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한겨레신문 hook의 기사 '안철수 바람에서 읽어야할 사회의 요구'를 퍼왔습니다.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Stony Brook) 정치학 박사.
세상이 온통 안철수 교수 이야기다. 그 등장 자체가 갑작스러웠던 만큼, 안 교수의 등장으로 10월 서울시장 재·보선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각 종 여론조사 결과가 안철수 교수의 압도적 지지로 나타나는 것은 심상치가 않다. 아직 선거까지 50여일 남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정치에 전혀 경험이 없는 초짜 신인이, 아직 출마선언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존의 여·야 후보들을 지지율에서 두 배 가까이 누른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서울시장 선거를 넘어서 내년 총선과 대선 판도까지 완전히 바꾸어 놓을 것이란 전망도 속출하고 있다. 언론에서 이름 붙인 것처럼 가히 ‘안철수 쓰나미’라 할 만하다.
기존 정치권도 초반의 당황에서 벗어나, 표 셈법에 분주하다. 한나라당은 ‘한나라당에는 가지 않는다’는 안철수 교수의 잇단 인터뷰를 계기로 초반 영입론을 접고, 적극적인 공세에 나섰다. 민주당은 ‘야권 분열에 대한 걱정’에서 다소 안도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아직도 정치권은 자당의 표를 갉아 먹는 안철수만 보일뿐, 안철수의 등장 뒤에 숨겨진 민심의 흐름은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정치는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다.’ 안철수 등장을 비판하는 제 1 논거라 한다.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이 적실성을 가지려면, 그간 ‘혼자 하는 게 아니었던’ 정당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는지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표면상으로야 한나라당과 민주당 ( 및 야 4당)의 양강 구도가 자리를 잡은 듯 보인다. 하지만,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가?
지난 한 달 8.24 주민투표를 치룬 한나라당은 ‘오세훈 당’과 다르지 않았다. 누가 보아도 ‘오세훈의, 오세훈에 의한, 오세훈을 위한’ 투표임이 명확했던 서울시 정책투표에 원내 173석의 거대정당이 중심을 잃고 떠밀려 갔다. 당 내에서 ‘주민투표 반대’의 목소리가 있었음에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란 식으로 당도 함께 주민투표 판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당대표의 표현대로 ‘사실상 승리한 투표(?)’라고 하면서도, 곧 이은 서울시장 재보선에선 ‘무상급식에 반대하지 않는’, 적어도 ‘무상급식 투표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후보를 공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어떻게 후보를 공천할지 기본 원칙도 세워놓지 못했다. 당 대표가 말한 것처럼 ‘선거가 인물보다는 구도가 우선’일지는 모르지만, 선거를 50일 남겨두고, 어떻게 하면 ‘표를 더 받을 수 있을지’ 간을 보고 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수도 있다.
민주당 및 야권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오세훈 시장 사퇴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서울시장 후보 출마 선언이 줄을 잇는다. 그리고, 당 내 주류와 비주류 간에 세력다툼이 시작되었다. 서울시장 재보선의 큰 전략은 세워놓았다. 야권 대통합. 그런데, 이 메뉴는 작년 지방선거 때도 들었고, 4.27 재보선에서도 들었던, 아니 야권이 정권을 뺏긴 이후부터 4년 동안 고장난 확성기에서 반복해서 듣고 또 들었던 레파토리다. 왜 선거통합이 이루어져야 하는지 , 선거통합을 통해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지 야권은 반(反)이명박 전선에서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했다. 야권 대통합을 부르짖는 큰 형님 민주당은 집안 단속도 제대로 못하고, 어떻게 선출을 할 지도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서울시장직이 ‘정치가’가 아닌 ‘행정가’란 인식은 순진한 사고다. 역시 안철수 출마의 순진함을 비판하는 제2 명제다. 서울시장은 행정가로서의 면모도 있지만, 각 종 이해관계와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 정치적 자리다. 그리고, 시민의 투표라는 정치적 과정을 통해서 선출된 시장은 태생 부터 정치적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안철수의 주장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서울시장이 지나치게 정치화되었다는 것이다. 서울시 내 초등학교·중학교의 점심 급식을 서울시 예산으로 지원할 것인가를 놓고 ‘과잉 복지’의 목소리가 터지고, 대한민국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내몰린 듯한 망국론(망국론)이 튀어나온다. 주민의 정책에 대한 목소리를 반영하고, 이를 대의제를 보완하고자 하는 주민투표에 시장은 대통령 선거 불출마를 천명하고, 약발이 약해지니 ‘투표가 33.3%’를 넘지 않으면 사퇴하겠다고 으름장이다. 그리고 이미 무너진 우면산 산사태는 놔두고, ‘복지 망국의 쓰나미’를 막지 못하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도’ 후회는 없다고 다짐한다. 다시 생각해 보자. ‘서울지역 초등학생·중학생 점심급식의 지원 범위에 대한 결정과 망국론과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
안철수의 등장과 부상은 기존 정치권의 무능과 정책하나하나에도 물든 지나친 정치화의 반작용에 기인한다고 본다.
인간 안철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대중의 눈에 비친 안철수의 이미지에는 기존의 정치권이 결여한 세 가지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먼저 청장년층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그들의 고민을 듣고, 그들의 시각에서 생각을 나누는 ‘소통’의 이미지이다. 지난 4년간의 청춘콘서트를 통해서 안철수-박경철은 청년들을 찾아다니며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안철수가 ‘국민멘토’라고 불리며, 수많은 팬 층을 확보하고 있는 데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기 보다는, 청년들이 듣고자 하는, 필요로 하는, 위로받고자하는 말들을 통해 ‘벗’으로서 다가가려 했기 때문이 아닐까? 적어도 현 정치권에서는 청년 실업대책에 대해 수많은 말들을 내어놓지만, 청년들에 다가가서 이야기하고 그 들의 고민을 듣고자 한 정치인은 거의 없었다.
두 번째, 대중은 안철수의 이미지에서 신실(integrity)를 찾고 있다. 현 정권은 ‘실용’에서 ‘친서민’으로, ‘공정한 사회’에서 금번 8.15를 지나며 ‘공생’으로 일 년 단위로 언어공해를 남발 했지만, 실질적으로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도 그 효과도 제대로 이루어 진 것은 없다. 빈부의 격차는 더욱 더 커지고, 가지지 못한 이들의 경제적·사회적 기회 또한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100만부가 넘게 팔리며 수능생들까지 논술필독서로 읽히고 있지만, 알면 알수록 정의롭지 못한 비뚤어진 사회 구조에 대한 절망과 자괴감만 늘어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지로서의 안철수는 의사에서 CEO로 그리고 교수로 도전하고 변화하여 일정부분의 (개인적) 성취를 이루어 냄으로서 단순한 정치적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를 담보해 낼 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신뢰를 시민들에게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서울행정이, 그리고 정치가 ‘정치신예’가 갑자기 뛰어들 정도 만만하지 않을 거라는,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거라는 논평에는? 정치 신인, 때묻지 않는 정치신인이 변화와 신실함, 자기 성공신화를 걸고 중앙정계에 태풍으로 등장한 사례는 우리만 경험하는 건 아니란 점을 강조한다. 3대째 중앙정치에 잔뼈가 굵은 부시와 체니·럼스펠드 등 공직경력만 30년이 넘는 이들이 벌여놓은 금융위기·이라크 전쟁을 청소하기 위해 미국인이 선택한 사람은 중앙정치 경력 갓 3년이 넘지 않는 40대 중반의 흑인 변호사였다. 안철수와 박원순, 두 사람의 등장이 정치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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