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6일 일요일

목사와 기자출신, 두바보의 편지대화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현 기자의 블로그 휴심정 2012-02-22일자 기사 '목사와 기자출신, 두바보의 편지대화'를 퍼왔습니다.

김기석 목사(왼쪽)와 손석춘 이사장이 청파감리교회에 걸린 성화 아래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피라미드 위를 오르면서 남들을 딛고 성과물을 독식하는 승리자에게 열광하는 세태 때문일까. 시류에 역류하는‘바보’가 더욱 그리워지는 세상이 됐다. 논객 손석춘은 거대 기득권인 골리앗과 싸우는 노무현 전대통령에게 ‘바보 노무현’이란 닉네임을 붙였고, 3년 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은 말년에 스스로를 “바보야”라고 불렀다.
  영정 속의 두 바보를 대신해 살아있는 두 바보가 등장했다. 김기석 목사(55·용산 청파감리교회)와 손석춘(52)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이사장이다. 이들이 (꽃자리 펴냄)를 출간했다. 개신교 월간지 을 통해 1년반 동안 주고받은 지상편지글 모음이다.
21일  두 바보를 만났다. 화려한 십자가도, 아무런 외장도 없이 화장기 없는 맨얼굴 그대로 ‘바보스런’ 서울 청파동3가 청파감리교회에서다.
손 이사장은 기자로서, 시민단체의 대표로서 언론개혁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언론운동가다. 그는 편지글에서 일용직 건설 노동일을 하면서 병든 어린 아들과 단 둘이 살던 윤아무개씨가 아들을 기초생활수급자나 ‘장애아동 재활치료 대상자’로 지정해달라는 희망을 남기고 여의도에서 나무에 목 매 자살한 사연을 들려주며, ‘예수가 어디로 갔는가’를 아프게 묻는다.

그리고 대구에 갔을 때 탔던 택시의 기사가 ‘현실에선 아무런 희망을 찾을 길이 없고, 오직 죽어서 천당가는 희망 밖에 없다’고 한 말을 전하면서 “절망의 현실에 눈을 감고, 오직 내세만을 유일한 희망으로 내세우는 게 기독교인가”라고도 묻는다.
  이런 편지를 보낸 손 이사장에 대해 김 목사는 “이토록 부드럽고 조용한 분의 어디에서 이렇게 물러서지 않는 용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언론인을 ‘현대의 성직자’라고 한 함석헌의 말을 빌어 “약자들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고, 위로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예언자”라고 평했다.



김 목사는 목회자보다는 수도자나 묵상가가 어울릴법한 성찰형 인간이다. 물어 물어 이 교회까지 찾아와 세상 밖으로 그를 끌어내려는 젊은이들의 채근에도 세상 밖으로 나가기를 주저주저하는 태도에서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가 손 이사장의 편지에 어떻게 응답할지는 개신교 젊은이들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다. 하여 ‘이대로 가다간 한국 교회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 의식이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한국 교회의 얼굴로 비춰지는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비리가 쉴 새 없이 터져나오고 있는 예민한 문제에 대해 그의 견해를 물었다. 하지만 그는 의외로  담담하게 답했다.
“가면을 쓴 채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맘몬(돈)과 권력과 명예를 구주로 섬기는 이들이 망하는 것과 한국 교회가 망한다는 말은 다르지요.”
교회가 아닌 이들이 망해야 진짜 한국 교회가 살 길이 열린다는 역설로 그는 새로운 희망을 안내했다. 성경 공부를 하다가 성령의 불이 붙었다며 갑자기 뜨거워져 설레발을 치는 이들에게 찬물을 뒤집어 씌워 제정신을 차리게 했다는 의 신학자 김교신 선생(1901~45)을 가장 존경하는 그 다운 냉철함이었다.
소비자들이 구멍가게를 내팽개치고 대형 할인마트로만 달려가듯 아무리 비리가 불거져도 대형교회로만 달려가는 듯 내비치는 교회 현실에 대해서도 그는 “주체적 개인으로 살아본 경험이 없어 타자의 욕망을 내 욕구와 동일시하며 부화뇌동하는 이들도 적지않지만, 사람에겐 누구나 진실과 선의를 추구하는 마음이 있다는 믿음을 잃어서는 안된다”고 못박았다.
   조·중·동 보수신문에 맞서온 손 이사장도 “어떤 비판에도 그들(조·중·동)이 의제를 설정한대로 굴러가 정국을 좌지우지했지만, 결국은 이제 대중이 그들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게 되지 않았느냐”며, 김 목사에게 동의의 박수를 보냈다.
  김 목사는 “어려운 현실에서도 올곧게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이 땅에 구현하려는 작은 교회의 목회자들을 만나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저버릴 수 없다”며 “요즘 부쩍 대형교회의 대안으로 확산되고 있는 작은교회 운동은 종교개혁에 버금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일부 대형교회 목사들이 약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평화를 깨트리고 갈등과 폭력을 부추기는데도 여전히 광신자들의 열광적인 추종을 받는 것에 대해, 그는 “아무런 비판 의식을 갖지 못하게 하고 무조건적으로 순종하는 신자를 만들어내는 것은 지배욕에 휩싸인 자들의 보편적인 특성”이라며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근본주의는 성찰과 질문을 거절하기 때문에 다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부도덕한 세상에 대해 ‘세상이 다 그런거지’라며 세상은 변화시킬 수 없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던 자신에게 용기를 준 것도 ‘손 이사장의 끊임 없는 질문이었다’고 고백했다.
김 목사의 ‘성찰’에 대해 정치권 진보세력의 통합작업을 해온 손 이사장도 “유대인 기득권자들의 좌판을 뒤엎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진보 세력도 자신의 좌판을 들여다볼 용기를 내야 한다”며 성찰과 반성에 보수와 진보가 따로 있을 수 없음을 고백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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