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4일 금요일

대선판세 가르는 ‘4·11 낙동강 전투’


이글은 대자보 2012-02-23일자 기사 '대선판세 가르는 ‘4·11 낙동강 전투’'를 퍼왔습니다.
[김영호 칼럼] 부산경남 민심 이반, 민주당 교만하면 민심 표변 알아야

1990년 3당합당 이후 지역주의가 고착화되어 연고지역 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영남-호남에서는 당선이 보장되었다. 공천이 곧 당선이었다. 그 까닭에 양대 정당이 영남-호남지역을 양분해 완전히 석권해 왔다. 그런데 4·11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의 텃밭인 영남지역에서 이상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20년간의 정치적 연대인 PK+TK에 균열양상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역대 선거에서 수도권이 격전지였으나 이번 총선에서는 PK가 최대의 격전지로 떠올라 전운이 감돌고 있다. 역대 대선을 보면 PK의 향방이 대선의 판세를 가른다는 점에서 ‘낙동강 전투’로 비유될 정도이다. 

PK는 전통적인 야성지역이다. 1960년 이승만의 3·15 부정선거에 항거한 봉화도 마산에서 먼저 들었다. 박정희의 유신체제에 종언을 고하는 1979년 부마항쟁도 부산-마산이 진앙지였다. PK는 신군부에 치명타를 준 신당 돌풍의 주역이기도 하다. 1985년 12대 총선에서 YS-DJ가 주도한 신한민주당의 후보 5명을 모두 당선시켰던 것이다. 관권과 금품이 난무한 부정선거였지만 신군부의 민주정의당은 2석을 얻는데 불과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13대 총선에서는 YS의 통일민주당이 15석 중 14석을 석권했다. 

1990년 YS의 민주통일당이 노태우의 민주정의당, JP의 자유민주연합과 합당하여 민주자유당이 태어났다. 이른바 3당합당이다. YS의 연고지역인 PK가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의 연고지역인 TK와 정치적 연대를 맺은 것이다. 이후 PK는 줄곧 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의 확고한 지지기반이었다. 노무현은 PK출신이다. 그럼에도 PK에서 그의 도전은 번번이 실패했다. ‘호남당’이란 간판이 패인이었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 그는 새천년민주당의 후보로 입후보했다. 그런데 PK에서 그의 득표율은 29.4%에 그쳤다. 반면에 지역연고가 없는 한나라당의 이회창은 65.3%의 득표율을 올렸다. 호남의 지지가 노무현을 당선시켰던 것이다. 

MB정권 들어 그 철옹성 같던 PK가 영남지역에서 이탈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0년 6·2 지방선거가 그 시발점이다. 무소속 김두관의 경남지사 당선은 예상 밖의 승리였다. 그는 2003년 노무현 정권에서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후 2004년 총선, 2006년 경남지사, 2008년 총선에 출마했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이 점에서 그의 당선은 이변이다. 그와 함께 부산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김정길이 45%란 높은 득표율로 약진했다. 기초단체장 10명, 광역의원 23명, 기초의원 174명의 당선됐다. 한나라당의 아성 PK에서 일어난 파란이다. 서울시장 선거패배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날치기의 후폭풍이 MB정권의 권력누수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여기에 꼬리를 물고 터지는 MB 친인척-측근 비리가 MB정권을 혼수상태에 빠뜨렸다. 그 틈을 타서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접수하고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친이계의 무저항이 그것을 말한다. 그 배경에는 PK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PK의 이탈은 곧 대선패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표면적인 불만은 부산저축은행 금융비리,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이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불통-강압통치와 TK우대-PK박대 인사에 대한 저항이 깔려있다. 

2007년 12월 대선의 승패는 노무현 심판론이 결정했다. MB의 압승은 친노세력에게 동면의 세월을 안겨줬다. 하지만 MB의 실정은 4년만에 그들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줬다. 노무현의 비서실장 문재인을 부산 진출의 교두보로 삼고 그 선봉장으로 문성근이 나섰고 김정길이 가세했다. 친노세력이 화려하게 부활하여 민주통합당의 지도부를 장악했다. 부산 공략을 통해 대권까지 간다는 전략이다. 여기에 조심스럽게 무소속으로 관망하던 김두관이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이라 기치를 들고 통합대열에 가세했다. 다분히 호남을 의식한 대목이라 대권 도전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총선 이후 상황전개에 따라 결행하겠다는 뜻이다. 

TK와 PK가 합세한 대선에서는 한나라당이 승리했다. 1992년 김영삼, 2007년 이명박 당선이 그것이다. 하지만 두 지역이 분열한 1997년, 2002년 대선에서는 김대중, 노무현한테 실패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간판을 바꾸고 탈색작업을 하느라 분주하다. 같은 이유로 민주통합당이 PK에 공을 들인다. 4·11 총선에서 문재인의 부산, 김두관의 경남이란 거점공략이 승기를 잡으면 대권쟁취의 열쇠를 쥘 수도 있다. 하지만 유동성이 너무 크다. PK는 항구도시, 공업지대가 포진해 있어 외지인, 노동자가 많아 역동성이 높다. 민주통합당이 교만한 표정을 짓는 순간 민심도 표변한다는 점이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언론광장 공동대표 시사평론가 <건달정치 개혁실패>의 저자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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