이후’를 기획하라

이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09월 08일자 기사 '평창, ‘올림픽 이후’를 기획하라'를 퍼왔습니다.
‘운동’을 뜻하는 영어 ‘스포츠’(Sports)의 어원은 ‘물건을 운반하다’는 뜻의 라틴어 ‘포르타레’(Portare)이다. 여기에 반대의 접두어 ‘디스’(Dis)가 붙어 ‘디스포르타레’(Disportare)라는 말이 만들어졌는데, 그 뜻은 ‘기분을 즐겁게 하다’, ‘휴식하다’이며 이 말이 영국으로 건너가서 ‘스포츠’가 되었다.
오늘날 스포츠는 여전히 즐겁게 노는 것이지만 단순히 그것에 그치지는 않는다. 그것은 개인 차원에서 건강하게 살기 위한 중요한 활동이며, 사회 차원에서 승자독식 문제가 가장 명확하게 나타나는 분야이고, 국가 차원에서 전쟁을 방불케 하는 국민의 집중을 야기하는 사안이다. 오늘날 스포츠는 너무 무거울뿐더러 아예 무서운 것이 되었다. 가장 강력한 국가 대항전 형태로 펼쳐지는 올림픽이 대표적인 예다.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뿐 아니라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강력한 국가 대항전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스포츠라는 이름의 삽질 프로젝트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은 어떻게 유치되었는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가? 어떻게 치러져야 하는가? 평창 겨울올림픽을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이루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과연 스포츠의 본래 뜻을 되살릴 수 있는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대략적으로 살펴보자.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계획은 1999년 2월 처음 공표되었다. 그 뒤 2003년 7월 1차 유치 실패, 2007년 7월 2차 유치 실패를 거쳐 지난 7월 유치 성공에 이르렀다. 이로써 한국은 ‘4대 국제경기’를 모두 유치한 세계 다섯 번째 나라가 되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드물고 특이한 나라다. 평창 겨울올림픽은 제23회 겨울올림픽으로서 2018년 2월 9일부터 25일까지 모두 16종목의 경기가 평창을 중심으로 4곳의 지역에서 펼쳐진다.
가장 큰 지역은 평창의 산속에 조성되는 알펜시아 클러스터로서 알펜시아 지구(바이애슬론, 크로스컨트리스키, 스키점프), 용평 리조트(알파인스키(기술)), 알펜시아 슬라이딩 센터(루지, 봅슬레이, 스켈레턴) 등으로 이루어진다. 다음은 해안 클러스터로서 강릉 실내 아이스링크(컬링), 강릉 과학산업단지 내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강릉 영동대학 내 아이스하키II 경기장,  강릉 피겨·쇼트트랙 경기장, 강릉 아이스하키I 임시 경기장 등으로 이루어진다. 끝으로 2개의 개별 경기장이 있는데 보광 휘닉스파크(프리스타일스키 및 스노보드), 가리왕산 중봉(알파인스키(스피드)) 등이다.
선수들의 숙박을 위해 알펜시아 클러스터와 해안 클러스터에 각각 선수촌이 건설된다. 알펜시아 클러스터의 선수촌은 4성급 레지던스 호텔 형태로 건설되며, 954개 객실에 3500명을 수용한다. 해안 클러스터의 선수촌은 최고 8층 높이의 아파트 단지로 건축되며, 524가구에 약 2300명을 수용한다. 또한 가리왕산 중봉에서는 192개 객실을 보유한 레지던스 호텔을 이용할 수 있으며, 보광 휘닉스파크에서는 300개 객실을 이용할 수 있다. 이와 함께 관광객을 수용하기 위한 여러 숙박시설을 건설하며, 공항과 경기장과 선수촌을 연결하는 철도와 도로 등의 신·증설을 추진한다. 
