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5-09일자 기사 '흔들리는 뉴스타파'를 퍼왔습니다.
미국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유럽에서 잠시나마 일을 해본 유학생. 학업을 마친 후의 미래는 오리무중.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살며 일하고 싶은 열망이 가득한 사람. 세계에서 살고 싶지만, 아직 한국말도 잘 못하는 사람. 트위터: @TellYouMore
MBC 이근행 PD와 YTN 노종면 앵커를 비롯하여 이명박 정부 이후 해직된 언론인이 제작하는 인터넷 뉴스방송 의 유튜브 조회 수가 화제를 끌었던 시작 초기와 비교해 12분의 1수준으로 떨어졌다. 2월 4일 방영된 뉴스타파 2회의 유튜브 조회 수는 59만 2천 건이었지만 지난주 광우병 문제를 다룬 14회의 조회 수는 5만 3천 건에 불과했다. 이는 아이튠스와 다음 TV팟을 비롯해 뉴스타파 유통 채널의 다양화와 리셋 KBS뉴스 및 제대로 뉴스데스크를 비롯한 경쟁 방송의 등장으로 생겨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에게 이번 현상은 의 살인적인 일정과 인력 부족 그리고 제작진의 건강 문제로 비롯된 콘텐츠 약화에 시청자가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읽힌다. 제작진의 고군분투에도 뉴스 소비자들은 리모컨으로 TV 채널을 돌리듯, 조금씩 를 떠나고 있다. 주군으로 모시던 이명박 대통령을 보내고 박근혜 새누리당 위원장을 옹위하는 “국영방송” KBS 9시 뉴스의 시청률이 20%를 유지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인터넷과 팟캐스트 그리고 소셜미디어라는 뉴미디어의 출현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시각과 색깔의 뉴스를 소비할 기회를 부여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은 습관처럼 보던 방송과 신문사의 기사 혹은 선정적인 뉴스만을 소비하며, 언론 소비의 주체자가 되길 거부하고 있다. 삼성 반도체와 애플 팍스콘 공장 노동자의 자살과 근로 환경에 분노하여, 불매 운동을 펼치는 윤리적 소비의 관심이 증가해왔고, 최악을 막기 위해 차악이라도 뽑아야 한다며 투표를 독려하는 지식인과 유명인은 넘쳐나지만,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언론사의 뉴스를 소비해야 한다는 윤리적 언론 소비자의 중요성을 독려하는 목소리는 쉬이 들리지 않는다.
작년 1월 ‘미디어 기업의 사회책임경영’ 보고서를 발간한 이원재 한겨레 경제연구소 소장은 윤리적 언론 소비자를 “사회적으로 책임을 다하지 않는 미디어를 소비하지 않고 잘못된 보도에 항의하고 지적하며 사회적 책임성이 높은 언론을 소비하는 사람”이라고 정의 내렸다. 여기서 언론사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이 소장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 그리고 사회적으로 전파되기 어려운 약자와 소수자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약자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정부와 재벌을 비롯한 권력자의 비리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기능 또한 언론사의 사회적 책임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완전히 객관적인 언론과 기자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진실을 향해 다가서려는 언론인의 양심과 동기 또한 그 사회적 책임을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이 소장은 2008년 광우병 파동 이후 한국 사회에도 윤리적 언론 소비자가 태동했다며, 언론사의 채널을 선택하는 것은 투표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결국, 선택권은 소비자에게 있다는 뜻이다.
이명박 당선인의 방송기획실장을 맡았던 KBS 김인규 사장의 퇴진을 주장하다, 해고당한 KBS 최경영 기자도 이런 점을 지적했다. 지난달, 해고를 당한 직후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KBS 시청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최 기자는 “언론이 공정하지 못하고 비양심적인 언론인이 판치는 상황에서 이를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도 적극적으로 다양한 정보를 취합해 세상을 균형 있게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더해 그는 “인터넷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줬다.”라며 “투표를 하지 않으면 정치가 좋아지지 않듯” 윤리적 언론 소비 없이 “언론은 좋아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한 중앙일보 기자는 필지가 총선 전 중앙일보가 문대성과 김형태 당선자의 비윤리적 행태를 주목해 보도하지 않았다는 점을 비판하자 “조중동 탓만 하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현재 벌어지는 한국 언론의 모든 작태를 소비자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한 태도이다. 아이폰의 탁월한 기능과 디자인에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듯, 방송사의 화려한 쇼와 숙련된 기술로 펼치는 기계적 객관주의 보도에 언론 소비자들이 속아 넘어갈 수도 있다. 작년 11월 해고를 당했다가 최근 복직된 이호진 부산일보 기자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인 공정성과 공공성을 확보하는 방안에 대해 “언론사 내부 구성원의 치열한 반성과 투쟁, 국가 권력의 언론 독립 의지, 자본 권력의 언론 장악을 경제할 수 있는 법제적 장치, 시민사회의 감시와 견제가 모두 제 기능을 수행해야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말도 어렵지만, 이를 현실적으로 실천하는 것은 황석영 작가의 표현을 빌려 독립운동처럼 힘겨워 보인다.
그럼에도 최종적 선택권은 소비자가 쥐고 있기에,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좋은 언론사를 위한 변화의 근본점에는 윤리적 언론 소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윤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는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도 결국 윤리적 소비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2008년 낙하산 사장 임명에 반대하다 YTN에서 해고 당한지 3년이 지난 노종면 앵커는 지난 세월 “간혹 힘들 떄가 없지 않았지만” 그 힘듦의 순간 대부분은 “지금 이 순간 나는 언론인으로서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하나라는 물음에 답을 찾지 못했을 떄다.”라고 말했다.
이젠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고 그 답을 구하는 것이, 언론인에게만 머물러선 안된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알렉시스 토크빌은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라고 말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언론을 가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이젠 언론 소비자도 자신의 역할과 윤리적 언론 소비를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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