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30일 금요일

뉴라이트, '자유 민주주의' 용어 집착 왜?


이글은 미디어 오늘 2011-09-28 기사 ' 뉴라이트, '자유 민주주의' 용어 집착 왜?'를 퍼왔습니다.
[기고]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뉴라이트 역사학자들이 결성한 한국현대사학회의 활약이 눈부시다. 한국현대사학회는 '2009 개정 역사교육과정'에서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모두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것도 모자라 '식민지 근대화론'도 포함시키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심지어 이 학회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고 대한민국이 유엔의 도움으로 세워졌다는 내용을 반영하자고 했다고 한다.

기실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학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현대사학회 전에 식민지 근대화론에 터잡고, 5.16군사정변을 혁명이라 칭했던 교과서포럼이 있었다. 교과서포럼은 역사투쟁의 일환으로 역사교과서를 만들었는데, 교과서의 이름이 대안교과서였다. 교과서 포럼과 한국현대사학회는 사상적 배경이나 주요 구성인물, 주장 등이 거의 동일해 샴쌍둥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다. 뉴라이트 진영의 이론적 교사라 할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이영훈 서울대 교수, 박효종 서울대 교수, 이인호 서울대 교수, 강규형 명지대 교수 등이 교과서 포럼과 한국현대사학회에 모두 포진하고 있는 걸 봐도 두 단체의 사상적 근친성이 확인된다.

경제성장과 반공이라는 관점으로 본 조화로운 대한민국 역사

한국현대사학회의 교과서 개정 운동은 몇 개의 코드로 포착할 수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열광적인 애호는 근대성 및 경제성장에 대한 맹신을,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병적인 집착은 반공(反共)이라는 가치의 절대성을, 임시정부를 부정하고 48년 건국을 강조하는 행위는 이승만 체제의 규정력과 우월성을 각각 의미한다.


조선일보 9월21일자 8면.
한국현대사학회의 해석에 따르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계기적 사태는 일제의 식민통치와 이승만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기초한 건국이다. 일제의 식민통치는 근대적 제도와 인프라를 조선에 이식, 착근함으로써 야만과 전근대에 머물던 조선에 탈아입구(脫亞入歐)와 근대화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고 이는 곧 본격적인 경제성장과 물질적 풍요의 시발이 되었기 때문이며, 이승만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기초한 건국은 반공과 친미, 세계시장과의 결합을 국가지도이념으로 채택한 까닭이다.
한국현대사학회를 위시한 뉴라이트 진영의 눈을 빌어 한국현대사를 바라보면 한국현대사는 근대화 및 산업화로 상징되는 경제성장과 반공을 중핵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를 두 축으로 해서 쉼없이 발전해 온 역사이다. 일제의 식민지배나 이승만의 제왕적 통치, 박정희가 저지른 2번의 쿠데타(5.16군사정변과 10월 유신)와 유사파시즘적 통치 등은 흠이 없지는 않았지만, 경제성장과 자유민주주의를 부단히 신장하고 확산시킨 탓에 강한 긍정의 대상이 된다.
일제의 조선반도 강제병탄 및 일제하 식민통치의 혹독함도, 이승만이 저지른 성급한 단독정부 수립 및 그 결정에 상당부분 기인한 분단과 전쟁, 그 과정에서 벌어진 숱한 인권유린과 민간인 학살, 독재와 민주주의 유린도, 박정희가 자행한 헌정중단행위와 극단적인 인권억압 및 민주주의 말살도 경제성장과 반공이라는 이름의 뉴라이트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면 불가피했거나 대의(?)에 수반(隨伴)되는 현상일 따름이다.
한국현대사학회를 포함한 뉴라이트가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이처럼 조화롭고 아름답고 일관되다. 일제도, 이승만도, 박정희도 자신들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임과 역할에 충실했으며, 암(暗)보다는 명(明)이 비교할 수 없이 큰 존재들이다. 반공을 핵심가치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와 돌진적 경제성장을 동시에 추구한 박정희의 생물학적 딸이며, 정신의 적장자이기도 한 박근혜는 뉴라이트 역사관에 의해 당당히 대한민국 역사의 한복판으로 진입하게 된다. 박정희가 뉴라이트 역사관에 의해 완벽히 복권됨에 따라 역사적 정당성은 박근혜에게 부채가 아닌 자산으로 탈바꿈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에?
뉴라이트 학자들이 구성한 한국현대사학회의 한국현대사 인식이 지닌 가장 큰 문제점은 경제성장과 물질적인 풍요를 인간의 존엄성 보다 우위에 놓는다는 점이다. 우리 민족의 주체적 역량에 대한 폄훼(貶毁)도 이들이 저지르는 대표적 오류 가운데 하나다. 뉴라이트 지식인들은 '우리 힘으로는 근대화도, 경제성장도, 자유민주주의도 불가능했다, 일제가, 미국이, 이승만이, 박정희가 경제성장과 자유민주주의를 가능케했다'고 굳게 믿으며 우리 민족의 주체적 역량 더 나아가 인간이 지닌 주체성을 불신한다.
또한 우승열패의 신화가 이들의 신앙이며, 물질적 풍요만이 이들이 사는 이유다.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심화시키기 위해서 경제성장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과 물질적 풍요를 위해서 인간의 존엄성은 언제라도 유보될 수 있다는 것이 뉴라이트 지식인들의 생각이다.
진실로 우려되는 것은 뉴라이트의 역사관이 한국사회의 주류에 해당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많은 국민들의 의식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우승열패의 원리와 물질적 풍요를 종교로 삼고 살아간다. 반공이라는 악성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도 제법 된다. 공동체의 장기지속을 위해 꼭 필요한 덕목인 정의, 공정, 박애, 연대, 평화 같은 가치들은 교과서 안에서 화석이 된 지 오래다. 공동체의 통합과 지속을 위해서 필요한 덕목들은 개인 삶의 고양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바로 지금 국민들의 눈과 마음을 어지럽히는 뉴라이트 역사관과의 결연한 이론투쟁이 절실히 요청된다. 역사를 보는 눈이 현재와 미래를 규정짓기 때문이다. 우승열패의 신화와 물신숭배를 사상적 배면에 깔고 반공을 핵심가치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와 경제제일주의를 역사의 동력으로 삼는 뉴라이트 역사관은 이미 파산선고를 맞았다. 뉴라이트 역사관을 따라 걸어온 대한민국의 현실이 가장 강력한 증거다. 

정의, 공정, 박애, 연대, 평화라는 가치가 결핍된 대한민국은 박정희식 경제발전이 남긴 후유증에 신음하고 있다. 뉴라이트 역사관의 실증적 귀결은 공동체의 해체와 개인 삶의 피폐일 따름이다. 뉴라이트 역사관이 관철된 역사 속에는 인간적 존엄도, 주체성도, 지속가능한 경제발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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