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1일 화요일

언론의 존재 이유를 묻고 있는 '지곤조기 파문'


이글은 미디어스 2012-02-20일자 기사 '언론의 존재 이유를 묻고 있는 '지곤조기 파문''를 퍼왔습니다.
임기말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문제

임기말이다. 여러 일들이 ‘혼재’되어 흘러가고 있다. 굉장히 중요한 일들이 임기말이란 이유로 간과되기도 하고, 별다른 의미가 없는 일들은 같은 이유로 굉장히 부각되기도 한다. 어제, 오늘 있었던 일들을 보자. 박희태 국회의장이 동 봉투 파문과 관련해 방문조사를 받았다. 현직 국회의장에 대한 예우 차원이라고 한다. 전직 대통령을 조사할 때는 발견되지 않던 예우다. 불분명한 혐의를 두고, 김해에 있는 대통령을 검찰청으로 소환하느라 부산을 떨었던 검찰은 국회의장에 대해선 날짜도 일요일을 택해서 조용히 방문 조사했다. 예우는 비단, 조사 방법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박 의장은 대부분의 혐의에 모르쇠로 일관했고, 검찰은 방문 조사 하루 만에 ‘불구속 기소’로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이런 걸 요샛말로 ‘코스프레’라고 한다. 코스프레는 ‘만화, 영화, 게임 등에 나오는 주인공과 똑같이 분장하여 따라하는 분장놀이’를 말한다. 일종의 역할 게임이다. 명색이 수사권을 독점하고 있는 집단인데, 그냥 지나칠 순 없고 검찰은 휴일에 국회의장을 조사하는 시늉을 낸  셈이다. 이 정권 실세에 대한 조사에서 검찰은 대체로 조사 코스프레를 해왔다.
참여정부 때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가만있지 않았을 언론들은 이번엔 대체로 조용하다. 조선과 중앙은 박 의장 방문 조사를 1면에조차 싣지 않았다. 보수 언론만 그런 건 아니다. 한겨레도 박 의장 방문 조사를 1면 박스기사로 다뤘을 뿐이다. 너무나 결정적인 문제이지만, 너무나 많은 악재가 도처에 널려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무감해지고 있다. 더군다나 지금은 임기말이 아닌가. 언론들은 내심 ‘이 정권은 으레 그러려니’, ‘이제와 이 정부의 검찰이 국회의장을 뭐 어찌 하겠는가’라는 체념을 깔고 있다.
임기말, 체념의 시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은 계속된다. 얼마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정무수석을 새로 임명한 대통령은 20일 유인촌 전 문화부장관을 예술의전당 이사장에 임명했다. 역시 이 같은 일이 참여정부 때 일어났다면 언론의 짜증은 극에 달했을 것이다. ‘임기말까지 오기를 부리는 것이냐’, ‘해도 해도 너무한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과 악담이 지면에 차고 넘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상황은 조용하다.
박물관에서 튀어 나온 것 같은 이력을 갖고 있는 72세의 이계철 방통위원장 내정자에 대해 가타부타 말을 보태고 있는 언론은 거의 없다. 이달곤 내정자의 경우 아예 관심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두 후보자의 이력과 인연은 어떤 것들이고, 업무를 수행하기에 적절한지에 대해 언론은 사실상 검증을 포기한 분위기다. 참여정부 시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청와대의 인사를 ‘코드 인사’, ‘회전문 인사’라고 쏘아댔던 조중동 역시 이 정부의 인사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 20일자 경향신문 2면.

이 와중에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초 일본 총리를 만나 자리에서 독도의 일본 땅 표기 문제에 대해 “지금은 곤란하니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는 요미우리신문의 보도가 사실이라는 외교문서가 발견됐다. 경향신문이 19일 입수한 위키리크스의 미국 외교전문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당시 후쿠다 일본 총리에게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고, 이후 일본 정부가 기다리지 않고 교과서를 발표해 한국 정부 관료들이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로써 ‘지곤조기 파문’이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이 사실에 대해 오늘 밤 뉴스는, 내일 자 일간지들은 따져 물을 수 있을까? 여야가 벌이고 있는 공천 경쟁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미래권력’들이 어떻게 구성될지에 관해선 지역별로 촉수를 드리우고 있는 언론은 그러나 당대의 모순과 부정에 대해선 거의 함구하고 있는 중이다.
‘지곤조기 파문’이 사실이라면, 이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대통령이 사과를 하고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하는 사안이다. 특히, 보수언론 입장에선 이 정부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고쳐 물어야 할 문제다. 대통령이 자국의 영토를 수호할 의지가 없다면 그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 더욱이 상황의 유불리에 따라서 어떤 문제라도 어떻게든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수준의 통치라면 그것은 어떤 체제라고 불러야 하는 것일까? 아시다시피 ‘지곤조기 파문’의 무마를 위해 대법원을 포함한 사회의 핵심 영역들이 동원된 바 있다. 이명박 정부 4년을 경유하며 어쩜 우리 사회는 시스템 전체의 건전함을 다시 고민해야 할 정도로 썩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추악한 거짓말이었다면 말이다.
이 거짓말의 진위를 가려야 하는 것이 이제 언론의 책임이 됐다. 임기말은 이유가 될 수 없고, 다른 일들과 섞어서 ‘그러려니’ 판단할 성질의 문제도 아니다. 언론의 존재 이유, 그 자체를 묻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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