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17일 토요일

[사설] 위기대응 총체적 부실 드러낸 ‘정전 사태’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0916자 사설 '위기대응 총체적 부실 드러낸 ‘정전 사태’'를 퍼왔습니다.
한가위 연휴를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온 시민들은 느닷없이 큰 재난을 맞았다. 엊그제 오후 전국을 아수라장으로 몰아넣은 대규모 정전은 지금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태였다. 주요 산업단지의 공장이 갑자기 멈추고, 아파트나 고층건물에선 사람들이 깜깜한 승강기에 갇혀 공포에 떨어야 했으며, 도심 곳곳에서 교통신호등이 꺼져 큰 혼잡을 빚었다. 이번 정전 사태는 정부와 전력 유관기관들이 예고도 하지 않고 일으킨 명백한 ‘인재’다. 따라서 책임 소재를 분명히 물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지식경제부는 이번 정전 사태를 부른 배경을 늦더위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상고온으로 전력수요가 예상치를 훨씬 웃돈 가운데 발전소 정비 기간이라 실시간 공급능력이 한계를 보여 어쩔 수 없이 ‘순환 정전’이라는 비상조처를 내렸다는 것이다. 결국 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날씨가 정전 사태를 불렀다는 얘기다. 지경부는 다만 수요예측 실패와 예고 없이 전기공급을 끊은 데 대해선 최중경 장관이 서면으로 사과했다. 그러나 이런 해명과 사과는 피해자들의 분통만 사고 있다. 전형적인 책임회피형 논리인 탓이다.
이번 사태에서 전력수요 예측의 실패는 어찌 보면 부차적인 문제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위기 관리 능력의 총체적 부실이다. 먼저 직접적으로 전력 수급을 책임지는 한국전력과 5개 발전 자회사들, 전력거래소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제한송전이 불가피할 경우를 대비해 만든 전력시장운영규칙은 물론 자체 ‘비상대응 매뉴얼’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일반 이용자들에게도 미리 정전 시간 등을 알려줬더라면 시민들의 불편과 경제적 피해는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정부 관련 부처의 대처 방식도 안이하긴 마찬가지였다. 현행 전기사업법상 전력 수급 안정의 최종 책임자인 최중경 지경부 장관은 정전 사태가 발생한 뒤 몇 시간이 지나서야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최 장관은 어제 국회에 출석해 “전력 수급 상황이 급변할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고 답변했는데, 이는 스스로 무능과 안이한 대응을 인정하는 것이다.
전력거래소 자료를 보면, 예상치를 벗어난 전력수요 증가로 전력예비율이 급격히 떨어진 것은 지난 13일부터다. 주무부처 장관의 늑장 파악과 대응 때문에 행정안전부나 경찰, 재난 주관방송사인 등 유관기관과의 공조체제도 전혀 가동하지 않았다. 위기관리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청와대는 사상 초유의 정전 사태에 대한 논평도 없이 ‘나 몰라라’로 일관하고 있다.
전기와 같은 필수 공공재의 공급 차질은 국가비상사태다. 이번 사태가 발생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총체적으로 점검해 응분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 그게 정전 사태의 후유증을 최소화하면서도 중장기 전력 수급의 안정을 꾀하고 이런 일의 재발을 막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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