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17일 목요일

<핵의 나라> 사람들의 절규 "나 돌아 갈래!"


이글은 프레시안 2012-05--17일자 기사 ' 사람들의 절규 "나 돌아 갈래!"'를 퍼왔습니다.
[기고] 후쿠시마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핵 재앙이 덮친 후쿠시마 핵발전소 인근 후타바 마을에도 벚꽃은 피고 졌다. 장마도 어김없이 찾아와 많은 비를 뿌렸다. 단풍이 물들고 은행잎이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봄을 맞이해 벚꽃이 피고 졌다. 주민들이 오가며 인사를 건넸던 마을 우체국도, 도서관도, 주민회관도, 학교도 옛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이곳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다. 유령의 마을 후타바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제는 갈 수 없는 곳. 그곳이 바로 1000여 명이 살고 있던 후타바 마을이다. 마을 주민들은 온갖 추억이 깃든 곳을, 조상들이 영면한 묘지와 가족이 숨진 곳에 돌아갈 수 없었다. '핵의 나라' 일본에서 핵 재앙을 겪고 있는 핵발전소 인근 마을 주민들은 고향을 잃었다. 사건 발생 1년을 훌쩍 넘겼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핵이 할퀸 상처와 시린 추위만이 가슴을 여전히 후벼 파고 있었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주인공 설경구가 "나 돌아갈래!"를 외쳤듯이 마을 사람들은 다큐 영상을 찍는 카메라 감독 앞에서 "나 후타바로 돌아 갈래!"를 목 놓아 절규하고 있었다.

올해로 아홉 번째를 맞는 서울환경영화제의 마지막 상영작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인근 마을 주민들의 지난 1년간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핵의 나라)(Nuclear Nation)였다. 스승의 날 행사 참석도 제쳐놓고 15일 저녁 7시 30분부터 무려 2시간 30분간 상영된 이 영화를 보았다.



▲ <핵의 나라>. ⓒphil-fak.uni-duesseldorf.de

관람 내내 때론 부아가, 때론 연민이, 때론 슬픔이 가슴과 머리 그리고 온몸의 세포 속DNA까지 전달됐다. 카메라는 후타바 마을 입구 도로 위에 설치된 대형 아치를 클로즈업 했다. 내레이션과 함께 "원자력으로 풍요로운 사회 만들기"란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이 글귀는 가족을 잃은 채 황급히 멀리 대피해 한 고등학교에서 피난 생활을 하며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 절규하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과 오버랩 되었다.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을 함축해 놓은 듯한 장면이었다.

인자하고 후덕한 모습의 촌장 할아버지는 핵발전소와 관련한 후타바 마을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한숨이 가득 섞인 후회를 털어놓는다.

"후타바 마을은 전국에서 가장 발전이 더딘 곳이었어요. 국도조차 제대로 나 있지 않았죠. 그런 곳을 개발하기 위해, 정부 보조금을 받기 위해, 이곳에 핵발전소를 세운 것입니다. 핵발전소를 세우며 정부 관계자들은 이것이 얼마나 안전한 것인지를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보조금을 받아서 1980년대 많은 주민들이 핵발전소에 취업을 하고 생활수준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1965년 핵발전소 건설, 운영과 함께 주민들의 오토바이는 자동차로, 자그마한 집은 제법 큰 집으로, 경운기는 트랙터로 바뀌었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4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나빠졌다. 마침내 2007년에는 후타바 마을의 재정이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최악 10위권 안에 들었다. 마을은 핵발전소 2기(7, 8호기)를 추가로 건설키로 하는데 동의했다. 매년 10억 엔씩 4년간 40억 엔의 교부금을 받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해 공사를 앞두고 대지진과 쓰나미가 마을과 핵발전소를 덮쳤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으로, 지옥으로 변한 것이다.

사생활은 물론이고 자고 먹고 입는 것이 사람 사는 곳이라고 할 수 없는 학교 대피소 생활에 지쳐갈 무렵 그들에게 반가운 소식 하나가 전해졌다. 한 가족당 어른 2명에 한해 2시간의 고향 방문이 허용된 것이었다. 소식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너도나도 무엇을 가져올지를 놓고 가족끼리 설왕설래한다. 결혼 때 입었던 양복, 사진첩, 아끼던 구두,남편에게 받았던 재킷 등 그야말로 소박한 바람을 말하고 있었다. 어떤 주민은 두 딸의 결혼 피로연 장면이 담긴 DVD를 우선 목록에 올렸다. 자식에게 (혹성탈출) 시리즈 DVD를 꼭 가져오라고 말하는 할아버지도 있었다.

