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5일 토요일

사임하고 검찰 수사 받는 독일 대통령 vs '방문 조사' 받은 한국 국회의장


이글은 프레시안 2012-02-24일 기사 '사임하고 검찰 수사 받는 독일 대통령 vs '방문 조사' 받은 한국 국회의장'을 퍼왔습니다.
[장행훈의 광야의 외침] 돈 관련 스캔들, 대응은 '극과 극'

독일연방 대통령의 돈 관련 스캔들과 한국 국회의장의 '돈 봉투' 사건이 비슷한 때 불거졌는데 결과는 전혀 다르게 마무리됐다. 독일에서는 검찰이 지난 16일 오후 대통령의 비리 혐의를 철저히 조사해야겠다며 그의면책특권을 해제해 달라고 의회에 공식으로 요청했고 그러자 국민의 여론을 의식한 대통령이 24시간이 안 돼 다음날 전격 사임했다. 20일에는 모든 국민의 존경을 받는 새 대통령이 여야 정당의 합의로 선출됐다. 쾌도난마(快刀亂麻)였다. 대통령이 검찰의 피의자가 돼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직의 권위가 훼손되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크리스찬 불프의 사임 결단과 모든 국민은 법 앞에 서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하며 이 민주주의 법제도에서 대통령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검찰의 판단과 용기가 이끌어낸 순리의 결과였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국회의 권위를 존중한다며 돈 봉투의 최고 혐의가 분명해 보이는 국회의장을 감히 소환할 생각도 못한 검찰이 19일 의장 공관을 찾아가 '방문 조사'를 했다. 의장의 '체면'을 고려하여 '정중하게' 조사했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의장은 국회의장수석 보좌관이 직접 관여한 돈 봉투 살포를 모르는 일이라 잡아뗐고 검찰은 증거를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국회의장과 그의 보좌관을 불구속 기소하는 것으로 수사를 마감했다. 언론은 돈 받은 사람이 나타났는데도 돈 준 사람이 누구인지는 찾아내지 못한 수사라고 빈정댔다. 놀랄 일도 아니다. 힘깨나 있는 인사들이 관련된 검찰 수사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으니까.



▲ '돈봉투 살포' 의혹에 모른다고 부인한 박희태 국회의장과 돈 스캔들에 대통령직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사임한 크리스찬 불프 전 독일 대통령. ⓒ뉴시스

독일의 대통령 수사와 한국의 국회의장 수사 결과가 이렇게 다르게 나타나게 된 이유가 무엇일가?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국가의 최고위직인 대통령의 자리에 대한 독일사회의 인식이다. 대통령은 청렴하고 정직하며 용기 있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국가의 도덕적 상징이다. 모든 국민이 존경하는 역할 모델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은 비리 의혹이 제기되면 불리한 사실을 감추려고 꼼수를 부리거나 뭉그적거리지 않고 솔직히 사실 여부를 밝히고 거취를 분명히 한다. 그러므로 국민의 신뢰가 사라졌다고 판단하면 자리를 그만두는 것이다. 불프의 선임자인 호르스트 쾰러 대통령은 2년 전 독일군의 아프가니스탄 파병 명분 발언이 말썽을 빚자 대통령 자리를 사임했다. 불프 대통령은 초기에는 이러한 역할 수행에 실패했다. 그래서 대통령으로서는 자질이 모자란 '소인'이라는 비판까지 받았다.

두 달 전 불프 대통령이 주지사 시절(2003-2010년) 집을 사기 위해 기업인 친구로부터 저리로 500만 유로를 빌리고 그 빚을 갚기 위해 다시 은행으로부터 일반 고객보다 낮은 이자로 융자를 받는 특혜를 누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불프 대통령은 사실을 부인하고, 꼼수를 부리다 증거가 제시되자 마지못해 시인하고 사과했다. 이러한 행동으로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여론을 감지한 불프 대통령은 국민의 신뢰가 없이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면서 사임하는 결단을 내렸다. 그래서 때늦기는 했지만 검찰의 수사 대상이 돼 대통령직이 권위가 훼손되는 최악의 사태는 모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보도에 의하면 니더 작센 검찰이 가장 문제를 삼는 대통령의 비리는 금전거래가 아니라 불프가 주정부를 통해 친구인 영화제작자 다비드 그뢰네볼트에게 400만 유로의 신용보증을 서준 사건이다. 이 일이 있고 얼마 후 불프는 그뢰네볼트의 초청으로 부자들의 휴양지인 질트 섬에서 휴가를 함께 보냈으며 이 때 묵은 호화 호텔비를 친구가 부담했다는 혐의다. 사실로 확인되면 중대한 범죄가 될 수 있다. 교사가 유원지 티켓을무료로 받았다고 해서 고발당할 정도로 니더 작센은 공무원의 기강이 엄하다. 불프는 호텔비를 나중에 친구에게 현금으로 지불했다고 해명했으나 검찰은 납득하지 않는다. 검찰의 조사가 필요하게 됐다.

