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8일 화요일

김대중 D, 노무현 C, 전두환 A…이것은?


이글은 프레시안 2012-02-28일자 기사 '김대중 D, 노무현 C, 전두환 A…이것은?'을 퍼왔습니다.
[시민정치시평] 재벌개혁과 한국경제 새판짜기…99% 연대의 길로

복지에 이어 경제민주화가, 그리하여 그 핵심 관문으로 재벌 개혁이 모두, 더불어 잘사는 나라로 가기 위한 중심 의제로 다시 떠올랐다. 대한민국이 가히 '재벌 동물원', 또는 '삼성공화국이' 꼴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재벌의 탐욕과 탐식, 독점과 독식이 도를 한참 넘은 현재 상황을 타개하지 않고는 무너진 민생경제를 살리고 경제민주화 나아가 '제 2민주화'를 이루는 일은 공염불에 그치고 말 것이다. 이명박 정부 아래 오늘과 같은 재벌독식 정글 자본주의를 초래한 장본인인 한나라당까지 당명을 바꾸는 등 법석을 떨고 경제민주화 운운하는 걸 보면, '두 국민'으로 갈라진 채 다수 대중이 삶의 불안에 떨고 있는 우리 사회의 위기가 얼마나 깊은지 알고도 남는다. 집권 여당까지, 진지한 반성은 모르쇠로 버티고, 복지국가 건설과 경제민주화 시대정신에 편승하려고 변신하고 있는 걸 보면, 작년부터 유력 보수 언론이 주도했던 바, 복지국가 길과 재벌개혁은 회피하며 재벌의 자선에 호소했던 한국판 "자본주의 4.0" 기획도 허사가 된 것이 분명한 것 같다.

정치란 이쪽과 저쪽, 또는 아방타방(我方他方)을 나누며 '우리'를 저변 넓게 구성하는 것이다. 복지국가 의제의 경우, '부자 증세'처럼 아방타방을 나누는 지점이 확실히 존재한다. 이전에 민주노동당이 내걸었던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과 같은 말은 그 지점을 잘 포착한 정말 멋있는 슬로건이었다. 지금이야말로 이 슬로건을 높이 쳐들어야 할 때가 아닌가. 그러나 복지국가 건설은 부자증세만으로는 어렵고 국민전반의 증세부담을 요청하기 때문에 대척점이 흐려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국가, 제도, 사람에 대한 신뢰를 축적하고 긴 호흡으로 가야 하는, 장기적인 과제다. 그것에 비해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 의제는 대척점이 훨씬 명확하다. 현 상황에서 '우리'를 넓게 99%의 '경제민주화 동맹'으로 확대하고 저쪽을 한줌의 1%로 몰 수 있는 최상의 의제일지도 모른다. 이제 '99% 연대로 1% 재벌을 개혁하자'고 말해야 할 때다.

그런데 사안이 사안인 만큼 견해도 다양하기 마련이다. 돈되는 건 다 먹어치우는 재벌의 탐욕을 규탄하며 개혁 대안을 찾는 토론의 장이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다. 그런 토론의 일환으로 얼마 전에 민주노총이 주최한 토론회가 있었는데, 나도 토론자로 참여해 지난 시기 '삼성공화국' 국면이래 주장해온 '제 2라운드 개혁'론을 피력하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청중이 많지는 않았지만 매우 유익한 토론이었다.

주발제자인 김병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부원장은 2007년 선거가 '성장과 경제자유화'라는 보수적 프레임으로 짜여졌던 반면에, 2012년 선거는 '복지와 경제민주화'라는 진보 주도의 프레임이 짜여졌고 여기에 보수가 끌려 들어와 따라잡기를 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경제민주화에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덜 부각되어 있는 '노동 민주화' 의제를 강조하고, 재벌개혁 운동이 민생연대 나아가 '99%의 연대'가 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이상호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발제자와 유사하게 노동자 경영참가에 기반한 '산업경제의 민주주의' 실현에 방점을 찍으면서 거의 전 분야를 망라하는 개혁 패키지들을 풀어 놓았다. 곽정수 한겨레 기자는 한참동안 민주통합당 내부 '재벌개혁의 X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모두들 재미있게 듣고 웃고 했지만, '경제민주화 특별위원회'를 가동하는 등 제법 떠들썩한 외양과는 다른 실상을 'X맨'이라는 말 한마디로 아주 잘 짚은 셈이다. 'X맨'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홍종학 교수가 또 지루한 토론회에 큰 웃음을 주었다. 그는 재벌은 킹콩같은 존재로, 이 킹콩이 선거 기간에는 잠을 잔다면서 이 때가 개혁의 호기라고 주장했다. 그는 재벌개혁에서 중요한 것은 강력한 제재, 효과적인 규율수단 그리고 빠른 속도라고 하면서 계열사간 배당이나 거래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재벌세'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민주노총 토론회를 포함하여 여러 논의들에서 좋은 정책수단이 많이 나온 것 같다. 정책 수단을 잘 몰라서 재벌개혁을 못하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무엇이 문제인가. 누가, 어떻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수 있을까?

