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19일 월요일

제주도 덮을 죽은 모래... 여기서 왔습니다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1.09.05자 기사 '제주도 덮을 죽은 모래... 여기서 왔습니다'를 퍼왔습니다.
[내성천 살리기-우리가 강이 되어 주자⑦] 박채은 다큐멘터리 감독
내성천은 낙동강의 제1지류로, 경북 봉화와 예천을 거쳐 흐르는 총 길이 100km가 넘는 강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추천될 만큼 보존 가치가 높고,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모래강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영주댐이 건설되고 있습니다. 댐이 완공되면 내성천의 중상류가 수몰돼 사라집니다. 또 하류로 운반되는 물과 모래가 줄어들게 됩니다. 이는 그동안 낙동강의 정화를 담당했던 필터 기능이 사라지는 것을 뜻합니다.   

거대한 삽질에 의해 베이는 버드나무 군락, 파헤쳐지는 흰 모래 사장, 멸종 위기의 수달, 사라져가는 흰수마자…. 이뿐만이 아닙니다. 영주댐의 건설로 운포구곡을 비롯한 비경과 문화재, 농경지도 수몰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6~7일 사이 약 20명의 작가들은 낙동강의 젖줄 내성천으로 향했고, 삽질에 의해 찢기고 파괴된 강바닥을 다시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흐르는 내성천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지금 내성천으로 가보시기 바랍니다. 그곳에서 여러분 스스로 강이 되어, 모래의 강 내성천을 마침내 지켜주시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 내성천 살리기 참여 작가 일동 


▲ 내성천의 강줄기 ⓒ <강(江), 원래> 영상

바다에서 강으로

아버지 직업 때문에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만 살았던 나는 강보다는 바다와 친했다. 모래를 파서 조개를 캐고, 바위 밑에 매달린 주황색 멍게를 따고, 겨울에는 돌껍질에 숨어 있는 굴 속살을 발라먹는 재미에 푹 빠져 놀았다. 배가 고파질 때쯤엔 엄마는 우리가 잡은 고동을 잔뜩 넣어 라면을 끓여주었다. 국물에서 진한 바다 맛이 났다. 햇볕에 살이 벌겋게 익어 밤새 쓰라림으로 잠을 못 자도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바다로 달려가던, 도통 피부가 하얘질 틈이 없었던 나의 어린 시절 별명은 '블랙죠'―심형래가 선전하며 유명했던 초코바―였다.

바닷가 촌년의 서울 행은 스무 살 무렵이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시작한 서울살이는 고달팠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외로웠다. 힘든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가 위로 받던 바다는 너무 멀었다. 아쉬운 대로 그때부터 나는 한강을 찾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고수부지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한강공원 매점의 컵라면으로 허기를 채웠다. 강을 가까이 보고 싶어 콘크리트 계단을 내려서면, 순찰 도는 아저씨의 호각소리가 들렸다. 위험하다는 경고. 죽은 물고기 몇 마리가 서해로 떠가고, 강 건너 강변북로에 퇴근길을 재촉하는 차들의 행렬은 동쪽을 향했다.

▲ 모래무덤 ⓒ 박채은

내성천, 모래

"한강이 예전에 이랬어요. 정말 끝없는 모래뻘이었거든요. 제가 거기서 살았으니까…."

한강에 모래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난다. 지율 스님이 말씀을 이어간다.

"한강 백사장이 여기보다 더 넓었어요. 근데 모래를 계속 파냈잖아요. 어마어마하게 골재 채취한 거예요. 그러고 나니 물이 썩고 백사장이 사라지고, 순 생기는 게 콘크리트 다리, 도로… 자연이 가진 거는 아무 것도 남아 있는 게 없는 거예요."
  
