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17일 토요일

코뚜레 뚫자 졸도한 송아지


이글은 한겨레신문 휴심정 2011. 09. 14자 기사 '코뚜레 뚫자 졸도한 송아지'를 퍼왔습니다.

코뚜레를 한 소를 끌고가는 농부의 모습 사진 <한겨레> 자료
농사에서 쟁기나 써레질, 또는 수레 끄는 소를 ‘일소’라고 하는데,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 전통 농가의 소들은 모두 일소였다. 육식을 위한 육우 개념은 방목형 내지 공장형 전업축산이 나타난 이후다.

소는 쟁기질만 할 줄 알면 써레질이나 수레 끄는 일도 할 수 있다. 쟁기질을 위해서는 멍에를 지워야 한다. 멍에는 기역(ㄱ)자로 된 통나무를 소의 어깨 위에 얹어서 양쪽에 끈을 묶어 힘을 이용하는 것인데 이때 멍에를 받쳐주는 어깨의 근육살을 등심이라고 한다.

소가 멍에를 지는 것은 주인을 위해 희생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멍에를 진다’는 의미가 된다. 예수님도 “수고하며 무거운 멍에를 지고 허덕이는 자여, 모두 내게로 오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고 하셨다.

모든 소가 처음부터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일소가 되려면 훈련을 받아야 한다. 가라, 서라, 돌아라, 천천히, 힘을 내서…… 말귀를 알아듣고 순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농작물을 밟지 않고 고랑만 밟고 지나가면서 두덩을 헤치지 않고, 고랑 끝에 가면 스스로 서고, 농부와 호흡을 맞춰야 한다. 그런 훈련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소에게 쟁기질 훈련을 시키려면 기본적으로 코뚜레를 해야 한다. 쟁기질 때문이 아니라도 전통적으로 소는 코뚜레를 해서 길렀다. 힘이 센 소를 다루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6~7개월쯤 되었을 때 코를 뚫어 동그란 코뚜레를 끼운다. 코뚜레에 묶는 줄을 고삐라고 한다.
유치원 아이들도 소를 잘 다룰 수 있는 것은 코뚜레 때문이다. 쟁기질을 마친 아버지가 아이에게 먼저 소를 몰고 집으로 가라고 하면, 아이는 고삐를 잡고만 있어도 소가 1킬로미터 이상 되는 자기 집 골목을 알아서 찾아간다. 소는 잘 가다도 밭 주변을 지날 때면 갑자기 콩이나 작물을 순식간에 한 입 훑어 먹어버리기도 한다. 이때 아이는 즉각 고삐를 잡고 때리는 시늉을 한다. 흉내만 내도 소는 눈치를 보면서 발걸음을 옮긴다.

소나 돼지, 염소, 등 가축은 덩치가 작은 아이들을 무시하고 말을 잘 안들을 때도 있다. 그런 버릇을 바로 잡을 때에도 코뚜레가 힘을 발한다. 고삐를 잡고 야단을 치고 몇 번 때리고 하면 아이의 말도 잘 듣게 된다. 수정을 시키는 일에도 코뚜레가 있는 소는 붙잡고 있으면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코뚜레 없는 소는 저항하고 여간해서 말을 안 듣는다.

코뚜레는 단단하면서도 잘 휘어지는 나무를 재료로 쓰는데 대나무가 많은 지역은 대의 뿌리로 하기도 한다. 단양읍내 철물점에서 코뚜레를 구입했는데 굵은 철사에 비닐을 피복한 제품이었다. 코뚜레도 현대화된 셈인데 모양과 기능은 전통적인 코뚜레 그대로다.


영화 <워낭소리>의 한 장면

요즘은 코를 뚫는 일도 기계를 이용해 간단하게 하고 동그랗게 한옥 문고리만 한 것을 코걸이로 달아놓은 것을 종종 본다. 소는 코걸이를 덜렁거리며 살게 되는데 수정을 시키거나 이동시켜야 할 일이 있을 때에 코걸이를 잡아 다룬다. 코뚜레나 코걸이나 소에게는 마찬가지겠지만 코걸이는 어쩐지 노예시장에 끌려나온 모습을 보는 듯해서 몹시 흉하게 느껴진다. 소도 자존심이 있을진대 대접이 아닌 것 같다.

농가에서도 더 이상 소가 일을 하지 않으면서 코뚜레의 필요성이 없어졌다. 요즘 소들은 풀을 뜯으러 갈 일도 없고 쟁기질을 하거나 수레를 끌 일도 없다. 그저 주는 사료 잘 먹고 새끼를 잘 낳거나 살만 잘 찌면 제 할 일이 끝난다.

코뚜레가 없는 소를 이동시키거나 수정시킬 때는 그 힘센 소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다룰까 궁금했는데 비결이 있었다. 줄로 홀침을 만들어 소의 뿔에 거는 것이었다. 뿔은 양쪽 방향으로 뻗어 있기 때문에, 소뿔 두 개를 동시에 걸어 묶으면 코뚜레만큼의 기능은 아니지만 제압이 가능했다.

