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28일 수요일

[사설] 검찰, 이번에는 용두사미 수사 안 된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09-27자 사설 '검찰, 이번에는 용두사미 수사 안 된다'를 퍼왔습니다.
요즘 청와대 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그제까지만 해도 청와대 몇몇 참모들이 나서서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비리 의혹 사건의 진화를 시도하더니, 어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친인척 및 측근 비리 엄단 지시를 내렸다. 청와대 작동 시스템에 이상이 생겼는지, 아니면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는 말 못할 사연이 있는 것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청와대의 오락가락하는 기류를 반영한 듯 검찰 역시 그동안 신 전 차관의 비리 의혹 수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국철 에스엘에스(SLS) 회장이 검찰에 제출한 자료가 없다”는 따위의 변명을 늘어놓으며 뒷걸음질치기 바빴다. 검찰이 제보자의 입에만 의존해 수사를 하겠다는 것도 어처구니없지만, 이 회장이 이미 폭로한 내용만으로도 수사할 단서가 넘쳐난다는 점에서 참으로 궁색한 변명이 아닐 수 없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나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수사 때는 티끌만한 단서 하나만으로 집요하게 물고늘어진 검찰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이런 말을 하는 낯뜨거운 배짱도 놀랍다.
이 대통령의 지시로 검찰 수사에는 일단 탄력이 붙겠지만 그렇다고 속시원한 수사 결과가 나오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이국철 회장 폭로 사건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신 전 차관 한 명 정도에 그치지 않는 ‘대형 게이트’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에스엘에스그룹의 해체 및 회생 노력 과정에서 ‘세상이 다 알 만한’ 현 정권 최고 실세가 개입했고, 이 사건을 제대로 파헤치면 정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도 슬슬 흘러나온다. 검찰이 이런 폭발성 강한 사건에서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수사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이국철 회장 사건을 통해 현 정권의 아킬레스건인 비비케이(BBK) 사건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신 전 차관이 대선 직전 이국철 회장의 법인카드를 갖고 서너 차례 미국을 방문한 것이 에리카 김과의 비밀협상 목적 때문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이런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국철 회장의 돈이 이명박 후보 캠프의 비비케이 사건 공작금으로 쓰인 셈이니 간단히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이래저래 검찰로서는 진상을 밝혀야 할 과제가 많아졌다. 검찰이 이번에도 용두사미 수사, 면죄부 수사로 끝낼 경우 검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씻을 마지막 기회를 놓치게 됨을 깊이 인식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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