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25일 일요일

부도덕하게 성공한자들을 경멸하라

이글은 한겨레신문 휴심정 2011. 08. 25자 기사 '부도덕하게 성공한자들을 경멸하라'를 퍼왔습니다.


손봉호(73) 서울대 명예교수는 ‘공명’이나 ‘도덕’, ‘정직’, ‘중도’ 등의 가치가 필요한 단체에서 추대할 ‘대표’로 가장 선호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최근 그만둔 시청자자문위원장 같은 흘러간 직함 말고도 현직 ‘이사장’ 직함만 9개다. 하지만 그는 ‘얼굴 마담’으로 만족할 탤런트형이 아니다. 신자들의 열광적 신심을 등에 업고 부도덕한 행위조차 정당화한 목사들을 정신 차리게한 기독교윤리실천운동도, 1990년대 ‘공명선거운동’으로 선거의식의 큰변화를 가져온 것도 그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올 들어서는 대표회장 선거를 놓고 금권선거로 물든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해체 운동을 이끌었다.

결코 쉴 틈이라곤 없어보이는 그가 이번에 (홍성사 펴냄)란 책을 냈다. ‘따뜻한 남자 손봉호 교수의 훈훈한 잔소리’란 부제가 붙었다. 이 책을 열면 첫페이지에 손 교수의 딸이 친구로부터 들었다는 ‘그런 아빠하고 어떻게 같이 사니?’라는 문구가 퍼뜩 눈에 띈다. 그게 딸의 친구만의 생각일까. 그래서 그와는 영 안어울릴 듯 싶은 부제에 대해 딴지를 붙기 위해 한장 두장 넘기다보면 ‘도덕 교과서’ 같은 그가 실은 얼마나 ‘웃기기도 하는 남자’인지 알게된다.

‘의외로 따뜻하면서도 웃기는 이 남자’를 23일 만났다. 역시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한 자선재단의 사무실이었다. 70을 훨씬 넘었지만 흰머리만 아니라면 50~60대로 보일만큼 젊다. ‘왜 그렇게 젊냐’는 첫질문에 ‘별로 스트레스를 안받아서’란다. 황당한 일이다. 그토록 ‘도덕’과 ‘윤리’를 강조해서 세상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킨 그가 정작 자신은 스트레스를 받지않는다는 것이다.

“돈과 권력, 명예를 탐하면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런 것에 관심이 없으면 스트레스 받을 일이 별로 없어요.”
온갖 재단과 단체에서 그를 ‘돈 안되는’ 이사장직에 앉히는 것도 돈, 권력, 명예를 애초에 갖기 어려운 인물이 아니라 분히 가질 수 있는 인물로서 ‘해방’된 그만한 인물을 우리 사회에선 찾기 어렵다는 반증일까.

일제 때 신사 참배를 거부한 고신교단의 교회에 경주중학교 2학년 때부터 다닌 뒤 경주고에 2등으로 합격하고도 ‘주일’을 지키려 주일날 신체검사를 받지않아 불합격될 뻔하고, 교련때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고, 서울대 시험때도 ‘주일날’ 소집에 불응해 수험표를 받지않아 시험도 못볼 뻔하고, 군대서 유류창고 보초를 서면서 당시 졸병으로선 저지하기 어려운 ‘기름의 부정 반출’을 절대 불허할만큼 그는 완고한 고집장이였다.



경북 시골의 한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지만, 요새 그만한 가장도 찾아볼 수 없다. 결혼해서 40년간 부인에게 “사랑한다”고 말해 본적이 한 번도 없다는데도 용케 쫓겨나지않고 살고 있다면 운 좋은 사람임에 틀림 없다. 청렴결백이 그로선 자랑이 될 지 모르지만, 가족들에겐 불만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신세를 졌다고 여긴 한 지인이 그의 연구실에 에어컨을 설치하기 위해 배달 중이라는 전화를 받는 것을 보고, 수화기를 뺏어든 그의 부인이 호통을 쳤다니, 오늘날 상종가인 ‘도덕군자 손봉호’ 란 브랜드를 낳는데 그의 아내도 상당한 공이 있는 셈이다.

더구나 1남1녀에게도 오래 전에 ‘유산 안남기기 운동 동참’을 선언했는데도, 자녀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대한민국 모든 가장들의 부러움을 살만하다.