올림픽 같은 국제경기에는 흔히 ‘인류애’니 ‘평화’니 하는 말이 따른다. 그러나 그 물리적 실상은 초거대 토건사업이다. 경기장과 선수촌은 물론 그것을 잇는 철도, 도로 등이 없으면 경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겨울올림픽은 더욱 그렇다. 겨울이라는 험한 계절에 펼쳐지는 경기이기 때문에 더 많은 시설과 자원이 필요하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위한 토건사업에는 대략 20조 원이 넘는 혈세가 투입될 것이다. 단 20일의 경기를 치르기 위해 무려 20조 원의 세금를 한 지역에 쏟아붓는다. 우리는 화려한 선전에 도취되지 말고 겨울올림픽의 문제를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겨울올림픽을 비롯한 모든 국제경기는 ‘승자의 저주’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막대한 세금을 퍼부어서 초거대 토건사업을 벌였는데, 각종 건물과 시설이 경기 이후 수익을 거두지 못해 결국 재정과 경제의 심각한 왜곡이 초래되고 국민 생활이 어려워진다. 여름올림픽이고 겨울올림픽이고 세계적으로 흑자를 거둔 경우가 드물며, 경기 이후 관련 건물과 시설이 제대로 활용되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이런 점에서 국제경기는 신중히 유치해야 하고, 유치하더라도 기존 건물과 시설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한국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모두 국제경기는 물론 온갖 국제행사를 유치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다. 언제나 엄청난 경제효과가 제시되지만 그 실상은 제시되는 것과 크게 다르다. 한국이 열렬히 국제경기나 국제행사를 유치하는 이유는 토건국가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토건국가는 공적 부문과 사적 부문 모두에서 비대한 토건업에 의해 막대한 혈세 탕진과 소중한 국토의 파괴가 상시적으로 자행되는 기형적인 개발국가를 뜻한다. 한국은 이런 토건국가의 대표적인 예다. 그리고 국제경기와 국제행사는 이런 토건국가가 작동하는 중요한 방식이다.
겨울올림픽이 훨씬 어마어마
토건국가 관점에서 평창 겨울올림픽의 문제는 크게 4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행정의 문제다. 토건국가는 무엇보다 중앙정부에 의해 작동된다. 이런 점에서 평창 겨울올림픽의 구상과 유치에서 중앙정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철저히 밝혀야 한다. 또한 실제 유치활동은 강원도에서 주도했으므로 강원도의 유치활동에 대해 철저히 밝혀야 한다. 여기에는 ‘알펜시아 사업’을 둘러싼 의혹도 포함된다. 철저하고 전면적인 감사를 통해 행정의 문제를 밝혀야 한다. 또한 이건희 삼성 회장의 행보도 밝혀야 한다. 그는 2007년에는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를 위한 국제 활동을 이유로 국회 증인 출석을 거부했고, 2011년에는 유치가 성사되도록 사전에 중대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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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재정의 문제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위해 짧은 기간에 막대한 재정을 투여해 많은 건물과 시설을 건설하기 때문에 재정의 사업별 배분에 큰 왜곡이 발생한다. 다른 국제행사도 대체로 마찬가지인데, 복지·문화·교육·의료 등 사회의 질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재정이 줄어드는 대신 결코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없는 토건 재정이 대거 늘어난다. 재정의 지역별 배분에서도 큰 왜곡이 발생한다. 특정 지역에 막대한 예산을 퍼부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제공해야 할 예산을 줄이게 된다. 이에 따른 지역 갈등 문제는 이미 명백한 현실이다. 지역 간 갈등뿐 아니라 지역 내 갈등도 있다.
셋째, 경제의 문제다. 겨울올림픽을 비롯한 국제행사에는 항상 거대한 경제효과가 제시된다. 황당하게도 2010년에 열린 G20 정상회의에는 무려 400조 원의 경제효과가 제시되었다. 평창 겨울올림픽은 21조~65조 원의 경제효과와 23만 명의 고용효과가 제시되었다. 이것은 모두 믿기 어려운 숫자놀음일 뿐이다. 현실은 강원도가 자체적으로 건설하는 ‘알펜시아 사업’이 잘 보여준다. 이 사업의 주체인 강원도개발공사의 채무는 1조1187억 원인데, 그중에서 알펜시아의 채무가 무려 9921억 원에 이른다. 여기에 토건의 비대화와 투기의 활성화가 결합되어 평창 겨울올림픽은 강원도는 물론 나라 전체 차원에서 심각한 경제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행정·재정·경제·생태 모두 왜곡
넷째, 생태의 문제다. 강원도의 중심부를 가로질러 많은 경기장과 선수촌과 도로가 신·증설된다. 다시 말해 강원도의 고산지대에서 엄청난 자연 파괴가 이루어진다. 이것은 심각한 생태위기의 시대에 깊이 고민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다. 특히 논란이 큰 것은 ‘알파인 스키(스피드)’를 위한 스키장이 건설될 정선의 가리왕산 중봉이다. 이곳은 산림청이 식물유전자 보존을 위해 2008년 10월에 ‘산림 유전자원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특별관리하는 곳이다. 천년, 만년 지켜야 할 소중한 곳을 단 며칠의 운동경기를 위해 대대적으로 파괴하는 것은 국가적 대재앙을 초래한다. 참담한 중봉 스키장 건설계획은 하루빨리 철회되어야 한다.
