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스 2012-05-04일자 기사 '"이정희 발언, 경기동부연합의 '만인'에 대한 투쟁 선언"'을 퍼왔습니다.
[분석]조사결과 부정한 이정희 대표 발언의 의미와 파장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가 “합리적이지 않은 조사결과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비례대표 경선 부정선거 조사결과를 부정하며, 지도부 총사퇴 역시 거부했다. 이 대표는 "즉각적인 총사퇴는 옳지 못하다"며 12일 당 중앙위원회 때까지는 대표직을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단, 추후 전당대회에는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의 발언이 끝나자 회의에 참석한 이들이 여기저기서 박수를 쳤다. 심상정 유시민 대표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이 발언 이후, 조준호 대표가 모두발언을 할 때 이정희 대표의 발언에 박수를 쳤던 참관인들은 조 대표에게 소리를 질렀다.
최후의 ‘회생’ 기회 차버리고 강행돌파 선언한 이정희 대표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이 대표의 발언에 대해 “강을 건넜다는 수사적 표현만으로 설명이 한참 부족한 ‘결기’”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 대표의 발언은 최후의 ‘회생’ 기회를 박차버린 “절대 돌아오지 않겠다는 혈서를 쓰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며, 돌아갈 최후의 수단마저 미리 파기한 수준의 언급”이란 지적이다. 현장에 있던 한 기자는 '정면돌파'하자고 하는 당권파의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 ⓒ연합뉴스
그러나 여론의 반응은 다르다. 한 네티즌은 “자신이 대표인 당에서 공식적으로 권한을 위임해 구성한 조사위원회의 결과를 수용하지 못하겠다면 통합진보당의 존재 이유는 무엇이냐”고 물으며, “이 대표는 조사위원회의 정파성을 지적하며 ‘중립성’과 ‘객관성’을 문제 삼았는데, 그렇다면 통진당 내 정파성이 없는 검찰이나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가 관련 사안을 조사하면 받아들일 수 있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이대표의 발언이 일종의 '언어도단'이라는 지적이다.
이 대표의 발언은 그나마 ‘이정희 대표의 진보적 실체’를 믿어왔던 대중의 인식에 그야말로 찬물을 끼얹은 것으로 보인다. 총선 기간 중 통진당에 대한 지지 여론이 다수이던 트위터 등 SNS에서조차 이 대표의 기자회견 이후 ‘집단 멘붕(멘탈붕괴)’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한 트위터리안은 이 대표의 발언에 대해 “악수 끝에 장고에 돌입하는 것”이냐고 조소했고, 또 다른 이는 “이제, 선거 끝났으니 다 꺼져줄래. 우리끼리 잘 살아 볼께의 선언”이라고 평가했다.
심상정, 유시민, 노회찬의 선택은?
이제 관심은 통합진보당의 또 다른 ‘대주주’들에게 쏠린다. 통합진보당은 경기동부연합으로 대변되는 운동사회 내 NL그룹으로 구성된 당권파와 국민참여당 계열 그리고 진보신당 탈당파가 연합한 성격의 정당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권파를 대리하는 이 대표가 ‘경선 부정 조사 결과 수용 불가, 지도부 총사퇴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함에 따라 이제 관심은 나머지 정파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의 문제로 모아진다. 구체적으로는 국민참여당계를 이끌며 경선 부정 파문으로 당권파와 날선 대립을 벌이고 있는 유시민 대표와 진보신당 탈당파로 경기동부연합의 정파적 패악성을 익히 경험한 바 있는 심상정 대표와 노회찬 대변인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의 문제다.
