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7일 월요일

'언론 주물럭' 노린 사조직 정권의 자업자득


이글은 프레시안 2012-02-27일자 기사 ''언론 주물럭' 노린 사조직 정권의 자업자득'을 퍼왔습니다.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 종편은 좀비 TV 되는가

이런 저런 '인증샷'이 수도 없이 생겨나더니, 급기야 특정 TV를 '확실히 시청하고 있음'을 증거하는 '종편채널 인증샷'까지 등장했다. 해당 종편채널을 시청한 사람이 인증샷을 그 회사에 보내면, 추첨해서 경품을 주는 전국단위의 '방방곡곡 시청 인증샷 찍기' 이벤트까지 벌어졌다. 일부 종편사에서 그랬다.

해당회사와 관계사 임직원들에게는, 그 인증샷의 개수를 의무적으로 할당하는 별난 캠페인이 병행되기도 했다. 임직원들은 책임량을 완수하기 위해, 친인척들에게까지 인증샷을 부담시키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름이 아니라 종편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신문의 부수늘리기 캠페인에서는, 해당독자가 적어도 일정기간 이상 신문을 구독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TV의 인증샷은, 사진을 찍은 사람이 계속해서 해당 TV를 시청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한순간의 증거일 뿐이다. 시청하고 있는 사진 한 컷 잠깐 찍고, 채널 다른 데로 돌려버리면 그만인 것을, 종편의 시청률이 얼마나 바닥권이면 그렇게까지 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야말로 말을 잠시 강가에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내키지 않는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고군분투하는 모습들이 애처롭고 눈물겹기까지 한 이야기다.

인증샷 보낸 사람이 많아서였는지, 이벤트를 벌인 종편사는 당첨자 발표를 연기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시청률 높아졌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언론 멱살 움켜쥐고 '사설(私設)정치' 편하게 하기 위해, MB정권이 최시중씨를 앞세워 판을 짜 내놓은 종편채널들의 사정이 요즘 이 지경에 이르렀다. 무엇보다도 판을 벌인 동기가 너무나 불순했기 때문이라고들 거듭 말한다.

시청률이 낮으면 광고가 붙지 않는다. 광고 수입이 변변치 않으면 프로그램 제작에 돈을 들이지 않는다. 당장 제품의 품질에 문제가 생긴다. 곧바로 또 시청률 저하로 이어지고, 광고 사정은 더 나빠진다. 종편들은 바야흐로 이런 악순환의 궤도에 본격적으로 진입한 것처럼 보인다. 자립 할 때까지 굳건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북돋음을 줄 것 같아, 철썩 같이 믿었던 최시중 씨도 지금은 떠나고 없다.



▲ 측근 비리 연루 의혹 등으로 물러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뉴시스

종편들, 참으로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필자는 작년 11월6일자  칼럼에서 종편들에게 '직접광고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강도면허'를 내준 것이나 다름없다며, 최시중 씨를 꾸짖은 적이 있다. 항거할 수 없는 상태의 기업들에게, 광고를 하라고 강요하는 사태를 우려한 것이었다. 국회의원이 바로 그런 항거불능 상태의 공기업에게, 특정 종편TV에 거액을 협찬광고 하도록 '권유'한 사태가 말썽이 되어 보도되었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이 그 위원회 산하 공기업인 한전과 6개 발전회사들에게, 조선일보 종편인 'TV조선' 드라마 '한반도'에 3억4000만 원을 협찬토록 했다는 게 그 이야기다. 권의원은 "이 드라마가 에너지 문제를 다루는 만큼, 발전회사들이 인지도 개선차원에서 협찬을 검토해 달라"고 권유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아마도 조선일보는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 말할 것이다. 권 의원도 조선일보와는 아무 상관없이 순수한 자발적 판단으로 '권유만'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랬으리라 믿는 사람 거의 없다. 심지어 마피아 두목이 부하를 시켜 특정기업에 찾아가 수금을 해 오도록 한 것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 일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더구나 한전은 천문학적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공기업으로, 어디에건 자발적으로 거액을 협찬 할 형편이 못 되는 상태였다. 하기야 설사 그렇더라도, 공기업들 가운데 '국정감사'라는 칼자루를 쥐고 있는 해당 상임위원회 소속 의원의 '권유'를 "못 하겠다"고 거절 할 수 있는 회사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국정감사도 무서웠고 조선일보도 무서웠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도저히 항거 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종편의 시청률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시청률이 바닥권을 헤매면 광고가 붙지 않는다. 그래서 '신문의 힘'을 동원해 '직접광고 영업'을 하고, 동원할 수 있는 다른 힘을 빌려서라도 광고는 끌어와야 했을 것이다. 물론 다 무리수다. 그렇다고 절차상의 정당성 여부를 따질 계제도 아니다. 사정은 그 만큼 절박하다.

