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5일 토요일

[사설] 박근혜, 정수장학회 ‘그림자 지배’ 계속할 텐가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2-24일자 사설 '[사설] 박근혜, 정수장학회 ‘그림자 지배’ 계속할 텐가'를 퍼왔습니다.
법원이 어제 정수장학회의 원 설립자 가족이 정수장학회를 상대로 낸 주식반환청구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형식적으로 ‘반환 의무가 없다’는 정수장학회 쪽의 손을 들어준 판결이다. 언뜻 보아 정수장학회에 대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입장도 더욱 강화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판결 내용을 뜯어보면, 정수장학회와 박 위원장 쪽의 처지가 오히려 궁색해졌다고 할 수 있다. 재판부는 강박에 의한 주식 증여 의사 표시는 인정되지만 시효가 지난 점을 기각의 사유로 제시했다. 즉, 강제로 재산을 빼앗아 간 것은 맞다는 얘기다. 법률 책임이 소멸했을 뿐 정치적 도덕적 책임은 인정한 것이다.
실제, 정수장학회가 사실상 ‘장물’이라는 점은 이번 판결 전에도 몇 차례 확인된 바 있다.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는 2005년 피해자 유족과 관련자, 자료 등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를 통해 5·16 군부세력이 정수장학회를 사실상 강탈했다고 결론지었다. 이후 대통령 직속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도 같은 결론을 내리고 국가배상과 재산의 원상회복을 촉구했다. 문제는 이런 결정을 정수장학회 쪽이 법적 구속력이 없다며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1995년부터 10년간 이 장학회의 이사장을 맡았던 박 위원장은 이 문제가 나올 때마다 ‘이사장을 그만둬서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정수장학회에 책임을 떠넘기는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이를 받아 그제 정수장학회가 보도자료를 내어 “박 위원장은 현재 아무 관련이 없는데도 선거를 앞두고 정치공세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치 둘이 핑퐁게임을 하며 박근혜 책임론을 피해 가려는 모습이다.
법의 세계에선 시효가 만료되면 장물이라도 되돌려주지 않아도 되고, 범인이 밝혀져도 처벌할 수 없다. 하지만 상식의 세계에선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장물은 장물이고 강도는 강도다.
박 위원장은 이쯤 결단을 내려야 한다. 법률이라는 방패에 숨어 책임론을 요리조리 피할 것이 아니라, 상식과 도덕에 바탕해 아버지가 드리워놓은 그림자를 걷어내야 한다.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인으로서 법률론으로 속좁게 대응할 게 아니라 통크게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박 위원장을 하늘처럼 생각하는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의 언행을 보면, 박 위원장의 결단 없이는 언론·시민단체의 요구대로 정수장학회를 더욱 공익적인 재단으로 탈바꿈시키는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 박 위원장은 측근을 통한 ‘그림자 지배’를 중단함으로써 결단의 첫걸음을 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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