뿔이 뇌에 연결되어 있어서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아직 뿔이 나지 않은 어린 송아지나 중송아지들은 줄로 홀침을 해서 주둥이에 끼우고 목 뒤쪽으로 줄을 돌려 다시 홀침 줄에 묶는다. 그렇게 하면 줄을 당겨 머리 방향을 조종할 수 있다.

말해놓고 보니 영세 축산 6년 경험으로 60년 장인처럼 말한 것 같아 쑥스럽다. 우리 소는 세 마리가 코뚜레를 하고 있는데 모두 김 노인이 뚫어준 것이다. 준비물로 무엇이 필요한가 여쭈었다.

“그야, 소를 붙잡아 줄 장정 몇 명 있으야 되지. 철물점 가거덩 코뚜레 두 개 정도 사와야 되지. 고삐는 그냥 있는 줄 쓰면 되고. 그래고 거…… 소주 한 병 있으믄 되지! 김치하고…….”

약속시간에 모시러 가려고 했는데 경운기를 타고 올라오셨다. 가지고 온 나뭇가지를 낫으로 깎아 송곳을 만드는데, 날카로운 부분과 손잡이 부분을 정교하게 깎는다.

“요만하믄 되았지?” 하시더니 소주를 머그컵에 따라서 한 잔 쭈욱 드셨다. 안주는 깜박 잊으셨기에, 안주 한 점 드시라고 하니 김치 한 조각을 입에 넣으신다. 축산 담당하는 길산이와 장정 네 명이 붙어서 소를 우사 코너에 꼼짝 못하게 묶어 밀어붙였다. 6개월 중송아지다.

김 노인은 손에 침을 탁탁 뱉더니 왼손으로 송아지 코를 잡고, 오른손에 나무 송곳을 쥐어들고는 “읍!” 소리와 함께 송곳을 쑤셔 박았다. 피가 터지고 송아지가 몸부림치더니 졸도하여 넘어졌다. 송아지가 쓰러지니 김 노인도 약간 당황해했다. “

조금만 기둘려라잉!” 하시더니 두어 번 더 “으읍!” 소리와 함께 송곳을 완전히 찔러 넣었다. 그러고는 이내 코뚜레를 끼우고 고삐를 묶어 채워준 다음 풀어주었는데, 송아지는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움직이지도 않고 서서 코에서 흐르는 피를 연신 혀로 닦아 먹는다. 소코뚜레 뚫기 작업 완료다.

허리도 굽은 노인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힘쓸 줄 모르는 젊은 초보 농부들은 혀를 내두른다. 송아지는 코뚜레를 끼워준 즉시 앳된 송아지 얼굴이 사라지고 유난히 작은 어른 소가 되어버렸다. 소에게 코뚜레는 성인식이었던가 보다. 그래도 마치 고등학생이 아버지 신사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것처럼 어색하기 그지없다. 사람이나 소나…… 그렇지 뭐!

소코뚜레는 언제부터 했고, 어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소의 아킬레스건이 코에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참 신묘한 일이다.

고대인들은 삶의 지혜를 과학에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학이 따를 수 없는 다른 차원의 능력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 그 능력은 영적 차원에서 크신 존재로부터 얻은 것이고, 그렇게 필요한 것만 얻어서 살아가는 것이 고대인의 생존양식이었다고 생각한다. 빛나는 삶은 신비의 차원이 된다!

두세 달 지나면 쟁기질을 가르칠 것이다. 이번에는 성공해야 할 텐데……. 쟁기질 연습을 두 마리나 시도했지만 두 번 다 실패했다. 쟁기질 연습이란 무게가 나가는 통나무나 자동차 타이어를 줄로 묶어 멍에에 달고 소를 끌면서 매일 적당 시간 오가는 훈련을 말한다.
그런데 설명 들은 대로 했는데도 매번 실패다. 소가 우리 가족들을 ‘척! 보아하니’ 농사꾼으로선 너무 어설픈 모습이라 그랬을까? 소도 자존심이 상했는지도 모른다. 인정한다. 그래도 소가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 농사꾼 후계자를 자청하여 귀농한 사람들을 좋은 마음으로 따라야 복이 있고, 또 잃어버린 쟁기질을 다시 한다는 것은 소가 진짜 소답게 사는 길이라는 점이다.

 사람이나 소나 유유상종이다. 우리가 도시의 안락한 삶을 버리고 사람다운 삶을 찾아왔듯이, 우리를 만난 소도 냄새나는 우사에서 주는 사료나 먹고 살만 찌는 소가 아니라 소다운 삶을 찾아야 할 것이다.

“소야! 노동을 두려워하는 인간들 모습 봤지? 일소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이냐. 한우의 체면과 자존심을 생각해서 쟁기질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하는 거 아니겠어? 넌, 소라고 생각하지 마. 농사꾼이야. 자랑스럽게 여겨야 해. 산위의 마을 농사꾼, 파이팅!”
사람 달래며 사는 것도 힘든데, 소까지 달래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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