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7일 월요일

[사설]임대아파트는 ‘주홍글씨’가 아니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2-02-26일자 사설 '[사설]임대아파트는 ‘주홍글씨’가 아니다'를 퍼왔습니다.
GS건설이 서울 마포구에 짓고 있는 고급 주상복합아파트 ‘메세나폴리스’가 임대 입주민 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임대아파트를 특정 1개 동의 저층에 몰아 배치하고 별도 출입구와 엘리베이터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의 이름은 문화예술 지원활동을 의미하는 ‘메세나’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를 뜻하는 ‘폴리스’를 합성해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품격있는 이름은 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백분리정책을 연상케 하는 행태와 어울리지 않는다.

이 아파트 단지는 관련 법과 서울시 조례에 따라 용적률의 17% 이상을 임대주택으로 지어야 하는 도시환경정비사업장에 해당한다. 임대주택 의무건설 규정은 2005년 주택정책에 ‘소셜믹스(social mix)’ 원칙을 적용하면서 시행됐다. 소셜믹스란, 도시에서 여러 계층을 혼합 배치해 사회통합을 도모하는 정책을 일컫는다. 영국 런던은 저소득층 주거비 보조를 통해 소셜믹스를 실현한 대표적 도시로 꼽힌다. 국내에서도 1980년대 후반 공공임대주택을 일반분양 아파트와 구분해 건설하면서 저소득층이 다른 계층과 단절되는 현상이 나타나자 소셜믹스 정책을 도입했다.

문제는 건설사들이 일반분양 입주민들의 반발을 우려해 임대주택을 별도 공간이나 동선으로 분리시킨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에도 서울 강남 개포지구에서 임대아파트를 단지 한쪽 구석에 배치하는 재건축안을 서울시에 냈다가 재건축 정비구역 지정이 보류된 바 있다. 분양·임대 차별 논란은 입주 뒤에도 계속되는 경우가 많다. 일반분양 아파트 주민들이 임대아파트와의 사이에 울타리를 치는가 하면, 자치권도 입주자대표회의(분양)·임차인대표회의(임대) 식으로 분리 운영할 정도이다.

일부에서는 소셜믹스 정책이 차별만 노골화한다며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우리는 이에 동의할 수 없다. 한국 사회에서 특정 지역에 산다는 것은 곧바로 계급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임대주택을 일반주택과 분리해 짓던 과거로 돌아갈 경우, 임대주택 단지는 불량주거지로 낙인찍힐 수밖에 없다. 따라서 소셜믹스 정책을 재검토하는 대신,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해 정책이 실효성을 거둘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 옳다. 재개발·재건축 시 임대주택 입주민이 일반분양 입주민에 비해 차별받지 않도록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과 시·도 조례 등에 명확한 규정을 넣을 필요가 있다. 시민 의식도 달라져야 한다. 소셜믹스는 가난한 이에게만 유리한 정책이 아니다. 계층갈등이 적은 사회,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는 모두에게 이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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