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24일 토요일

[사설]걸핏하면 ‘북한 가라’는 천박한 말버릇


이글은 경향신문 2011-09-23자 사설 '걸핏하면 ‘북한 가라’는 천박한 말버릇'을 퍼왔습니다.
한나라당의 박영아 의원이 며칠 전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의원이 있다면 북한에 가서 의원 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것도 동료 의원에게 한 말이다. 지난해 7월 일국의 장관이라는 사람이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패인을 젊은이들 탓으로 돌리며 “그렇게 (북한이) 좋으면 김정일 밑에 가서 어버이 수령하고 살아야지”라고 한 발언의 판박이다. 이 정도면 고질병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문제의 발언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사실상 북한의 인민민주주의도 민주주의로 용인한다는 의미이니 북한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발언의 저급함을 떠나 어떠한 논리적 정합성(整合性)도 갖추지 못한 발상이 놀랍다. 반공 국시에 따라 소멸하다시피 한 ‘동무’란 말을 떠올리게 한다. 가정법을 빌린 색깔론도 섬뜩하다. 그런 어법이라면 누구에게라도 이념적 낙인 찍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보수 전사’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의도인지, 여당 내에서 횡행하는 수많은 색깔론을 부지불식 간에 흉내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명색이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이 이런 막말밖에는 내세울 게 없는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사단의 원인이 된 ‘민주주의냐, 자유민주주의냐’ 논란도 딱 문제 발언의 수준이다. 애초 교과서에 ‘민주주의’로 된 표기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려는 속셈은 자명하다. 냉전시대의 이념적 잣대를 들이댐으로써 이승만을 ‘건국’의 국부로 추앙하고, 박정희 독재를 미화하려는 정지작업의 일환일 뿐이다. 한국 민주주의를 ‘반공’을 국시로 삼았던 구시대의 편협한 논리로 재단하려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그들은 헌법에 나오는 ‘자유민주적’이라는 표현을 근거로 들지만 그것이 특정한 민주주의 체제를 지칭한 게 아니라 ‘자유롭고 민주주의적’이라는 취지임은 그들도 알 것이다. 뉴라이트 계열의 인사들을 제외하고는 이 같은 다툼이 논쟁거리도 아니라는 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보수를 참칭하는 수구세력의 ‘역사 뒤집기’에 비견할 만하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얼마전 ‘안철수 현상’을 두고도 ‘좌파의 정치쇼’로 몰아붙인 바 있다. 일련의 행태들은 이념이나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기보다 그들에게 불리한 정치적 상황에 처할 때마다 조건반사적으로 도지는 일종의 병리 현상에 가깝다. 이런 구태를 청산하지 않은 채 10·26 재·보선이나 내년 총·대선에서 중도나 젊은층 표를 노리겠다니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걸핏하면 터져나오는 ‘북한 가라’는 식의 천박한 색깔론에 더 이상 먹혀들 국민이 얼마나 될지 진지하게 고민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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