그의 이런 면모를 들어 ‘완고함’만을 본다면 그를 다 본 것이 아니다. 그는 좌도 우도 아닌 ‘좌충우돌’이라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을만큼 자유롭다. 네덜란드에서 8년을 보낸 그가 공부한 대학 이름도 ‘자유대학’이다. 그래서 물었다. “네덜란드의 매춘 허용을 어떻게 보느냐"고.

“네덜란드 정부도 매춘을 금지할 경우 통제에서 벗어난 매춘부들이 몰래 주택가까지 침입할 수 있었기에 고민이 많았지요. 구역을 정해놓고, 매주 검진을 받아 에이즈 등의 확산을 막은 건 당시로선 합리적 결정이었죠.”

 그는 네덜란드의 마약과 안락사 허용 등에 대해선 동의하지않지만, 표 안내고 제3세계 사람들을 가장 많이 돕는 네들란드인들을 좋아한다. 특히 `티를 내지 않는다'는 대목이 그와 상통한 모양이다.

 누구보다 독실한 기독교인이면서도 늘 현실적인 문제에 도그마를 들이대기보다는 합리성을 추구하는 열린 마음 때문일까. 그에겐 유달리 절친한 지인들이 많다. 그가 늘 자기보다 나은 부러운 사람이라고 추켜 세우길 마다하지않는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와는 교회운동과 사회운동을 늘 앞서거니 뒷서거니 함께해온 벗이다. 유학 중 사귄 친구들과도 수십년이 지금까지 오가며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네덜란드에서 유학중 만났던 친구 셋이 2주동안 그의 집에 머물며 놀다갔다.

 그는 교회에 가면 교수로 불리길 꺼린다. 그는 교회를 4개나 세운 장로다. 고 옥한흠 사랑의교회 목사와 이동원 지구촌교회 은퇴목사, 홍정길 남서울은혜교회 목사, 고 하용조 온누리교회 목사등 ‘복음주의권 4인방’의 멘토일만큼 기독교에선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러면서도 (영)문학과 신학뿐 아니라 철학을 한 철학자답게 모든 도그마를 비판하며 토론하는 열린 마음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장애인자선단체인 세계밀알연합회를 만들고 나눔국민운동 대표로 활동하며 앞으로 못사는 나라의 장애자들을 돕는 일에 헌신하고 싶다는 그가 요즘 가장 관심을 쏟는 것은 ‘약자’다. ‘배고파서 저지른 잘못’에 대해선 관대해야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가 윤리니 도덕을 들이대는 대상도 ‘많이 갖고 있으면서 더 갖기 위해 비리를 저지르는 강자들’이다.

“못사는 사람들은 유혹이 별로 없지요. 하지만 힘있는 사람들에겐 유혹이 많지요. 조금만 정직하지않아도 얻을 이익이 크지요. 그들이 ‘조금 부정직’해지면 큰 이익을 얻지만, 그로인해 사회의 약자들이 결국 큰 해를 입지요. 지도층과 강자들에게 윤리와 도덕이 절실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지요.”

 그는 한국 기독교가 열렬한 신앙심을 가진 장점이 있지만, 그 신앙심이 사랑이 아니라 이기적 기복이라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여긴다. 유럽보다는 피상적이고 쇼적인 요소가 강한 미국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그런 기복성을 한국 기독교인들이 진정한 크리스찬이 되기 위해 극복해야할 첫 과제로 꼽는데 주저하지않는다.

 그의 간절한 요구는 크리스찬에게만 향한 것은 아니다. 그는 "이 사회가 건강해지려면 부정직하고 부도덕하더라도 출세하고 성공만 하면 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된다"면서 "부도덕한 강자들을 무시하고 그들에게 분노할 줄 아는 정도가 사회의 성숙도를 가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건강한 사회가 되려면 부도덕하게 성공하고, 돈을 벌고, 출세하는 이들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경멸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하며, 그래야 그렇게 성공한 자들이 부끄러움을 아는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 사회가 되어야 약자들이 피해를 보지않고, 고통을 덜 받는 세상이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러니 제발 온갖 부도덕한 짓을 해서라도 돈을 많이 벌거나 출세하고 큰건물을 지은 재벌이나 고위공직자나 성직자들을 제발 부러워하지 말고, 경멸하고 분노하라는 게 노교수이자 노 장로의 신신당부였다.

강자들에겐 강하고, 약자들에게 너그러운 그와 ‘잠깐 쉬었다가’ 일어서보니, 함께 있었던 이는 ‘도덕 선생’이 아니라 ‘따뜻한 남자’였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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