겨울올림픽은 ‘경제’와 ‘생태’ 모두에서 큰 문제들을 안고 있다. 그러나 겨울올림픽을 유치한 마당에는 가능한 한 문제를 줄이고 성과를 키울 수 있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2007년 나는 가장 중요한 겨울올림픽의 사례 지역인 릴레 함메르의 교훈을 참고해, 대규모 토건사업을 최소화하고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존중하는 생태문화적 개발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제 다시 그것을 세 차원으로 나누어 제시하려 한다. 
첫째, ‘최소 개발’이다. 한국은 ‘식민지 근대화’에 뿌리를 둔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의 개발독재에 의해 ‘개발이 곧 발전’이라는 개발주의 이데올로기가 널리 확산된 나라다. 개발은 그 자체로 발전이 아니다. 특히 자연의 개발은 우선 파괴를 전제로 한다. 되도록 최소화해야 한다. 평창 겨울올림픽이 열릴 산악 지역은 취약한 생태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건설꾼과 투기꾼은 공공연히 20조 원의 로또에 당첨된 것이라며 대대적인 개발을 촉구한다. 대대적인 개발은 대체로 저들의 배만 불리고 혈세의 탕진과 자연 파괴를 야기한다. 이런 점에서 기존 개발계획은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대폭 축소해야 한다.
둘째, ‘생태 개발’이다. 자연의 한계와 특성을 존중하는 개발을 뜻한다. 인간의 문명은 자연의 개발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정도가 지나치면 생태위기를 초래한다. 지금 지구는 심각한 생태위기를 겪으며, 한국은 세계 평균보다 심각한 상태에 있다. 그런 만큼 한국은 더욱 적극적으로 생태 개발을 추진해야 한다. 생태 개발은 이미 1975년 유엔에서 제시했다. 선진국일수록 생태 개발 요구가 강하다. 한국이 선진국으로 나아가려 한다면 생태 개발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평창 겨울올림픽은 자연을 존중하는 개발, 재생에너지 사용, 물과 각종 물자의 재활용 등에서 진정한 선진화의 길을 여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
셋째, ‘문화 개발’이다. 문화의 함의는 아주 다양하다. 그러나 그 근본은 생활이다. 문화 개발은 전문적으로 생산되는 각종 상업문화나 오락문화를 퍼뜨리는 것이 아니라 지역 안에서 이루어지는 생활을 존중하고 지원하는 것을 뜻한다. 대대적인 개발은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동시에 파괴한다. 이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지키는 개발을 해야 한다. 남루한 탄광촌에서 세계적인 문화도시로 거듭난 영국 게이츠헤드시의 정책 담당자는 밖에서 무언가를 들여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주민의 생활을 존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이 당연한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평창 겨울올림픽은 문화 개발의 역사적 계기가 되어야 한다. 

‘생태문화적 개발’로 폐해 줄여야
겨울올림픽은 큰 국제행사이다. 막대한 혈세를 투여해서 넓은 지역에서 짧은 기간에 대규모 개발이 이루어지게 된다. 따라서 잘못된 개발은 해당 지역은 물론 나라 전체에 엄청난 부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낙후한 지역을 개발하거나 겨울 운동을 활성화하는 목표도 큰 의미가 있지만, 이런 목표는 모두 ‘부작용의 최소화’라는 전제 아래 추구되어야 한다. 우리는 릴레 함메르가 실현한 생태문화적 개발을 주목하고 적극적으로 본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잠시 숨을 고르고 이 세상을 숭고한 생명의 눈으로 바라보자.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라/ 그대의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한순간 속에서 영원을 잡으라 ” (윌리엄 블레이크, ‘순수의 전조’ 첫 연)
글•홍성태
저서로 (생명의 강을 위하여) (민주화의 민주화) (현실 정보사회와 정보사회운동) (대한민국 위험사회) (개발주의를 비판한다) (토건국가를 개혁하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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