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세 선거권’은 세계적으로 볼 때 뒤늦은 주장이다. 실제 미국, 독일 등 해외에서 ‘18세’는 선거를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 시장이나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할 수 있는 나이기 때문이다.
고교 3년생이었던 마이클 세션즈(18)는 지난 2005년 11월 미국 미시간주 힐스데일 카운티에서 시장으로 당선됐다. 당시 세션즈는 현역 시장 더글러스 잉글스를 누르고 160년 된 이 도시의 시장이 됐다.
세션즈는 취임을 앞두고 “오전 7시20분부터 정오까지는 학교에 가서 수업을 받고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시장직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하며 또한번 주목받았다. 고교생이 ‘시장’이 되는 꿈같은 일이 현실이라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독일에서는 지난 2002년 9월 안나 뤼어만이 만 19세 나이로 국회의원으로 선출됐다. 15세 때 녹색당에 가입하면서 정치를 시작한 안나 뤼어만은 국회의원으로 선출 직후 정치인 연금 문제를 제기하는 등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쳤다.
이 같은 활동에 힘입어 지난 2005년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재선에 성공했다. 안나 뤼어만은 재선 뒤 한국을 방문, “청소년도 그 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에 정치참여는 당연하다”며 “청소년들이 자신의 인권과 권리를 외치기 위해서는 직접 정치에 참여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 187개국 중 144개국에서 18세 선거권 보장
마이클 세션즈, 안나 뤼어만의 사례처럼 세계 각국에서는 청소년 참정권을 충분히 보장하고 있다. 참정권 보장의 지표로 볼 수 있는 것은 선거권 연령이다.
현재 미국 등 세계 각 나라에서는 대부분 만 18세부터 선거권을 보장하고 있다. 중앙선관위가 2008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세계 187개국 중 미국, 캐나다, 프랑스, 호주 등을 비롯한 144개국이 만 18세 이상 선거권을 인정했다. 아시아에서도 홍콩, 인도, 태국 등 18개 국가에서도 18세부터 선거권을 갖고 있다.
캐나다, 호주, 스페인, 독일 등은 선거권만이 아니라 피선거권까지도 18세부터 부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와 정치제도가 비슷한 일본에서도 현재 정부 주도로 선거연령을 만18세로 낮추는 선거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선거권은 세계 각국의 추세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1948년 헌법 제정, 정부수립과 함께 근대적 선거제도를 도입하면서 21세 이상에게만 보통 선거권을 보장했다. 1950년에 선거권 연령을 20살로 낮춘 이후 54년이 지나도록 변화가 없다가 지난 2005년 19세로 한 살 낮췄다. ‘선거권이 청소년 의식 성장과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은 지 한참 지나서였다. 반면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의 나라는 60년대 말, 70년대 초에 21세에서 바로 18세로 낮췄다.
정치권.시민사회계 무관심 속 더딘 민주주의
우리나라에서 ‘18세 선거권’이 보장되지 못하는 것은 정치권의 무관심과 함께 ‘18세 선거권 공론화’가 선거 전후에만 반짝일 뿐 지속적인 여론을 형성하지 못한 데 있다.
18대 국회에서도 선거권 기준 연령 하향문제와 관련해 민주통합당 최영희 의원의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과 통합진보당 홍희덕 의원이 소개한 입법 청원안 등 2개의 의안이 발의됐으나 선거구 조정 등 다른 사안에 밀려 논의조차 못했다. 2000년 노컷운동, 2002년 미선이, 효순이 촛불 시위 이후 시민사회와 청소년계 사이에서 ‘선거권을 18세로 낮추자’는 목소리는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총선이나 대선이 지나면 사그라졌다.
선관위 조기호 주무관은 “다른 나라에 비하면 선거 연령이 높다는 점에서 개선이 필요한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현재 정치권이나 시민사회단체에서 18세 선거권을 요구하는 곳이 없고 SNS 정치참여처럼 쟁점도 없는 상태에서 선관위가 먼저 나서서 18세 선거권을 공론화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정혜규 기자jhk@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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