▲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 등 공동대표들이 3일 국회에서 열린 대표단회의에서 인사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유시민 조준호 이정희 심상정 공동대표ⓒ연합뉴스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이 대표의 발언 이후 “일말의 논리적 공방도 더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제2의 민주노동당 분당사태가 올 수 있다”는 우려를 조심스레 하고 있다.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이 대표의 말은 상태를 인식하는 당권파의 수준이 일반 시민의 그것과는 전혀 괴리되어 있음을 보여준다”며 “그들은 어쩜 이번 일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제대로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왜 그들(당권파)과 진보정치를 나아가 진보운동을 함께 하기 어려운지가 드러났다고 본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함께할 수 없다’는 대목이다. 이 주장은 결국 ‘민주적 절차의 정당성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없는 이들과는 사회 개혁은 물론 정치적 진보를 얘기할 순 없다’는 것으로 귀결되는 비판이다. 결국,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에 대해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룹들이 통합진보당을 이탈하는 것 외엔 답이 없단 얘기로 이미, 이 대표가 일말의 퇴로도 상정하지 않은 강행 돌파를 선언한 마당에 역으로 경기동부연합으로 대변되는 당권파를 고립시키는 것 외엔 대책이 없다는 인식이다.
통합진보당 내부의 고민은?
한 통합진보당 관계자 역시 비슷한 고민을 전했다. 그는 “이 대표가 발언한 곳은 전당대회를 제외하면 가장 공식적인 의결권을 갖는 전국 운영위였단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이 대표를 비롯한 경기동부연합은 “다 덤벼도 당내 의사 결정 구조를 어쩔 수는 없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는데, 이 자신감이 이 대표로 하여금 사실상 ‘만인에 대한, 시민에 대한, 여론 전체와 대항하는 경기동부연합의 투쟁 선언을 하게 한 것이 아닐까 싶다”며 “경기동부연합의 문제를 잘 알고 있는 진보신당 탈당파의 경우 비당권파의 연합으로 당을 정상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직접적인 언급은 애써 피했지만, 사실상 당 내부에서의 개혁과 자정은 불가능한 회로에 들어섰단 얘기다. 다른 당직자 역시 “경기동부는 지금 주말이 지나면 다른 이슈가 터질 것이고 그러다보면 여론이 잠잠해질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며 “이들은 이번 사건이 어떤 메시지로 대중에게 각인되고 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조차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경기동부연합의 경우 총선 이전부터 비당권파가 당권을 노릴 것을 대비해 사상 교육과 세미나를 강화하는 등 조직을 다져왔는데, 이런 조직화 과정을 거치며 외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당을 꾸려갈 수 있단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고 판단했다.
이런 진보정당을 왜 해야 하는가, 물어야 할 때
당 안팎의 얘기를 종합하면 결국, 진보당이 ‘통합’의 명분을 가질 수 있게 했던 정파의 대주주들이 역으로 ‘통합’의 가치를 훼손하는 이들을 배척하는 것 외엔 다른 선택의 지점이 없단 얘기로 모아진다. 4일 윤금순 비례 1번 당선인의 사퇴 기자회견에서 보듯 현재 통합진보당 내부의 구조는 경기동부연합을 제외한 다른 NL조직들마저 비주류로 전락했을 만큼 극심한 패권주의가 관철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까닭에 심상정, 유시민, 노회찬이 ‘얼굴 마담’을 하고 있긴 하지만 실제 당의 의사 결정 구조나 방식은 전혀 다르게 경기동부연합 이너써클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 시민단체 출신으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에 전략공천 된 김제남 전 녹색연합 운영위원장(좌)과 박원석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우)ⓒ연합뉴스
그래서 일각에서는 ‘영입파’로 전략공천을 통해 국회의원에 당선된 박원석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과 김제남 전 녹색연합 운영위원장까지 포함해 집단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오고 있다. 누구보다 민주적 절차에 대한 감수성이 높은 시민단체 활동가 출신들이 상황을 관망하는 것은 비겁한 선택이란 지적이다. 이에 대해 한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국회의원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주적 사회로 정치를 끌고 가는 역할”이라며 이를 할 수 없다면 “이런 진보정당을 왜 하고, 무엇을 위해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는 말로 에둘러 침묵하고 있는 ‘영입파’들을 비판하며 ”영입파와 비 당권파가 이번 사태에 대한 민주적, 도덕적 처리가 이뤄지지 않으면 모두 당을 나올 수 있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완 기자 | ssamw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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