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8일 화요일

[안경환 칼럼] 박정희 기념관과 정수장학회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2-27일자 기사 '[안경환 칼럼] 박정희 기념관과 정수장학회'를 퍼왔습니다.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주, 드디어 박정희 대통령의 기념관이 개관했다. 늦었지만 반갑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시대와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아무리 큰 과오가 있어도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기념관의 건립에 김대중 대통령이 디딤돌을 놓은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포용하여 역사적 화해를 이룬 셈이다. 김대중에게 박정희는 치열한 라이벌이자 자신의 생명마저 위협했던 정적이었다. 두 분의 관계가 어찌됐든 누가 뭐래도 한국 현대사의 양대 거목이다.
대한민국은 성공한 나라다. 기적처럼 동시성취한 근대화와 민주화의 상징이 바로 이들 두 지도자이다. 공이 클수록 비례하여 과도 따르기 마련이다. 큰 공은 기리고 작은 과는 덮어 주는 것이 성공한 나라 국민이 취할 자세다. 그러나 정작 불의로운 사건으로 직접 피해를 본 당자에게는 천추의 한으로 남는다. 그러기에 늦게나마 감추어졌던 진실을 밝히고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의식이 필요한 것이다.
와 정수장학회 문제가 다시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해묵은 역사적 부채다. 해방 직후에 부산을 무대로 성공한 실업가, 김지태씨는 언론에 진출한다. 와 을 인수한다. 이어서 부일장학회를 만들어 부산·경남지역의 꿈나무를 양성한다. 1961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부는 부인의 보석밀수 사건을 빌미로 김씨를 구속한다. 치욕적인 가혹행위 끝에 김씨는 막대한 장학회의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는 각서를 쓰고 석방된다. 군사정부의 중심세력이 곧바로 재산을 헌납받은 ‘국가’ 행세를 한다. ‘부일장학회’는 ‘5·16장학회’가 되고 1982년, 다시 ‘정수장학회’로 개명한다.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연이은 개명의 배경에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었는지 굳이 부연할 필요가 없다. 누구나 알고 있는, 그야말로 ‘공지의 사실’이다.
정수장학회는 현재 문화방송 지분의 30%, 부산일보 지분의 100%를 보유하고 있다. 2005년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와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유족의 호소를 경청했다. 김씨가 자유의사에 반하여 사유재산을 강탈당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주에는 서울중앙지법도 김씨의 재산 헌납이 폭압에 의해 강요된 것으로 위법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강탈한 재산을 반환할 의무는 없다고 판결했다. 일반인의 눈에 비친 법은 기껏해야 반쪽짜리 정의일 뿐이다. 그러나 최소한 자발적인 기부가 아니라 강탈당했다는 진실만은 공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이제 국민은 박근혜씨의 반응에 주목한다. 남의 재산을 국가의 이름으로 강탈했던 아버지다. 아버지처럼 국가를 이끌 대통령이 되겠다며 나선 딸이다. 그런데 자신은 이 문제는 오불관언이라고 한다. 그저 법의 문제로 다루라며 차갑게 내뱉는다. 2005년에 이미 부모의 이름자를 딴 장학회에서 손을 뗐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연좌제가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 누구도 그를 ‘독재자의 딸’로 폄하해서도 안 된다. 마찬가지로 찬란한 근대화의 업적을 이룬 위인의 후광을 무조건 상속시켜서도 안 된다. 오로지 박씨 스스로 만들고 이룬 업적을 통해서만 평가해야 한다. 국민은 박씨에게 아버지의 죄과를 상속받으라고 주문하지 않는다. 다만 위대한 아버지의 영광을 만끽하려면 그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도 성의 있는 관심을 보여줄 것을 기대할 뿐이다.
부산일보와 정수장학회 문제, 대통령을 꿈꾸는 박근혜씨가 반드시 털고 가야 할 일이다. 아버지의 범죄 사실을 알았든 몰랐든 불과 7년 전까지도 ‘장물’을 관리하던 장물아비가 아니었던가? 많은 국민이 박근혜씨의 성공을 빈다. 그러기에 반쪽짜리 정의에 불과한 법에 기대는 옹졸함에 실망한다. 국민은 그에게서 편협한 법률가가 아니라, 넓고 큰 정치인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영욕의 과거사를 함께 품고 나라의 장래를 이끌, 큰 지도자의 자질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래야만 그에게 표를 내주지 않을까?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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