우선 지난날 재벌개혁이 실패한 경험을 반성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왜 실패했나? 여러 요인들이 작용했다. 먼저, 두말할 필요없이 재벌 권력의 힘이 너무 강대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한국의 개발 독재는 강력한 정치적 독재임과 동시에, 대재벌을 키우고 이와 공고히 동맹한 반면 노동을 배제적으로 동원한 아주 당파적인 계급 권력이기도 했다. 권위주의 산업화가 고도의 권력전략인 동시에 계급전략의 성격을 갖고 있음을, 그리하여 국가 권력과 재벌 권력이 결탁한 과두제(寡頭制)적 지배와 고도집중 체제를 물려 준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박정희 정권은 물론 5공 신군부독재도 그러하다. 독재정권이 재벌에 퍼주기를 하면서 일정하게 규율을 부과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권위주의 정권이 노동계급과 시민사회의 발언을 통제, 억압해 왔기 때문에, 민주화이후 오히려 자기 발로 서게 된 공룡 재벌의 고삐를 잡고 민주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역사적 힘이 형성되기 어렵게 된다. 여기에 민주화 이후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가 어렵게 된 "민주화의 역설"이 나타난 조건을 찾을 수 있다. (☞ 바로가기 "강한 개발국가 복원?…장하준의 새로움과 구태의연함").

둘째, 개발독재 시기로 환원할 수 없는 민주화 시기의 실정(失政)문제가 있다. 한국의 민주화 시기는 동시에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기와 중첩되었으며 역대 정부는 경제적 자유화=규제 완화와 무분별한 개방의 물결에 휩쓸렸다. 민주화와 자유화와 같이 진행됐다. 그로 인해 재벌의 힘과 정부의 실정이 합작한 끝에 97년 '외환위기'가 도래했다. 이어 97년 이후 중도 자유주의 정부는 한편 외압에 순응하면서 다른 한편 그 칼을 빌려 재벌 개혁을 추진했다. 그 결과는 단절과 연속의 기묘한 혼합물이었다. 불법적 경영권 세습 등에서 보듯이 오늘날 한국재벌의 전근대적 구태는 여전하다. 그러나 재벌 개혁이 일어난 것도 사실이다. 많은 재벌들이 사라지고 쪼개졌으며, 살아남은 재벌도 크게 변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슈퍼 재벌'로의 초집중과 심각한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빈곤화였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역대정부의 재벌 정책에 대한 학점은, 전두환 정부 A, 노태우 정부 C, 김영삼 정부 D, 김대중 정부 D, 노무현 정부 C 로 평가되었다. 논란이 많겠지만, 충격적인 평가다. 이 평가의 타당성 문제는 제쳐 두고, 한국의 민주화이후 민주주의에서 가장 큰 과실을 얻고 최대의 수혜자로 부상한 것은 소수 재벌이고, 노동자와 서민, 그리고 여러 중간 집단들조차 패배자의 처지로 떨어진 게 사실이라면 이는 정말 큰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역설이 재벌개혁의 부진뿐만 아니라 97년이래의 재벌개혁에도 크게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단지 재벌개혁이 아니라 '어떤 개혁인가'를 물어야 하는 것이다.


