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30일 금요일

[사설] 외교부가 외교문서 존재조차 몰랐다는 게 말이 되나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09-29자 사설 '외교부가 외교문서 존재조차 몰랐다는 게 말이 되나'를 퍼왔습니다.
미국의 전문직 비자 쿼터와 관련해 한·미 정부 대표가 교환한 외교서한을 놓고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가 자중지란에 빠졌다.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2007년 6월 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때 미국 국무부 고위관계자와 교환한 2건의 외교서한을 엊그제 행정소송 재판에서 공개했다. 미국이 한국에 전문직 비자 쿼터가 따로 배정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런 중요한 외교서한이 공개됐는데도 통상교섭본부는 서한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고 주장한다. 협정문 한글 번역 오류 사태에 이어 통상교섭본부의 무책임한 자세와 무능을 보여주는 또다른 사례다.
미국의 전문직 비자 쿼터 배정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나라에 주는 일종의 혜택이다. 우리 정부가 2007년 6월 미국의 일방적 요구에 따라 추가협상을 하면서 겨우 얻어낸 성과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협상 타결 뒤 김현종 본부장은 물론이고, 당시 협상 수석대표였던 김종훈 현 통상교섭본부장도 쿼터 확보 가능성을 여러 차례 내비쳤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 정부의 약속이 이행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통상교섭본부는 “전문직 비자와 관련해 미국으로부터 어떤 공식적 약속도 받은 바 없다”고 다른 말을 해왔다. 하지만 김현종 전 본부장이 지난해 12월 펴낸 에서 외교서한이 교환된 사실을 거듭 밝히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이에 대해 정보공개 청구소송을 내 결국 법정에서 드러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어제 통상교섭본부는 “김현종 당시 본부장이 외교서한을 미국 쪽에서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본부는 지난 4년간 그 존재를 몰랐다”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이런 중대 외교문서를 김 전 본부장이 본부에 공식 접수시키지 않고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었단 말인가. 아니면 통상교섭본부가 이를 알고도 몰랐다고 발뺌하는 것인가. 어느 쪽이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유무역협정은 서로 요구 사항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주고받기를 하면서 타결된다. 그런데 전문직 비자 쿼터와 관련한 통상교섭본부의 해명은 서로 주고받은 중요한 약속 가운데 하나를 빠뜨린 채 협정문에 정부 대표가 서명을 하고, 국회 비준동의 절차를 밀어붙였다는 얘기다. 비준동의안 심의에 들어간 국회가 경위를 철저하게 밝혀 책임을 물어야 할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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