우리는 그때 낙동강에서도 모래가 가장 많다는 내성천을 따라 걷고 있었다.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인 순례단은 한강에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졌었다는 스님의 말을 쉽게 못 믿는 눈치였다. 물론 나도 믿기지 않았다. 내성천의 모래톱은 강변의 풀과 나무가 아니었더라면 사막이라고 착각할 만한 정도의 규모였다. 깔끔하게 정돈된 직선의 강, 개발로 변해버린 한강이 강의 전부인 줄 알았던 사람들에게 내성천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원형의 강이었다. 항상 그 자리에서 흐르고 있었지만, 우리는 몰랐던 강… 불과 수십 년 전의 한강의 원래 모습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그걸 '강'이라 알고 있던 우리들의 무지함….

"우리가 강을 모르기 때문에 강을 잃게 돼요. 차를 타고 빨리 지나가면 강의 한 단면, 2차원만 보고 가게 돼요. 이렇게 도강(渡江)을 해 보면 강의 깊이까지 느낄 수 있어요."

물에 들어가는 것을 망설이는 우리들에게 지율 스님이 먼저 강을 건너며 하는 말이다. 강은 그저 멀리 바라보며, 감상하는 곳인 줄 알았다. 한강은 그런 곳이었으니까. 하회마을, 병산서원, 상주 경천대, 내성천에서 우리는 강을 품고 물과 함께 흘러가는 모래를 만났다. 그 모래 위에서 모래성을 쌓기도 하고, 강물 속을 걸으며 모래를 느낀다. 큰 모래나 자갈을 밟으면 발이 아프다가 고운 진흙 같은 모래 위에 올라서면 부드럽고 간질간질한 느낌이 참 묘하다.

여기저기서 동물들의 발자국을 발견했다고 호들갑이다. 불청객들의 소란스러움 때문인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모래에는 생명의 흔적이 남는다. 강가에서 오래 살던 분이 발자국의 이름을 찾아준다. 수달, 삵, 너구리, 고라니가 물 마시러, 먹이를 먹으러 이곳을 다녀갔구나. 이제 모래 위에 만난 발자국만 봐도 반갑다.

도시에, 마을에 사람이 살듯이 강에는 수많은 생명들이 강과 어우러져 살고 있다. 사람의 눈에 잘 보이지 않아서 우리는 그 생명의 존재를 자주 잊는다. 강에는 물고기가 살고, 물새가 살고, 수달이 산다. 그것은 당연하고 스스로 그러한 자연이다. 하지만 강과 멀어진 사람들은 그들을 마치 없는 존재로 여긴다. 그래서 마음대로 댐을 쌓고, 모래를 퍼내고, 습지를 메운다. 강을 파헤치기 전에 단 한번이라도 물어보았나. 강에 사는 생명들에게, 강에게, 모래에게….

해평습지, 28공구

▲ 예천 내성천의 포클레인 작업 현장 ⓒ 초록의공명
덜컹거리며 달리는 덤프트럭 행렬 위로 모래 먼지가 뿌옇게 피어오른다. 4대강 공사현장에는 수백 대의 포클레인과 덤프가 모래를 푸고 실어 나른다.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해평습지의 모래톱과 숲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는 해평습지가 아니라 '낙동강 살리기 사업 28공구' 현장이다. 작년 여름 낙동강 순례를 통해 왔던 이곳을 다시 한번 찾았다. 이번에는 4대강 공사를 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강을 파헤치고 있는 그들에게 '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 나르고 있는 '모래'에 대해 묻기 위해서였다.

4대강 공사의 책임이 그들에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도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노동자일 뿐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눈에도 보일 것이다. 4대강 공사로 무엇이 파괴되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이 죽어 가고 있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며칠 동안 건설노동자들의 덤프를 타고 다니며, 공사 현장을 기록했다. 회사에 알려지면 잘릴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도와주려던 노동자 분들의 노력으로 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었다.