 ⓒ연합


셋째, 나아가 정부 정책만이 아니라 '범민주 진보' 진영 내부의 개혁 담론도 재벌 개혁이 실패하는 데 일조하였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는 주주 자본주의냐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냐 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고 그 우열을 판별하기 위한 기준을 찾는 노력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견해를 편 사람도 있다. 또 재벌개혁을 (구)자유주의적 개혁틀안에 가두면서 경제민주화와의 고리를 끊어 버리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이들은 재벌 개혁의 목적은 단지 공정 경쟁시장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서, 이해당사자들의 민주적 참여와 공정한 협력은 배제해 버린다. 어떤 논자는 지난 번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에 즈음하여 사측의 해외공장 이전과 주식배당에 대해서는 은근히 두둔한 반면 정리해고의 부당성에 대해서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상한 논법을 제시한 적도 있다(김기원, "한진중공업 사태의 올바른 해법은", , 2011/8/4). 그리고 IMF 이후 세계화가 반(反)노동적임과 동시에 반재벌적인 효과를 가졌고 그래서 재벌과 노동 모두 거기에 반대했다고, 문제의 한쪽 면만 보는 견해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재벌과 세계화간의 불협화음만 볼 뿐, 양자의 교묘한 만남과 화해가 초래하는 반(反)민주적 효과를 간과하는 것이다.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 문제를 보는 나의 생각은 이런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형 자본주의가 보여주는 바, 재벌체제의 내부자(Insider)와 외부자(Outsider)로 분단된 이중화 양식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아래 그림 참조). 내부자의 중핵은 재벌체제의 재생산에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상위 계층들이다. 외부자는 비정규직, 취약한 정규직, 실업자, 자영업과 중소상인, 취약한 중간층, 중소기업 등이다. 그런데 여기서 잘 살펴야 할 것은 소액주주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의 존재이다. 이들은 야누스적 얼굴을 갖고 있다. 재벌 총수의 횡포는 소액주주권을 침해한다. 그렇지만 재벌의 높은 실적과 주주가치 추구는 소액주주에게 이익도 가져다 준다. 소액주주중에는 소시민도 없지 않다. 그러나 국제금융자본과국내 대금융자산가들도 대체로 소액주주며 이들이 소액주주의 '큰 손'으로 재벌체제의 최대 수혜자에 속한다.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의 경우, 그 약체 부분은 기업주가 휘두르는 부당 정리해고 칼날 위에 서 있다. 그러나 그 큰 부분은 기업별 노조에 갇힌 채 - 이는 신정완이 '박정희체제의 사후의 복수'라 부른 것이다- 비정규직과 연대는 외면하고 재벌과 이익을 함께 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때문에 한국의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 대안은 복지 의제처럼 스웨덴 모델을 준거로 삼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프레시안

이런 독특한 내부자-외부자의 이중화 상황에서는 소액주주의 이익을 중심에 놓는 재벌개혁론은 다수 대중의 민생경제를 중심에 놓는 개혁론과 충돌할 수 있다. 그리고 추상적으로 노동자 경영참여를 외치는 개혁론도 정규직이 비정규직, 실업자 등의 이익을 담아내는 보편적 ,포괄적 이해를 구성하지 않는 한 이중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새로 시작하는 제 2라운드의 개혁은 지난 1라운드의 한계 지점을 뛰어 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정 경쟁시장을 추구하는 질서자유주의적 개혁은 재벌개혁의 기본적 구성부분임이 분명하지만 이는 다수 피억압대중의 이익에 복무하는 사회민주적이고 참여민주적인 개혁과는 충돌하는 지점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의 개혁은 중도반절로 끝난 질서 자유주의적 개혁의 적극적 부분을 이어받되, 그 중심방향은 사회민주적이고 참여민주적인 개혁을 재창조하는 데 두어져야 할 것이다. 여기서 노동 부문이 이중화 구조를 넘어 노동 연대를 향해 필사적 노력을 다해야 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오늘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중심적 문제는 1997-8년의 상황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대다수 사람들이 거의 예상하지 못한 채 습격당한 정글자본주의 속에서, 재벌의 전방위적인 탐식과 약탈적 축적, 그에 따른 빈곤과 불평등의 심화, 불공정하고 부당한 거래와 분배, 야만적인 노동 배제, 심각한 저출산 고령화 현상 등이 중심적 문제 또는 '주요 모순'이 되고 있다. 재벌과 외국자본의 지배동맹에 의한 독점 독식과 이중화 축적체제로 인해 배제되고 약탈당하고 있는 광범한 국민 대중의 삶의 불안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 상태로는 민생은 물론 한국경제의 미래도 없다.

서두에서 정치란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정치는 다투는 것이기도 하지만, 상생 협력하며 이를 통해 더 높은 균형으로 나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재벌개혁이 재벌죽이기가 아니라 오히려 재벌살리기라고 말해야 한다. 오늘날처럼 재벌이 민주공화국을 길들이는 비정상상태로부터 이들이 민주공화국의 시민적 구성원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 이를 통해 시민기업으로 재탄생한 재벌과 민생, 나라경제가 선순환하는 민주적 참여의 시장경제, 고진로(High Road)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재벌 개혁의 목표다. 그리하여 저변이 넓고 튼튼한 민생경제, 피라미드형의 강소(强小)하고 중견(中堅)한 살림의 경제, 공화국의 구성원이라면 동등한 '경제시민'으로서 노동하고 기업(企業)하는 사회경제적 권리지분(stakes)을 쥐어주면서 공정하게 협력하고 공정하게 경쟁하며 언제나 패자부활이 가능한 한국형 시민경제의 새판을 짜는 과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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