어찌됐건 3억4000만 원의 협찬금은 한전 쪽이 전혀 원치 않는 추가적자로 얹혀져,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왔다.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TV조선'의 '한반도'에 강제로 협찬한 꼴이 되었다.

한전 측이 종편 시청률 때문에 협찬광고 덤터기를 뒤집어쓴 경우라면, 같은 이유로 덤터기보다 더한 날벼락을 맞고 있는 사람들이 또 있다. 종편사들의 프로그램 외주 제작사들이다. 계약까지 맺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공급하던 외주 제작사들이 최근 종편 본사로부터 잇따라 일방적인 제작 중지 통보를 받고 있다. 수많은 외주제작사 PD들이 일감이 없어 쫓겨나는 중이다.

바닥권 시청률로 광고 수입이 엉망의 상태가 되자, 대부분의 종편사들이 '원가절감'의 기치를 높이 들어 올렸기 때문이다. 외주제작프로그램을 방송하던 시간은 종편사의 자체 제작물이나 다른 프로의 재방송으로 메워지고 있다고 했다. 따라서 프로그램의 품질은 날로 하향곡선을 그려가고 있다.

당초 종편의 출범은 외주 제작사들에게 꿈이요 희망이었다. 더구나 준비가 덜 된 상태의 출범이어서, 종편사들은 프로그램의 상당부분을 외주제작에 의존 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 많은 '일감'들이 외주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눈치 빠른 외주제작사들은 종편 출범을 앞두고, 유능한 실무인재들을 은밀히 끌어 모으기도 했다. 종편사들도 그랬다.

특히 JTBC의 경우는 재빨리 '중앙과 함께 도전하는 파트너' 모집공고까지 내, 우수제작사 3곳을 선발해 놓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그렇게 JTBC에 뽑힌 3개 제작사를 부러워한 나머지, 중앙의 '중'과 도전의 '도', 파트너의 '파'라는 글자를 따 '중도파'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랬다.

A사는 '중도파'는 아닐지라도 원래 명성이 있는 외주제작사였다. 종편 출범 4개월 전인 작년 8월부터 일찌감치 한 종편사와 손을 맞추기 시작한 것도 그 회사의 일 솜씨 때문이었다. 일주일에 5차례 방송하는, 평일 저녁 6시대의 한 시간짜리 생활정보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9월 말이었다. 기를 쓰고 30여명의 PD와 작가를 모아 제작진을 구성했다. 그렇게 12월 방송을 시작했으나 2주 만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일방적인 제작중지 통보였다. 사전예고도 설명도 없었다. 예정됐던 방송시간대에 '재방송'이 편성돼 있었다. '비용절감'이 이유였을 것이라 했다. 계약 같은 건 중요치 않았다. 언제 또 일감이 나와 일을 맡게 될지 모르는데, '말썽'을 일으켜 '블랙리스트'에 오를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30여명의 PD와 작가들 내 보냈다. 뿔뿔이 흩어졌다.

B사도 또 다른 종편사와 프로그램 공급계약을 맺고 일을 시작했으나 1월 중순 제작중지 통보를 받았다. 전문인력 15명을 내 보냈다. 이런 식으로 외주제작이 중단된 프로그램이 30개 가까이 될 것이라고 한 관계자는 추정한다. 외주제작사들의 모임인 독립제작사 협회 차원에서 피해사례를 조사하고 대책을 강구한다 하나, 제작사들은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종편사들과 맞설 힘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라 했다.

운 좋게 살아남은 프로들도 찬밥 신세다. 구두로 계약을 하고 제작을 시작했더라도 종편사들이 일방적으로 제작비를 깎는 관행이 굳어져 가고 있다고 했다. 프로그램은 다 같은 수준인데 지상파 TV제작비의 80%에 불과한 종편의 외주제작비도 또 나쁜 빌미가 되고 있다. 일부 지상파 TV에서 종편 수준에 맞춰 외주제작비를 삭감키로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래저래 외주제작사들은 종편 때문에 죽을 지경이다.

최시중씨는 '판'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종편의 출범은 방송시장의 파이를 키워 수많은일자리가 창출 될 것이라고 큰 소리 쳤다. 호언장담은 거짓말이 되었다. 그리 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풍토는 더 나빠졌다. 희망을 노래하던 외주제작사들은 지금 절망을 말한다.

종편을 너무나, 너무나도 많이 허가해 줬다고들 말한다. 많아도 두 개를 넘기지 말아야 했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다들 해악만 끼치는 좀비TV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조중동과 이 정권도 여기에 이를 정도로 상태가 나쁘리라고는 예상치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애당초 이 정권이 방송 발전을 생각한 게 아니라, 우선 사조직에 의한 사설정치의 편의를 위해 언론을 부도덕하게 핸들링 하고자 한 게 문제였다. 따라서 지금의 사태는 자업자득으로 보는 게 옳다. 심각한 부작용들 대부분이 바로 종편허가를 통한 언론 장악이라는 불순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거듭거듭 새겨둘 필요가 있다.



/오홍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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