문제는 대통령을 어떻게 조사하느냐 는 것이다. 면책특권 때문이다. 철저히 수사를 못해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면 검찰은 대통령직의 권위를 훼손했다는 비난을 받고 검찰 수사가 오히려 대통령의 혐의를 풀어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제대로 수사를 하려면 대통령의 면책특권을 해제해야 한다. 하지만 의회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검찰의 결단이 필요했다. 16일 오후 니더 작센 검찰은 마침내 연방하원에 대통령 면책특권 해제를 요청하기로 결정한다. 독일연방공화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검찰이 대통령을 상대로 진검승부를 건 것이다. 전 독일을 긴장으로 몰아넣는 도전이었다.

불프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는 메르켈 총리와 기민련 자민당 연립정권이 선출한 대통령이다. 그러므로 여당이 단결하면 검찰의 요구를 거부할 수도 있다. 그러면 검찰의 대통령 조사는 우리 국회의장 돈 봉투 조사처럼 맥이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언론의 일관된 보도로 여론은 대통령에게 비판적이다. 사민당과 녹색당은 처음부터 불프의 사임을 요구해 오던 터다. 불프에 대한 여당 내의 공기도 여론의 흐름을 보는 눈치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검찰의 공식 도전이 발표된 지 24시간도 안 돼 17일 오전 불프 대통령이 전격적인 사임 발표를 하게 된 것이다.

불프 대통령의 사임에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가 대통령직에 남아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될 때 파생될 정치적 폐해를 피할 수 있게 된데 대한 안도감이다. 메르켈 총리는 물론 언론은 그의 사임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민주주의 법정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며 간접적으로 검찰의 용기를 칭찬했다. 독일의 언론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은 이번 사건은 권력을 부단히 감시하고 고발해서 권력에 대한 비판여론을 조성하고 검찰에게 결단을 내리는 용기를 북돋아 준 언론의 역할도 컸다고 자평했다. 불프 대통령 사건은 우리 국회의장 사건을 재조명하게 타산지석으로 우리에게도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불프가 사임한 직후 메르켈 총리는 각 정당과 협의해서 후임 대통령으로 동독 출신의 요하힘 가우크(72) 목사를 선출했다. 이번에는 여당 출신 정치인을 선출하지 않고 모든 정당의 의견을 수렴한 '통합' 대통령을 선출했다. 지난 2년 간 여당 출신의 두 명의 대통령이 중도 퇴장하는 불상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무소속인 가우크는 1990년 통일 때 동독 비밀경찰의 슈타지 문서 조사책임자로 임명돼 10년간 동독비밀경찰의 비인도적인 행동을 분석하고 고발해서 '슈타지 사냥꾼'이라는 별명을 얻은 철저한 민주주의 전도사로 독일인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2년 전에도 사민당-녹색당의 후보로 기민-자민 연립정당의 불프와 맞붙어 3차 투표까지 갈 정도로 독일 국민이 대통령 감으로 인정해온 인물이다.

가우크가 대통령에 선출됨으로써 독일은 대통령과 총리 자리를 모두 동독 출신이 차지하게 됐다. 통일 20년에 독일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가우크 목사는 솔직한 성격으로 불프가 훼손한 대통령직의 권위를 회복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정파를 초월한 지도자다. 그가 독일인들의 존경을 받는 것도 바로 정파에 초연한 그의 자세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앞으로 정당에도 쓴 소리를 할 것이고 그 때문에 가끔 논란이 일수도 있다는 언론의 전망이다.

가우크가 대통령이 선출된 후 그에게는 즐거운 걱정이 하나 있다. 그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너무 높은 것이다. 그래서 가우크는 독일 국민을 향해서 너무 기대하지 말라는 뜻으로 "난 초인이 아니다. 흠이 전혀 없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라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대통령을 가진 독일 국민, 이런 대통령을 선출하는 독일의 민주주의가 부럽다. 스캔들로 대통령을 중도에 그만 둬야 했던 불프의 사임이 독일 민주주의를 위해서 전화위복이 된 것 느낌이다.



/장행훈 언론인·동아일보 전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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