모래는 4대강 공사의 시작과 끝이다. 보를 쌓는 현장을 제외하고는 공사의 대부분은 모래를 준설하는 일이다. 강을 따라 형성된 주변의 모래톱뿐만 아니라 강바닥의 모래도 6m 깊이로 모두 파낸다. 강물을 중간에 막고 가물막이를 쳐 물을 뺀 다음, 포클레인으로 모래를 퍼올리면 덤프트럭이 강 밖에 골재 적치장이나 농경지에 모래를 쌓는다. 그 작업이 2009년 11월부터 현재까지 무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모래들이 강에서 사라졌을까. 낙동강에서만 4억 4천만 톤의 모래를 퍼낸다. 도무지 가늠이 안 되는 이 규모는 2백m 너비에 6m 높이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쌓을 양이라 한다.

이 비현실적인 수치를 4대강 현장에 가면 그대로 체감할 수 있다. 고층빌딩보다 더 높은 모래산이 강 주변 농지를 가득 메우고 있다. 과수원에 채 익지 않은 과일나무가 모래더미에 묻혀 죽어 가고, 질주하는 공사차량과 쌓아둔 모래산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 때문에 농가와 비닐하우스는 모래에 질식해 있다. 1년 6개월 만에 이 어마한 양의 모래를 준설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불법 과적과 과속을 일삼는다. 20명이 넘는 노동자가 이 살인적인 공사 때문에 사망했고, 그보다 훨씬 많은 노동자들이 다치고 쓰러졌다.

"4대강 공사가 사람 잡습니다. 공사장에 들어온 사람들도 이러다 죽겠다며 일주일을 못 버티고 나가요."

4대강 사업으로 강도, 사람도 모두 죽어가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 무참히 파헤쳐지는 낙동강 해평습지 ⓒ <강(江), 원래> 영상

강에서 바다로

"낙동강에 모래가 많은 이유 중 하나는 태백, 소백, 함백 등 백자 들어가는 산들이 모래산이기 때문이에요. 옛날에 바다였던 곳이죠. 돌의 윤회라는 게 있어요. 마그마가 터져서 바위가 되고 그 바위가 깨져서 한 알의 모래가 됩니다. 그 모래가 강을 따라 흘러서 바다의 모래가 되는 거지요."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경천대 모래톱을 걸으며 지율 스님은 돌의 윤회에 대해 이야기한다. 4대강 공사가 끝나고 나면, 저 산의 모래들이 스스로 바다로 내려갈 수 있을까. 낙동강의 모래의 원천인 내성천은 영주댐이 생기고 나면, 상류에서의 모래 유입이 급격하게 줄어 원래의 모습을 잃게 될 것이다. 힘겹게 하류로 내려온 모래들도 낙동강 8개 보에 가로막혀 흐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윤회의 고리는 끊긴다.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낙동강의 그 모래들이 바다를 건넜다. 해군기지 건설이 예정된 제주도 강정마을. 아름다운 구럼비 바위를 뒤덮어버릴 시멘트 콘크리트가 되기 위해 낙동강 그 모래들이 제주도에 있다. 이 개발과 폭력의 시대의 슬픈 윤회다.
관련기사 - [시] 냇물이 흐르는 쪽 - 등 가르고 넣은 인공뼈...엄마는 ... - [시] 아름다운가 - 미역 감겠다고 왔는데... 어, 또... - [동시] 밥 짓는 지율스님 - 땅 파면 돈 나오는 곳, 여기였네
덧붙이는 글 | * 박채은 : 4대강 사업 반대 옴니버스영상프로젝트 에 참여. 정부의 4대강 사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타의에 의해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다. 낙동강 순례를 다룬 (2010), 4대강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2011) 두 편의 다큐가 그것. 타의로 영화를 만들지 않아도 되는 그런 좋은 세상을 꿈꾼다. 

* 내성천 한 평 사기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 공식 홈페이지 : http://www.ntrust.or.kr/nsc 
내성천 지킴이들 카페 : http://cafe.daum.net/naeseongcheon 
내성천 답사를 원하는 단체는 위 카페를 참조해주세요. 
출처 : [시] 냇물이 흐르는 쪽 - 오마이뉴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