뜨거운 여름에 너무나 짧은 고향 방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짧은 시간이었지만 막상 현장에 도착해서는 방사능 피폭의 공포에 질려 있었다. "시간이 없어요"를 연발하며 숨진 어머니에 대한 참배를 빨리 할 것을 재촉하는 아들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짙게 배어 있었다. 아버지가 장갑을 낀 채 물을 만지자 고함을 지른다. "아무것도 만지지 마세요. 버스를 타기 전에 장갑을 벗으세요." 황량한 고향 마을을 둘러보며 비디오 영상을 찍어대던 그 청년은 몇 번이고 "눈물밖에 안 난다. 빌어먹을…"이라며 욕설을 내뱉는다. 정말 인간다운 반응이다. 그 누구도 그 상황에서는 욕이 가장 먼저 튀어나왔을 것이다.

마을 주민들은 핵발전소를 운전해 왔고 사고를 키운 도쿄전력에 대한 불만을 피난처에서 계속 쏟아냈다. 사람들이 피폭 당하고 집을 잃고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데도 그 누구도 진정성이 담긴 사과를 하지 않는다고 질타한다. 사고 한참 뒤에 "사고를 수습하느라, 그리고 그 뒤에는 몸이 아파 몸을 추스르느라 사과를 하지 못했다"고 TV 화면에서 말하는 도쿄전력 사장을 향해 "망할 놈. 그게 무슨 사과야. 여기에 직접 와서 사과해야지"라고 울분을 터트린다.

마침내 이들은 폭발했다. 한 여름 도쿄 시내에서 반 핵발전소 주민 운동 단체와 함께 반 핵발전소 시위를 벌였다.

"깨끗한 공기를 돌려 달라." "우리의 미래를 돌려 달라." "아이들의 미래를 돌려 달라" "핵발전소를 폐쇄하라." "핵발전소 피해자 생활보장법을 제정하라."

이들은 이렇게 외치고 있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자신들의 바람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헛된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한 노인은 말한다.

"우리는 마을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아요. 그 사실을 잘 알면서도 돌아가겠다고 외치는 것이 우습기는 하지만 달리 할 말이 없기 때문이에요."

후타바 마을을 비롯한 후쿠시마 핵발전소 인근 마을 피난민들의 원성이 점차 높아져 갔다. 원자력발전시정촌협의회도 정기 총회를 열어 정부를 압박했다. 산업경제부 장관과 핵 발전 담당 장관도 참석해 인사말을 했다. 모두들 간단한 인사말을 끝낸 뒤 바쁜 일정 때문에 일어선다며 곧바로 회의장을 나갔다. 수행 공무원들도 재빨리 따라 나갔다. 마치 우리 관료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았다. 어찌 그리도 한국과 일본이 꼭 닮았는지. 관람석에서 몇몇 관객들의 코웃음 소리가 들렸다.

영화는 대피소를 떠나 보험금 등으로 겨우 마련한 임대 아파트 등에 사는 후타바 출신 사람들의 생활을 소개한다. 대피소 생활보다는 한결 나은 삶의 모습이지만 여전히 그들의 얼굴과 표정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만을 지울 수가 없는 모양이다. 참사가 발생한 지 7개월이 지나자 대피소 주민들은 절반가량으로 줄어들었다. 한 마을에서 옹기종기 모여 공동체 생활을 했던 이들은 이제 각자의 삶을 찾아 뿔뿔이 헤어져야만 했다. 시간 앞에서는 모든 것이 어쩔 수 없다.

핵발전소 사고는 개인과 가족, 공동체 그리고 이들이 모여 이룬 국가를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을 (핵의 나라)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마을 한 주민은 말한다.

"지진, 쓰나미로 인한 피해는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핵발전소로 인한, 방사능 오염에 의한 피해로 우리는 그곳에 더 이상 살 수 없습니다."

다시 촌장의 말이 귓전을 때린다.

"핵발전소는 우리 마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세계가 핵발전소와 단절해야 합니다. 핵발전소 유치 자체가 실수였습니다. 핵발전소로 번영을 누린 사람들은 도쿄 사람들이었습니다."

촌장의 말은 나에게 이런 말로 들렸다.

"핵발전소로 지금 번영을 누리고 있는 사람은 핵발전소 주변 주민이 아니라 서울과 수도권 주민입니다."

일본에서는 모든 핵발전소가 멈추고 이번 여름을 난다고 한다. 만약 그렇게 하고서도 일본이 대혼란을 겪지 않고 잘 넘어간다면 우리도 핵발전소 추가 건설 등 현안 등을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핵의 나라)는 바로 이 점을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다. '핵의 나라'에서 핵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핵의 겨울이 올 수도 있고 핵의 봄도 올 수 있다. 지금 일본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로 핵겨울을 보내고 있다. 핵의 봄은 핵 없는 사회를 향해 나아갈 때 찾아올 것이다.


 /안종주 리스크 커뮤니케이터·언론인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