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대자보 2012-05-16일자 기사 '진보정당이 사는 길, 죽는 길'을 퍼왔습니다.
[김영호 칼럼] 물러날 사람은 물러나고 떠날 사람은 떠나고 새판 짜라
통합진보당 국회비례대표 경선부정은 이제 당내문제를 넘어 진보정당의 향방을 가르는 사태로 발전했다. 진보정당의 존립에 치명적 타격을 준데 이어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연대마저 위기국면으로 몰고 갔다. 문제의 발단은 경선부정이다. 일반상식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중대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당권파가 경미하게 치부하는 바람에 사태를 키웠다. 비례대표 사퇴를 거부함으로써 당내의 갈등구조인 패권주의와 종북주의의 논란을 증폭시킨 것이다. 이제는 비례대표를 사퇴하더라도 사태를 봉합할 단계를 넘어섰다. 진보의 가치를 새롭게 정립하고 진로를 다시 모색해야 할 중대한 기로에 봉착한 것이다.
진보정당의 고질적 문제는 자주파와 평등파의 갈등구조이다. 2008년 2월 그 대립이 격화되어 민주노동당의 탈당사태에 이은 진보신당의 창당이란 분열이 일어났다. 분단의 현실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차이가 문제의 핵심이다. 이른바 자주파는 한국사회의 모든 구조적 모순은 분단에서 발단한다고 믿는 듯하다. 통일이 최우선적 해결과제라는 신념적 확신을 가진 것 같다. 진보의 개념을 이념의 시각에 갇혀 협소하게 규정한 탓이다. 보편적 시각에서 복지, 정의, 평등으로 확장해야 지지기반을 확충할 수 있다.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의 득표율 10.30%, 의석 13석은 자주파가 일궈낸 성과가 아니다. 그 동안 정치일선에서 치열하게 활동한 인사들과 야권연대의 결실이다.
2차 세계대전 이전 주축국인 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공통적으로 나치즘, 파시즘, 군국주의의 광풍을 겪었다. 그런데 종전 이후에는 상이한 정치발달양상을 보인다. 여기서 공산당의 활동이 보수당의 정치적 영향력과 깊은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일은 분단 이후 서독에서도 나치체제하에서 정치활동이 금지되었던 공산당의 활동이 재개됐다. 그런데 소련과 동독을 지지해야 하는 태생적 한계를 지녔기 때문에 당세가 미약했다. 그나마 1956년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에 따라 해산되었다. 공산당의 조직기반이 취약했던 서독에서는 우파정당인 기독교민주당과 좌파정당인 사회민주당 사이에 원활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었다.
이에 반해 전후 이탈리아와 일본에서는 공산당이 의회에 진출했고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이점은 공산당의 활동이 활발할수록 보수정당의 영향력이 증대한다는 점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종전 이전 기민당이 공산당, 사회당과 합세해 반파쇼 연합세력을 구축했다. 그러나 1948년 헌법이 제정된 이후에는 그 기민당이 반공활동의 선봉에 나서 우파보수주의자의 지지를 기반으로 1993년까지 장기집권에 성공했다. 기민당이 우파정당, 중도정당, 사회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함으로써 장기집권이 기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1992년 검찰의 ‘깨끗한 손’이란 이름의 부패정치척결수사에 이어 1993년 비례대표 개편, 1989년 공산주의의 붕괴에 따라 이탈리아의 정치구도는 완전히 재편되었다. 기민당의 절대우위체제가 무너지고 좌우정당간의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인 1993년 일본에서도 자민당의 38년간 장기집권이 붕괴되었다. 종전 이후 자민당의 장기집권은 다수의 국민이 공산화를 우려해 보수정당을 밀었기 때문이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이후 미국이 일본을 전쟁수행의 배후기지로 활용하는 군사협력체제의 영향력도 컸다. 1989년 소련과 동구권에서의 공산주의 붕괴와 더불어 이탈리아와 일본에서 공산당의 정치적 영향력이 급격하게 쇠퇴했다. 이에 따라 두 나라에서 우파정당의 절대우위체제도 소멸되는 공통점을 나타낸다. 공산당에 대한 견제심리가 우파정권의 장기집권을 이끄는 지렛대 노릇을 해 온 것이다. 일본 공산당은 민생정치 쪽으로 변모하고 있다.
18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의 약진은 그 반동으로 우익세력에게는 진보정당에 대한 사상검증이란 과제를 던졌다. 이런 현실에서 NL(민족해방노선), PD(민중민주노선), 경기동부연합과 같은 운동권 내부의 노선과 조직이 연일 언론의 도마에 오른다. 평화통일-남북협력의 지향은 주사파와는 성격이 다르고 진보와 종북은 전혀 별개이다. 하지만 이른바 보수언론은 이를 일체화시키고 있다. 분단이라는 한반도의 특수상황과 앞으로 대선국면과 맞물려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하며 사상논쟁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야권연대의 반작용이 정권교체란 명제를 위협할 것이다. 민주사회에서도 공산당의 부각은 보수정당의 강세로 이어진다는 점은 이탈리아와 일본의 정당사에도 나타난다. 통합진보당의 경선부정 사태는 진보진영의 협소한 존립기간마저 흔들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물러날 사람은 물러나고 떠날 사람은 떠나고 새판을 짜라!
언론개혁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언론광장 공동대표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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